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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女人, 역사에 색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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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女人, 역사에 색을 입히다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18.09.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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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장의 역사 일러스트

[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미를 숭배하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화장을 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놀랍게도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 일 것’ 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희고 윤택한 피부는 고귀한 신분을 상징했고, 이 때문에 남녀 구분 없이 백색 피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미의식은 곧 화장으로 표현됐는데, 특히 선조들은 옅은 색조의 은은한 화장으로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꾸는 미용에 중점을 뒀다.

우리나라 화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 시기를 놓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화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7500년 전 이집트에 있다. 고대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눈 화장을 짙게 한 남녀의 모습이 등장한 게 그것이다. 이집트인들이 이처럼 눈 화장을 한 것은 치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으로 눈이 건조해 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눈 화장으로 적당히 눈을 자극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화장이 본격적인 미의 도구로 쓰인 것은 클레오파트라 7세 때부터라고 알려지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선 연지를 바른 여성들을 볼 수 있고 백제에선 피부를 하얗고 연하게 하는 화장이 발달했다. 특히 신라에선 남성들도 화장을 했다. 화랑(花郞)의 화장이 대표적이다. 삼국시대부터는 뚜렷한 화장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 고분벽화 속 인물들은 갸름한 얼굴에 백옥 같은 피부, 얇고 둥근 눈썹, 가늘고 긴 눈매와 넓은 이마, 그리고 연지가 찍힌 볼이 두드러진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연지를 이용한 화장법이 일반화돼 있어 직업을 구분 짓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는 「삼국사기」 속 무녀와 악공의 이마에 그려진 동그란 연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화장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가령,「삼국사기」에서 화랑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살펴보면 ‘미소년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분을 바르고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신라시대의 영육일치 사상의 발로를 보여준다. 이렇듯 신라에서는 남녀 모두가 화장을 즐겨하다보니 흰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납가루 분과 쌀가루 분을 만드는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 하지만 이런 재료는 부착력과 퍼짐성이 부족해 분을 바르기 전에 족집게나 실면도로 얼굴의 털을 다 뽑아야 했고 이후 물에 개어 바르고서 20~30분간 잠을 자야 곱게 발라졌기에 그 방법이 매우 복잡했다. 또한 붉은빛 염료를 얻을 수 있는 잇꽃으로 연지를 만들어 입술과 뺨에 바르기도 했으며, 백합의 붉은 수술로는 색분을 만들어 활용했다. 특히 연지가 사용되기 시작한 5~6세기에는 남녀 모두 뺨과 입술에 연지를 붉게 바르는 것이 성행했다.

신라의 화장 경향을 계승한 고려시대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보다 짙은 화장을 선호했다. ‘분대 화장’이라고도 불렸던 고려시대의 화장법은 기생들이 즐겼던 화장술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흰 분을 바르고, 눈썹은 매우 가늘고 진하게 칠하며, 머리에는 기름을 듬뿍 발라 윤기를 냈다. 또한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흰 기생들은 검은 염색물로 머리를 염색해 치장에 힘쓰기도 했다.

▲사진: 화장의 역사 일러스트

반면 조선시대 여인들의 화장은 본래의 생김새를 바꾸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꾸도록 했는데 화장한 모습이 화장하기 전과 확연히 달라 보이면 야용(冶容)이라 하여 크게 경멸했다.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조선에는 영양크림을 비롯한 백분, 비누, 향수 등이 수입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장품의 산업화가 이뤄졌다. 특히 1922년 최초로 등장한 ‘박가분’은 개화기 여성들이 즐겨 사용하던 한국 최초의 화장품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장법이 존재했으나 변치 않는 진리 중 하나는 본래 타고난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모습을 가꾸려는 과거 화장법은 몸을 가꿈으로써 마음도 가꾸려 노력했던 선조들의 삶의 자세와도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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