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비쉬' 시대 '콩글리쉬'라도 당당하게 내세우는 언어적 자신감 필요"

“영어가 점점 특정 언어인 ‘잉글리시(특정 원어국민의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 언어로서 ‘글로비시(Globish . 세계인이 쓰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20세기가 잉글리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글로비시 시대가 되고 있다.”                        

▲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 글로비시 시대에 ‘콩글리쉬’도 인정받아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가 아닌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영어 능력을 연마한다는 것은 그에 앞서 우선 우리말인 한국어의 구사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영어를 외국어(EFL)로 학습 하는 데 있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점이다.

진정한 경쟁력은 영어 능력에 앞서 한국어 실력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 영어는 능통하게 하는데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면 큰 의미가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잘 하고나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순서다. 한국 사회에서 발을 붙이고 경쟁해야하는 한국인이라면 말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우리말로 이루어지는 표현 능력이 먼저 탁월해야 한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능숙하게 변환시킬 수 있는 ‘바이링걸(bilingual)’ 곧 두 가지의 언어 능력이 절대 필요하다. 한국어의 표현력에 한계가 있다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게 되면 한국어의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한국어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한다 해도 한국인이라면 김치, 된장, 고추장, 청국장, 찌개의 맛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영어를 한다고 해서 우리 고유의 미각을 잃어버리지 않듯 영어가 한국인의 정신을 흐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칸디나비아어 등 세계 146개의 언어들을 받아들여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어휘 영역을 구축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 각국의 언어를 빌려 잡동사니처럼 만들어진 말이다. 그처럼 영어는 생성 단계에서부터 세계 언어들을 받아들여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세계를 향해 다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니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제는 아예 영어의 주권을 세계인들에게 넘겨주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어는 세계를 향해 열린 언어가 되어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영어를 실용적으로 배우되 인도나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이 ‘우리 방식의 영어’를 만들겠다는 진취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어떨까 싶다. 

지금 시대는 영어가 점점 특정 언어인 ‘잉글리시(특정 원어국민의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 언어로서 ‘글로비시(Globish . 세계인이 쓰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20세기가 잉글리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글로비시 시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글로비시 시대에 일본식 영어를 뜻하는 ‘재플리시(Japlish)’ 또는 ‘쟁글리시(Janglish)’는 당당하게 국제사회에서도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언어학자들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어 연구도 활발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콩글리쉬(Konglish)’를 당당히 내세우지 못할까.

◇ 국어 실력 부대껴 떠난 영어 원어민 교포들

1990년대 후반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던 적이 있다. 당시 기업들은 외국에 개방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대기업들은 새로운 경제 환경에 대응해 영어 사용 능력을 갖춘 인력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교포 2세들을 고액 연봉을 주며 앞 다투어 영입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가지 않아 한국어와 한국의 사회문화체계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돌아가고 말았다. 누가 봐도 영어는 원어민의 수준을 갖췄지만 우리말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다. 개인의 의사표현 방편이 다양한 인터넷 시대에 현대인들이 우리말과 영어를 논리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고, 듣는다는 것은 곧바로 출중한 능력이 된다.

따지고 보면 언어 표현력이 개인 역량의 80% 정도는 된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다른 동물 세계와는 달리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특징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이 사는 공동체 속에서 생각, 사상, 철학을 소통하며 교감하고 공유하는 품격 있는 사회적 활동이다.

언어와 리더십 전문가인 제임스 흄스 교수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리더십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역대 다섯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문 작가이며 아폴로 11의 역사적인 달 착륙 기념 표식의 문안 작성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 위인들이 자신의 추종자나 지지자들을 상대로 어떻게 연설했고 설득했는지 그 효과적인 기법을 정리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한마디로 '리더십의 언어'라고 정의했다. 

바로 언어를 잘 활용하고 구사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성공의 요체라는 의미다. 인류의 역사는 탁월한 리더십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교감과 전달의 통로가 되는 언어를 잘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인간의 사회 활동은 바로 언어가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 속담은 언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는 언어 세계에서 우리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면서 여기에 영어까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볼프강 괴테는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라고까지 말했다.

◇ 난독증에 걸린 한국의 조기 유학생들

한편, 영어 초기 유학이나 교육이 성행하면서 난독증에 걸려 한국말을 제대로 읽고, 쓰기를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럴 경우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인이 원어민처럼 영어 발음을 하고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고 하자. 그래도 한국어의 맞춤법이 틀리고 올바른 어휘들을 쓸 줄 모른다고 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 터전을 잡아 살면서 영어는 잘 하는데 한국말이 서툴다면 오히려 조롱감이 될 수도 있다.

영어의 표현력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원어민이나 우리 같은 외국인이나 똑 같다. 단순히 생활영어만을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품격이 있는 말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우리말에서도 구술이나 논술이 중요하듯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에게《타임》《뉴스위크》《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와 같은 시사 잡지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을 것부터 권장한다. 수준 높은 어휘와 표현력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들도 자국어인 영어를 교양과정에서부터 중요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국인인 만큼 먼저 우리말부터 능력을 키워 놓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국사회에 살면서 우리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능력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영어의 어휘는 개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 즉 ‘인식어(recognition words)’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말, 즉 ‘활용어(active words)’로 나누어진다.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어휘는 당연히 평소 생활에서 쓰는 것보다 월등히 많다. 고도의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이해하는 용어의 폭이 넓다. 그만큼 그들은 자기 영역에서 쓰는 고급 어휘를 많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한정된 단어의 범위 내에서 생각을 표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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