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어의(語義)와 함께 언어문화적 맥락 이해가 중요

▲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는 생태적으로 체득한 언어인가 아니면 학습을 통해 터득한 언어인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모국어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사회의 언어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 저절로 언어소통 능력을 구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외국어는 특정 언어를 꾸준하게 학습함으로써 일정 부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통상 모국어는 우리 두뇌의 장기기억 속에 내장되지만 외국어는 단기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래서 모국어는 오래 쓰지 않아도 기억을 해내지만 외국어는 자주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모국어는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도 어휘나 표현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의사소통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외국어로 선택한 언어는 아무리 배워도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유아기에서부터 외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환경에서 키우면 자연스럽게 그 외국어를 원어민(native speaker)처럼 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아이를 어릴 때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기르게 되면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대신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서툴게 되는 이치다. 그렇기에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하게 되면 '지적능력'(brain power)을 키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게 되니까 그렇다.

아무리 쉬운 표현이라도 원어민은 자신들의 언어문화로 쉽게 이해하지만 외국인은 개별 단어는 다 아는데도 전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 어의(語義)만이 아닌 그 언어의 문화적 맥락(context)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사회에 '낙하산 인사'가 화두가 되고 있다. 그 말의 해석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영어에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여러 단어가 있다. '정실주의'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cronyism', 'nepotism', 'favouritism'이나 인사행정에서 '엽관제'라고 하는 'spoils system'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인에 대한 편애나 차별 대우’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전문용어다.

인터넷자료에 의하면 낙하산 인사를 'high-handed personnel administration'(강압적인 인사행정)이나 직역을 해 'parachute appointment'(낙하산 임명)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자지에서는 직역을 해서 'parachute appointment'라 번역하면서 부연해  'political appointment of ex-politicians and ex-bureaucrats into public and private corporations'(공공과 민간 기업에 전직 정치인이나 전직 관료를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것)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 집단'을 뜻하는 'conglomerate'가 있음에도 고유명사처럼 되어 있는'재벌'을 'Chaebol'로 직역하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 "이해와 배경을 같이하는 집단의 비공식 네트워크"

우리말의 낙하산 인사라는 어의에 가장 적합한 영어식 표현은 'jobs for the boys'라고 할 수 있다. 그 뜻을 달리 보자면 ‘자기사람 챙기기’라 할 수도 있다. 이 말에 대해 영국의 콜린스영어사전(Collins English Dictionary)은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1) 자격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특정 직책에 임명하는 것(appointment of one's supporters to posts, without reference to their qualifications or ability)

2) 측근들이나 또는 호의적인 사람들을 임명하거나 또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만드는 것    (appointments given to or created for allies and favourites) 

이 표현에서 'the boys'라는 말은 '공통의 이익과 배경을 나누는 특정그룹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원래 이 말은 영국의 계급제도에서 특정 학연, 혈연, 지연 등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의 사회적 결속을 의미하는 'old boys network'에서 유래되었다.

영국의 특수 공립학교 출신들이 권력과 특전을 독점하던 폐쇄적 집단의 사람들(old boys) 끼리의 유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양반과 같은 계급이랄까. 영국에서는 아직도 그러한 상류계급의 정서는 오늘에 와서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은 비단 영국만이 아니다. 어느 사회나 그 나름의 특별 계층이나 계급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사회도 학연, 혈연, 지연을 바탕으로 특정 그룹 사람들이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Jobs for the boys'라는 말은 영국에서는 20세기가 훨씬 지나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미국에서는 이 말이 널리 사용된 기록이 나온다. 사실 이 말은 세계 제 1차,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슬로건으로 쓰일 때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말은 세계대전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전역하는 장병들에게 국민적 환영과 감사를 표시하면서 사용된 캐치프레이즈였다. 1918년 미국의 유나이티드 일루미네이팅이라는 기업은 이 표현을 활용해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광고문구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어두운 생각을 떨쳐 버리십시오! 앞으로 국가 재건의 시대에 경제를 일으키고 자신감과 밝은 희망을 만들어 갑시다. 우리는 조국에 돌아오는 군 장병 여러분들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들(new jobs for the boys in the Service)을 창출하는데 함께 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문화가 변화하듯이 언어의 쓰임새도 달라지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청소년 고용 불안 시대에 미국 기업의 1918년식 광고 표현을 그 당시 의미대로 쓸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   'jobs for the boys'는 우리식의 정실주의 낙하산 인사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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