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노래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에바 캐시디의 노래를 듣는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꾸밈음이 거의 없이 부르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노래로 악수를 청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받는다. 노래가 주는 위안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작 자신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무명의 가수였고 33세로 요절하였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두고두고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기타의 울림이 순수한 그녀의 목소리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이유 없이 쓸쓸해지는 날,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듣는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지금 듣고 있는 CD도 그 친구가 녹음하여 준 것이다. 34년 만에 나타나서 한바탕 노래판을 벌이고는 이 CD 한 장 손에 쥐어주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갔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 서울에 있는 기독학생 모임에서였다. 까무잡잡하고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던 친구는 노래도 잘 부르고 기타도 아주 잘 쳤다. 그의 주위엔 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는 했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목의 핏줄이 터질 것처럼 소리 높여 ‘Let it be’를 부르면서 억지로 마음을 달랬고,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부르면서 저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했다. 당시에 우리는 노래로 생각하고, 분노하고, 외치고, 울고 웃었다. 

최루탄 가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던 대학 시절, 반골 기질이 유난히 강했던 친구는 당연히 민주화 운동에 앞장을 섰다. 서울시 경찰청에서 근무하던 오라버니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그 친구가 체포되기 직전에 달아나 차라리 다행이라며 나를 안심시키기도 하였다. 동생의 친구를 잡아 혹독한 고문을 받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봉천동 달동네에서 빈민 선교를 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간간히 들려온 소문에는 그가 우리나라를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이 그를 숨 막히게 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 놓아둔 채 훌쩍 이 땅을 떠난 그 심정을 우린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늘 빚진 마음이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의 소식을 얼마 전에 전해 들었다. 그 친구와 대학동창이던 이가 동문회 명부를 보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의 소재를 알아내어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메일을 통해 한국에 나온다는 연락을 받은 우리들은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약속 장소를 일부러 5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림’으로 잡은 것은 일종의 나무람 섞인 배려였다. 몰라보게 변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커피숍에 들어서는 친구를 우리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팽팽하던 눈가에 주름이 잡혔어도,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은 여전하였다. 그동안 무얼 하며 지냈는지 시시콜콜 물어보지도 않았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살아있으니 만나긴 만나는구나. 잘 지냈어? 등등 몇 마디 주고받다가 대뜸 내가 말했다.

“네 노래 듣고 싶어. 기타 솜씨 여전하지?”

친구는 쿡 웃더니 어디 노래 부를 만한 장소 좀 알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노래판이 벌어진 것이다. 음악동호인인 지인에게 부탁하여 작은 공간을 빌렸는데, 그곳에 마침 통기타도 있었다. 친구는 기타를 잡고 잠시 줄을 고르더니 가볍게 튕기기 시작하였다. 얼마 만에 듣는 선율인가. 가슴 속에서 세찬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듯하였다.
 인생의 황금기였던 아름다운 청년시절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겠다며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닌 친구. 그 여파로 자신이 태어난 이 땅을 떠나 타국생활의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그가 겪었을 모든 일들이 기타소리에 녹아드는 듯하였다. 자의 반 타의 반 낯선 곳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곳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화도 이루고, 온 국민이 간절하게 열망하던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섰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도래했는데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인 것만 같아 가슴 한 구석에 녹지 않는 얼음이 박힌 듯 아려왔다.

그날, 우리가 부른 노래가 몇 곡이나 되었을까?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화음을 이루며 부르는 노래가 처음엔 조용히 내리는 빗방울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더니 이윽고 오대양 육대주를 흐르는 바다가 되었다. 서울과 독일이라는 공간도, 34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기세등등했던 그 시절로 단숨에 데려가 준 것은 바로 노래의 힘이었다.

만나자마자 부르기 시작한 노래가 한밤중이 되어도 그칠 줄 몰랐다. 기타 줄을 튕길 때부터 말이 필요 없었다. 예전에 함께 부르던 노래들이 그동안 가슴 저 밑바닥에 단단히 응고되어 가라앉아 있다가 기타소리를 듣자 스멀스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밀봉된 노랫말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몇십 년 만에 부르는 데도 가사가 모두 생각이 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줄이 끊어져라 기타를 쳐대던 혈기왕성했던 친구는 이제 줄이 끊어질 세라 살살 어루만지며 기타를 친다. 핏대를 세우며 부르던 노래는 간곳없고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같은 노래인데도 예전과는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의 무게를 실어 차분하게 노래를 부르는 친구의 모습에 오히려 큰 감동을 받는다. 여전히 맑은 음색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주옥같은 노래들을 하나하나 부르면 그 노래를 따라 옛 친구들도 함께 불려나온다. 둘이 셋이 되고, 넷이 되고, 다섯이 된다. 이윽고 커다란 원이 되어 옛날처럼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대 지치고 서러울 때/ 두 눈에 어린 눈물 씻어주리라/ 고난이 와도, 오 물리치리라/ 외로운 그대 위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그대 지키리

노래로 할 말을 다하였던 친구는 헤어지기 전에 아주 흡족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모인 우리들을 한 번씩 힘차게 안았다. 그날 부른 노래는 너를 위한 노래였고, 우리 모두를 위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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