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복한 여행법, 다른맛 같은맛

[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10년 전인지, 20년 전인지, 30년 전인지. 우리나라가 북으로 이어진 길이 끊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임엔 틀림없다. 학교에선 반도국가라고 배웠는데 살아보니 ‘섬나라’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그날, 나는 버킷리스트 1호를 다시 세웠다. 북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내 차를 끌고 북쪽 땅을 밟겠노라. 그리고 내친김에 만주 땅과 시베리아 벌판도 달려보고, 실크로드에 차를 실어 영국 런던까지 골인. 그곳에서 버킷리스트 달성 기념으로 맥주잔을 높이 들어 축배의 노래를 부르자.’ 몇백일이 걸릴지도 모르는 이 여정을 상상하며 어느 날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고, 어떤 날은 꽉 막힌 답답함에 쓴 소주잔을 들이키기도 했다.

총알의 흔적이 남아있는 담벼락 38선

엄밀히 말하면 나의 버킷리스트 1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 뒷좌석에 모시고 떠나는 북녘 여행’이었다. 1차 목적지는 북청. 가는 길에 함흥을 꼭 거쳐야 한다. 이유는 내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 함경남도 함흥, 내 아버지의 고향이 북청이기 때문이다. 두 분 다 전쟁 때 월남했고, 부산에서 만나 가정을 꾸렸다. 어머니는 아직도 별로 내색을 안 하시지만, 아버지는 강산에의 ‘라구요’ 노래 가사처럼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고 간절하게 바라며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사셨다.
세월이 흐르고, ‘고향 과수원의 배 하나가 우리 아들 머리만 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북쪽으로 육로여행을 떠나더라도 나의 버킷리스트 동행자 한 분은 영영 태워보지도 못하게 됐고, 또 한 분은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해 그곳에서 영상통화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왼쪽/오른쪽]북한 술 / 통일약과

북한 술 통일약과

열망하던 버킷리스트를 온전히 이루기는 힘들어졌지만, 그 꿈을 향한 불씨는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희망을 품었다. 특히 북한 지도자가 분단의 선을 넘어 남쪽 땅을 밟고, 남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함께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는 광경은 ‘남북한 자유 왕래’란 메시지로 다가왔다.
1년, 10년, 20년.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지나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내 머리 크기만 한 북청 배’를 직접 확인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내 아버지가 간절히 노래하던 그 땅의 음식들을 서울에서 찾아 나섰다.

‘능라도’의 평양냉면 ‘함흥곰보냉면’의 함흥냉면

[왼쪽/오른쪽]‘능라도’의 평양냉면 / ‘함흥곰보냉면’의 함흥냉면

평양냉면

어릴 적 평양냉면은 우리 식구들 사이에선 ‘냉면의 부랑아’였다. 면이란 게 씹는 맛도 없고, 끊는 맛도 없었다. 국물은 더 심했다. 면이 목욕하고 나왔다고 할 정도로 심심했다. 그런데 먹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혀끝에 척척 감기는 매력을 발휘했다. 이제는 100% 순메밀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과의 비율을 논하는 경지에 올랐다. 평양냉면은 의정부, 을지로, 퇴계로, 마포 등지에 손꼽는 집이 여럿 포진해 있다.

함흥냉면

우리 집 최고의 외식 메뉴는 비빔냉면이었다. 어린 기억에 이랬다. 첫 젓가락은 달콤, 두 젓가락은 새콤, 세 젓가락 입에 넣으면 매콤함이 슬슬 올라오고, 네 젓가락부터는 입안이 화끈거리다 못해 아려왔다. 그런데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게 진짜배기 냉면’이라며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동무밥상’의 찹쌀순대 ‘남포면옥’의 어복쟁반

찹쌀순대

어린 시절 딱 한 번, 순대를 만들던 날의 기억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 네다섯 분까지 동원된 큰 잔치였다. 그날 우리 어머니표 이북 순대는 온통 빨강이었다. 빨간 고무 ‘다라이’, 빨간 돼지 피, 각종 채소와 찹쌀을 넣어 버무린 순대 소의 색도 빨강이었다. 막 삶아낸 이북 순대의 맛은 무척 찰졌다. 순대 겉껍질(창자)의 두께가 들쭉날쭉했는데 어린 입맛엔 씹기 편했는지 얇은 것만 골라 먹었다.

어복쟁반

어복쟁반은 둥근 놋 쟁반에 소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고 여럿이 둘러앉아 끓여 먹는 이북식 전골요리다. 원래는 평양 시장에서 생겨나고 발달한 서민음식인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고급음식으로 변신했다.
을지로 소 머리고기, 양지, 유통(젖가슴살)에 버섯, 쑥갓, 죽순, 은행, 달걀 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가며 끓여 먹는다. 초간장에 고기와 채소를 찍어 먹고, 남은 국물에 만두나 국수사리를 넣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평안도만두집’의 만두전골 ‘리북손만두’의 김치말이국수

[왼쪽/오른쪽]‘평안도만두집’의 만두전골 / ‘리북손만두’의 김치말이국수

만두

고등학생 때였다. 어머니가 김치만두를 빚는데 그 옆에서 함께 만두를 쌌다. 빨리 빚어 얼른 먹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앉은 자리에서 만두를 20개나 넘게 해치웠다.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낸 만두피로 빚었으니 요즘 시중에서 만나는 만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이즈가 컸다.
내수동 평안도만두집(02-723-6592)의 만두가 그에 못지않은 크기를 자랑한다. 만두 5개가 들어가는 만둣국 한 그릇이면 오후 내내 배가 부를 정도다. 만두에 동태전, 녹두빈대떡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이북식 만두전골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맛이 깊다. 

김치말이국수

김치말이국수는 우리 집 한겨울 야식 메뉴였다. 살얼음 동동 뜬 알싸한 국물에 배탈이 나도 정신 번쩍 드는 속 시원한 그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김치말이국수의 비법은 육수에 있다. 양지머리 등 고기 육수를 넣어 숙성한 김칫국물을 써야 맛이 풍부하고 깊다.
무교동 리북손만두(02-776-7361)에서는 직접 우려낸 사골 육수를 넣어 익힌 김치에 국수 또는 찬밥을 말고 오이채와 얼음을 띄워낸다. 

온반과 가릿국밥

둘 다 장국밥의 일종이다. 온반은 평안도식, 가릿국밥은 함경도식이다. 온반은 고기를 고아 우려낸 물에 밥과 함께 각종 고명(웃기)을 얹어낸다. 가릿국밥의 ‘가릿’은 갈비의 함경도 사투리다. 갈비를 곤 국물에 밥을 말아 선지, 두부, 파 등을 얹어 낸다. 가릿국밥은 먹는 방법이 따로 있는데, 국물을 먼저 다 떠먹고 밥은 나중에 양념 고추장에 비벼 먹는다. 

찜닭

남쪽에 닭백숙이 있다면, 북쪽엔 찜닭이 있다. 이북식 찜닭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육수에 먼저 닭을 살짝 삶아서 잡내를 없앤 다음 찜통에 쪄서 마무리로 익힌 뒤 상에 내어놓는다. 닭백숙은 소금을 찍어 먹는데, 이북식 찜닭은 살짝 익힌 부추와 함께 겨자, 식초가 들어간 고추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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