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윤일 / 조선다완연구가, 전 경북대 교수, 문경문인협회 부회장

만약 일본 주요 도시에서 특별한 차회(茶會)가 있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차인(茶人)들은 차를 마신 후 찻그릇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일반인이 보기에 표면이 우둘투둘하여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찻잔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럴 때 소리를 낮추어 터지는 감탄사가 "高麗茶碗(고라이 자왕)"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려다완(Korea tea bowl), 즉 조선에서 만들어진 찻잔이라는 뜻이며, 대다수 일본의 차인들에게 신(神) 다음으로 떠받들어지는 대단한 보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황금보다도 더 귀한 보물(Treasured above gold) 같은 도자기를 오늘날 가장 잘 재현하는 도예가가 문경의 도천 천한봉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 그는 일본천황으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상함으로써 일본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대내외적으로 확인시켰다. 한국의 도예가로서 일본 천황의 문화훈장을 받은 사람은 이제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본 국영방송인 NHK-TV가 제작한 'Asia's Who's'에 한국의 도예가 도천 천한봉의 일대기가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도예가 천한봉을 소개한 것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선 도예가하면 한국의 천한봉을 연상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본의 유력 언론매체인 마이니치,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NHK,후지TV 등이 앞 다투어 그의 전시회를 열거나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보도하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이처럼 유명한 것은 그의 작품인 분청다완이 일본의 국보 내지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고려다완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NHK-TV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천한봉의 작품활동의 전과정을 소개하면서 "4백년 전의 '고려다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의 한 도자기 평론가는 가식적이고 기교적인 미가 주종을 이루는 일반 도자기와는 달리 그의 작품은 무기교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사도 그의 작품을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지를 넘어선 예술”이라고 까지 격찬하였다.

이처럼 그가 만드는 분청다완은 조선시대의 민가에서 밥그릇, 찻사발으로 사용되던 그릇이거나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정을 하기도 한다. 유약이 불규칙하게 흘러내리고 표면이 우둘투둘하여 투박해 보이는 조선의 찻그릇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려다완(高麗茶碗)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국보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날 소중하게 전해 내려 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다완이 어느 정도 귀하게 여겨지는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르다. 수년전 교토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고려다완전의 기존 강연에서 당시 국립박물관장은 “이토록 오랫동안 일본인의 가슴속 깊숙이 들어와 감동을 주고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른 물건 가운데 조선의 다완(찻사발) 같은 것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라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짖었다. 그의 집안은 우리가 막사발이라고 흔히 부르는 고려다완을 400여 년간 가보로 소중히 간직 해 내려온 것이다.

오늘날 유럽 등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일본의 도자기는 조선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일본은 한국의 수많은 도공들을 납치해 갔다. 그리고 납치한 도공들로 하여금 도자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때 한국도공의 도자기술이 일본 도자기산업의 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한봉의 작업실이 있는 경북 문경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민요지(民窯地)였다고 한다. 천한봉은 이곳에서 14세 때부터 60여 년간 조선시대의 전통기법 그대로 한국인의 혼이 담긴 막사발을 빚어내고 있다.

"일본에서 첫 전시회를 연 73년도의 일을 잊지 못합니다. 전시장 한 가운데 발물레를 설치해 놓고 성형을 하는 것부터 '굽' 만드는 과정까지 직접 실연해 보였죠. 일본인들은 작업 과정을 보면서 숨소리조차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어요. 마치 신 앞에 선 경건함이라고나 할까요. 그 사람들 앞에서 자기네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조선다완을 재현하는 모습을 보여 준 탓인지 큰 충격을 받는 인상이었습니다"라고 당시의 느낌을 회고한다.

천한봉의 도자기 굽는 일은 발물레로 '꼬막'을 올리고 재래식 두꺼비집 가마에다 소나무 장작불을 때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마에 불을 지피는 것은 한겨울이나 무더위를 피해 한 해에 5-6번쯤 된다. 한 번 구울 때 나오는 작품은 대략 7백여 점. 이 가운데 5% 정도만 세상 빛을 보게 되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쇠망치에 부서져 나간다. "가마 안의 조화를 인력으론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작품을 깰 때는 당연히 깨야할 것을 깬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합니다. 가마에서 꺼내 한 번만 척보면 '이놈은 안돼'라는 뇌까림이 들려와요. 그렇지만 선택의 기준은 있습니다. 주로 색상과 운치입니다. 또 가마불 앞쪽에 놓인 도자기는 대체적으로 좋은 작품이 안 된다는 게 제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노하우입니다.

천한봉의 작품은 일본에서 작품당 70만엔~200만엔씩에 팔려 나간다. 일본 왕실에서조차 질박한 그의 찻사발을 보물처럼 떠받들고 있다. 최근 KBS-TV가 새천년맞이 특집으로 천한봉의 작품세계를 40분짜리 타큐멘터리로 제작, 한민족의 '전통의 혼과 맥'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함은 물론, '조선의 마지막 도공'으로 특집 방영하기도 했다.

한류열풍의 주역 욘사마 배용준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떠난 여행'이란 그의 책에 도천 선생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도요지를 방문, 며칠간 숙식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한봉 선생이 예술활동을 하는 모습과 작품을 보아야 한다"며 선생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문경은 조선다완을 가장 훌륭하게 재현하는 도자기 고장으로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중심에는 조선다완의 거장 천한봉 선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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