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지막 찻잔.. 못난이 석장승

못난이 석장승

경북 상주의 남장사라는 절 입구로 가는 길목에 돌로 된 장승 하나가 서 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키가 큰 이 석장승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장승의 표정이 원래 우스꽝스러운 것이 많지만 그래도 이 석장승의 몰골만큼 웃게 만드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보면 볼수록 참으로 못생겼다.

길쭉한 네모 모양의 돌덩이를 몸통으로 하고 그 위에 얼굴이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한쪽으로 삐딱하다. 툭 치면 금세라도 얼굴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섬세하게 다듬지 않고 원래 생긴 돌의 모양에서 가장자리와 이목구비만 살짝 손을 댄 듯 보인다. 그런데도 익살스러운 표정이 생생하다. 성난 표정의 큰 얼굴을 감당하기가 벅차 보이는 몸통은 의외로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듯하다. 설명에 의하면 여장승일 것이라고 한다. 좌우 균형도 맞지 않고, 얼굴의 생김새나 신체의 비례는 더더욱 맞지 않는다. 원래 장승이 과장된 표정으로 악귀를 물리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이라지만, 몸통의 자세와 얼굴 표정이 이렇게 다르게 표현된 것은 처음 보았다.  

화가 난 듯 눈 꼬리가 잔뜩 치켜 올라간 왕방울만한 두 눈 아래로 큼직한 세모 모양의 뭉툭한 주먹코가 삐뚜름하게 자리 잡았고, 어금니를 꽉 문 듯한 입은 한 줄로 쓱 그리다 말았는데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어찌 보면 미소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입 아래로 뻐드렁니처럼 두 개의 이빨이 삐죽 새겨져 있어 나도 모르게 ‘에구, 못난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표정으로 보아 누군가를 위협하는 듯이 보이는데 전혀 겁이 나지 않는다. 괜히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 실은 심성 착한 이웃집 할매처럼 보인다.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장승이 잠시 나들이라도 갔는지 부랴부랴 대리 보초를 서는 모양새다. 방금 전까지 밭에서 일하다 불려오기라도 한 듯, 흙 묻은 채 엉거주춤 서 있는 모양새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억지로 불려온 처지이지만 그래도 맡은 바 임무는 해야겠기에 개미 한 마리 어쩌지 못할 위인이 커다란 눈만 있는 대로 부라리고 있는 형상이다. 짓궂은 아이들이 호통치는 할매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애써 가꾼 호박에 말뚝을 박아도 ‘이놈들!’ 한마디 하고는 그냥 눈감아주는 순박한 성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남장사 극락보전에는 세 개의 불상이 있다. 보관寶冠을 쓴 근엄하고 자애로운 표정의 불상은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지만, 이곳을 다녀온 뒤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잘 생긴 불상이 아니라 바로 못난이 석장승이다. 어떤 석공의 솜씨인지는 몰라도 해학이 물씬 느껴진다. 연인을 만나러 바람처럼 달려가는 발길 붙잡아 일을 맡긴 것일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하기 싫은데 억지로 붙잡아놓고는 돌을 쪼라고 성화를 부리니 괜히 심통이 난 석공이 투덜거리며 대충 매만진 솜씨 같기도 하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던가. 매끈하게 다듬어도 될 얼굴선이며 뒤통수가 울퉁불퉁하다. 일을 시킨 윗사람이 있을 때는 얼굴 면을 평평하게 다듬다가 감시자가 가버리자 얼렁뚱땅 만들어놓고는 냅다 내빼는 석공의 모습이 장승의 표정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하다.

 안쪽으로 잔뜩 몰려있는 눈을 저렇게 치뜨려면 어지간히 눈에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부아가 치민 상태에서 정釘을 잡았으니 손길이 거칠 것은 뻔한 일. “너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보러 가고….” 하면서 코를 조각하다 망치로 한 대 세게 후려쳐서 저렇게 펑퍼짐한 주먹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름난 석공이 흠결 하나 없이 아름답고 완벽한 조화미를 갖춘 극락보전 연화대 위의 금불상을 제작하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을 때, 무심히 길가에 놓인 바위에 이렇게 못난 장승을 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불상의 손가락 하나, 옷 주름 한 자락이라도 실수하면 안되는  작업이기에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일을 하였으니 자칫하면 신경줄이 끊어질 정도로 예민해졌을 것이다. 불상 제작의 모든 작업에 임할 때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면 이 장승은 마음 가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무렇게나 툭툭 정을 망치로 두들겨 돌 안에 숨어있는 표정을 끌어낸 것이리라.

바람 한 점 쉽사리 드나들 수 없는 웅장한 전각 안이 아니어도 좋다, 화려하게 핀 꽃을 꺾어 바치며 많은 이들이 우러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금빛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이마 한가운데에 보석이 박히지 않아도 괜찮다. 돌 빛깔 그대로인 채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그렇게 말없이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서 키 큰 소나무랑 땅에 엎디어 있는 풀이랑 사방천지 아무데나 피어나는 망초와 애기똥풀, 쑥부쟁이들이랑 더불어 어우렁더우렁 지내는 게 좋으니 제발 더 이상 다듬으려 하지 말라고 석공에게 간곡히 당부하였을지도 모른다. 돌의 마음을 읽은 석공이 최소한의 손길로 장승을 세상에 내보내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장승이 지금 울타리에 안에 모셔져 있다. 연세가 180세가량 되었으니 연로하긴 하나 돌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낮은 돌담을 두른 넓은 터 한가운데 휑하니 서 있는 모습이 왠지 민망하고 멋쩍어 보인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귀한 대접을 받는 셈이다. 주인공도 아닌데 엉겁결에 무대 중앙에 나선 만년 조연배우가 눈부신 조명이 어색하여 몸을 비비 꼬는 듯 보인다. 원래 있던 곳에서 저수지 공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으려니 본연의 임무는 이미 오래전에 잊고, 저렇게 건성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손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고먼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보다 투박하고 못생긴 장승이 오히려 시린 내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 줄 것만 같다. 감히 만져볼 수 없는 불상과는 다르게 생기다 만 귀를 슬쩍 잡아당겨도 뭐라 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저런 일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금방이라도 혼내줄 것 같고,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줄 것만 같은 못난이 석장승. 내 몸 하나 온전히 가려주지는 못하지만 그 등 뒤에 숨으면 웬만한 바람쯤은 비껴갈 것 같다.

돌아오는 길, 가슴 속에 무거운 돌장승 하나 품고 오는데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볍다.

▲저자: 정선모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잊지 못할 노래 한 곡쯤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저마다 그 노래를 떠올리며
때론 위로 받고 상처를 다독이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수필로 부르는 노래다.
팝송이든 민요든 수필로 부르는 노래는
통기타의 음색처럼 나직하고 묵직한 여운을 전해준다.
수필로 부르는 노래가 누군가의 귓가에
혹은 마음에 가 닿기를,
그리하여 삶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낸다.
2018년 가을에
저자: 정선모 <저자 소개>

월간⟪한국시⟫로 등단(1989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수필문우회 회원
한강문학작가회 회장
현 도서출판SUN 대표

저서는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 바람의 선물 ▲아버지의 기둥 ▲ 너를 위한 노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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