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문살
아끼던 액자를 떨어뜨려 귀퉁이가 깨졌다. 나무로 만든 것인데 아랫부분 왼쪽 모서리에 책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작은 펜이 조각되어있어 정작 사진 속 인물보다 그 장식에 더 눈이 가는 멋진 액자였다. 친구가 외국 여행을 다녀온 기념으로 선물해준 것이어서 먼지가 앉을세라 수시로 닦아주며 소중히 다뤘는데 그만 옷깃에 스치는 바람에 그리된 것이다.

떨어져나간 조각들을 주워 접착제로 붙였지만, 펜의 끝 부분이 어디로 튀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 부분이 균형을 잡아주었던 것인지 예전 같지 않게 기우뚱하니 불안정해 보인다. 사진틀도 조금 떨어져 나갔는데 고심 끝에 나무젓가락을 길이게 맞게 잘라 틀에 끼우고, 진하게 탄 커피를 발라 비슷하게 색을 칠하였더니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다. 저 작은 나뭇조각이 사진틀을 단단히 버텨주고 있으니 한동안은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뉴스프리존 [강릉 절]

어설픈 솜씨로 끼워둔 액자 속의 나뭇조각을 보니 조계사의 꽃문살이 떠오른다. 큰 오라버니가 60여 년 전에 조각한 꽃문살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것을 며칠 전에도 보고 왔다. 오방색 화려한 단청을 입힌 꽃문살은 비가 오는 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계사 보수 공사를 맡아 하실 때, 오라버니는 일요일만 되면 어머니가 챙겨준 아버지 옷을 가지고 조계사에 갔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조계사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위해 오라버니가 심부름을 한 것이다.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공사 현장이라 일손이 필요한 건 당연할 터. 열네 살이던 오라버니는 아버지에게 붙잡혀 꼼짝없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 어린 나이이니 힘든 일은 못 시키고, 전쟁 통에 부서진 문살을 조각하여 끼워 맞추거나 기둥에 난 총탄 자국을 메울 나무못을 깎는 일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모처럼의 휴일에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하려니 제대로 차분하게 본을 떠 조각을 하였을 리 만무하다. 오라버니가 조각하여 끼워 넣은 문살 중에 어떤 것은 거칠고 대충한 티가 역력하다. 그런데도 오라버니의 손길을 보태 제 모양을 찾은 모란꽃이나 향나무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대웅전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유치한 솜씨로 보수된 문살이지만, 어느 한 조각이라도 마음대로 손댈 수 없도록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팔십이 넘은 오라버니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남몰래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래의 꽃문양보다 입체감도 덜하고, 섬세하게 다듬지 않아 표가 나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관광객들은 그저 아름다운 꽃문살에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오라버니하고 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처음 꽃문살을 만든 장인의 솜씨에는 감히 근처에도 가볼 수 없지만, 그래도 오라버니가 제대로 한 일은 바로 격자문살의 길이를 딱 맞추었다는 것이다. 화려한 문양을 조각한 다음 사선의 격자문살로 문틀에 맞게 끼워 넣어야 버티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오라버니도 아버지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으니, 꽃모양은 대충 조각해도 길이만큼은 정확하게 잘라 넣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무는 서로 단단히 맞물려 문살과 문틀이 한 몸이 되어갔을 것이다.

꽃문살을 버텨주는 격자문살을 볼 때마다 오라버니의 주름진 얼굴과 겹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신혼 초부터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우리 집 장남인 큰 오라버니. 자신이 하고 싶었던 분야에 몇 번이나 합격을 했는데도 아버지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라고 강요하여 결국 평생을 그렇게 좁은 세상에서 살아야했다. 올망졸망한 동생들 네 명과 처자식까지 그 작은 어깨에 짊어지고 세파를 헤쳐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인지 팔순이 넘은 오라버니의 관절은 성한 곳이 없다.

덜덜 떠는 오빠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던 나의 결혼식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딸 같은 동생을 시집보내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혼주석에  앉아야 하는 부담감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자신은 귀퉁이에 겨우 손가락, 발가락만 살짝 보일 뿐인데도 문짝 뒤에서 무거운 모란이나 매화나무를 받쳐 들고 평생을 버텨온 격자문살을 닮은 오라버니의 일생. 그 덕분에 모란꽃은 저리도 화사하게 피어났고, 향나무는 그윽한 향기를 나무속에 마음껏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힘들다고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문살 전체가 결국은 부서지지 않았을까? 일하기 싫다고 오라버니가 길이를 제멋대로 잘랐다거나 버팀목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뛰쳐나가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꽃살문은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엎디어 기도하는, 신성한 불상을 모셔둔 조계사 대웅전 꽃살문을 보며 정작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 한 송이는 바로 오라버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소임을 다한 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조계사 뜰을 거니는 머리 희끗한 오라버니를 한참 바라본다. 이제 보니 오라버니가 웃는 모습이 연화대 위에 계신 그분과 참으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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