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투위 관계자들의 침묵시위 1975년 강제 축출된 동아투위 위원들은 6개월 동안 출근시간에 회사 앞에 도열한 뒤 신문회관 혹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까지 침묵시위를 벌였다.
40년 전 언론자유수호를 외치다 거리로 내몰렸던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국가배상금을 받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 사건은 대법원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직 언론인들이 끝까지 웃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좋은 소식이 나오긴 했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4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에서 활동하다 해직당한 고 성유보 선생과 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부영 전 의원 등 14명이 대한민국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끝났다(소멸시효 완성)는 판결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고 성유보 선생 등은 1974년 10월 24일 박정희 정부의 보도 통제와 언론인 연행 등에 항의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곧바로 기업에 '앞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고, 무더기 광고 해약사태가 벌어지자 동아일보는 일부 광고지면을 백지상태로 내보내게 됐다. 이듬해 사측은 경영 악화를 내세워 기자 18명을 해고한다. 추가 해임과 무기한 정직은 1975년 6월까지 이어졌다.
 

거리로 내몰린 기자, PD, 아나운서와 그의 가족 등 135명은 대량 해직사태에 정부가 개입했다며 2009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1년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가 "동아일보 광고 탄압과 언론인 대량 해임은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정책으로 자행됐다"며 "국가는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한 덕분이었다. 해직 언론인들은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마다 각각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뿐 아니라 주요일간지에 사죄광고를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국가 불법' 인정받았지만 '소멸시효'에 울다
 

▲  지난 2008년 11월 17일 낮 12시 30분 '동아투위' 위원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지난 1975년 강제 해직사태에 대한 사과와 화해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6부·재판장 이승호 부장판사)와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 모두 동아투위 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라고 인정했다. 신문 제작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언론인을 한꺼번에 해임한 것을 단순한 경영난 해결방안으로 보기 어렵고,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과거사정리위 조사나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박정희 정부의 개입을 뒷받침한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해직 언론인들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아니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2004년에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3년 또는 5년이 지났다는 얘기다. 법원은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 규명결정 통지를 받은 2008년 11월경부터 시효를 따져야 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24일 대법원 2부는 다른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피고(대한민국)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며 고법 판결은 위법하다고 했다. 원고 권근술, 김동현, 김진홍, 김태진, 김학천, 성유보, 송준오, 오정환, 이부영, 이종대, 임채정, 조학래, 허육, 황의방은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으로 국가가 입법 등 적절한 조치를 하리라 믿었는데, 국가는 그것을 저버렸다(신의성실의 원칙 위배)고 판단한 것이다.
 

파기환송심 판결에 따라 주요 일간지에서 '대한민국' 이름으로 실린 <동아일보 해직 언론인에 대한 사과문>을 볼 수도 있다. 해직 언론인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근거로 국가는 자신들의 피해 및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사죄광고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이 규정 때문에 사죄광고라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해직 언론인들이 국가배상금 청구 패소에 대비해 따로 청구한 '사죄광고' 역시 파기환송 대상이라고 했다. 사죄광고 게재가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는 방법인지를 두고 다시 한 번 검토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 1975년 2층 공무국에서 단식중인 동아일보 기자들 모습 동아투위 관계자들이 1975년 2층 공무국에서 단식중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 구부린 자세로 검은 안경을 쓴 서른살의 정연주. 그 왼쪽에 서있는 이가 고 성유보 선생.

 

아직 넘어야 할 고개 많아... 40년째 가슴 졸이는 해직 언론인들
 

'나쁜 소식'도 함께 들렸다. 대법원은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을 받지 않은 나머지 원고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을 수령했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이전 재판부는 손해배상금 청구권 자체는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그마저도 없다고 한 셈이다. 이 판단의 근거인 민주화운동법 18조 2항은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대에 올라가 있다(관련 기사 :민주화운동 국가배상청구 막은 대법원... 헌재는?).
 

넘어야 할 고개는 더 있다. 동아일보사는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에 불복, 2009년 3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은 행정처분이 아니라며 잇달아 각하 판결을 내렸지만 2013년 1월, 이 사건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아왔다. 국가배상금 청구 소송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 결정이었다. 대법원은 진실규명결정 역시 행정 처분이라고 봤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도 같은 이유로 이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심리를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인을 해고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행정5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마저 9월 24일 동아일보사 손을 들어줬다. 남은 것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이 때문에 24일 재판부는 "피고의 동아일보사 광고 탄압과 원고 등의 해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심리·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40년을 견뎌왔지만 '동아투위' 사람에게는 가슴 졸일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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