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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씨앗의 위력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회장)
  • 승인 2018.11.15 05:02
  • 수정 2018.11.1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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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위력
요즘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갑 질과 막말이 세상을 아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막말과 갑 질이 어디 이사람 뿐이겠습니까? ‘홍카콜라’라고 자칭하는 홍준표 자유 한국당 전 대표의 막말은 그 도가 한참 넘었습니다. 그리고 국감장에서 그야말로 막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이 사회에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에 씨앗도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씨앗을 깊이 연구하여 씨앗의 위력을 터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각종 식물의 씨앗을 가지고 웬만한 질병은 고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씨앗은 식물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글에도 씨가 있고, 말에도 씨가 있으며, 마음에도 씨가 있습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 되고, 하나 둘 고운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맑고 밝고 훈훈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리고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하나 둘 미소 짓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 주위가 활짝 웃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말에도 씨앗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다는 말이 있지요. 이 속담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대로 되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말대로 되는 것이 인과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남을 칭찬하면 자신은 물론 주변도 건강하게 만듭니다.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을 보고 칭찬하면, 내 자신이 어느덧 즐거움 속에 숨 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럼 나도 건강하고 남도 건강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시원한 감로수(甘露水)가 되는 것입니다.

또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기 쉽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말을 입 밖으로 낼 줄 알아야 남에게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씨앗은 그 자체로 존재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씨앗이란 싹을 틔우고 줄기와 가지가 나고 열매 맺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마찬 가지로 글씨, 말씨, 마음씨도 ‘씨’를 갖고 있으며, 그 ‘씨’는 세상에 뿌려지고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씨든 말씨든 마음씨든 그 씨를 뿌립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뿌린 씨의 열매를 거둔다는 이치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글을 쓰고, 말을 하며, 마음을 먹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씨앗의 파종(播種)일 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행을 신중히 하는 것은 미덕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유교윤리가 지배했던 국가에서는 사람의 언행에 다소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곤 했습니다. ‘언여기인(言如其人)’이라고 해서 말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고 여겼습니다.

세치 혀를 여하히 놀렸느냐에 따라 인격을 달리 평가받습니다. 심지어는 일신의 영달과 망신이 극명하게 갈리기까지 했으니 역사를 통해 그런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 전국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달변으로 제후를 요리해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반대로 은(殷)나라 마지막 왕족 비간(比干)은 혀를 함부로 놀려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려야 했습니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거세(去勢)의 치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진(晉)나라의 문학가 부현(傅玄)은「병종구입 화종구출(病從口入 禍從口出)」즉, ‘병(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932년에 최초로 유교경전을 조판 · 인쇄하도록 한 사람으로 알려진 유학자이며 5대째 재상을 역임한 풍도(馮道)는「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즉, ‘입은 화(禍)의 대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일언부중 천어무용(一言不中 千語無用)」즉, 한 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천 마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그 사람의 환경은 생각이 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말씨가 됩니다. 침묵이 금이 될 수도 있고, 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것이 말의 위력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씨가 혀를 고쳐줍니다. 사람이 적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불평하는 말도 그만큼 늘 것이고, 정신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사랑의 말이 사랑을 낳고 미움의 말이 미움을 부릅니다.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어떻게든 돌아옵니다. 그래서 말씨는 곧 말의 씨앗인 것입니다.

말의 씨앗이 좋아하는 텃밭은 가벼운 입입니다. 그곳에서 움을 틔우고 새순을 돋아 올려 무럭무럭 자라기를 좋아합니다. 혀와 침과 수다가 생장을 돕는 비료입니다. 그 말들로 인해 사람들은 웃거나 화를 냅니다. 하지만 적당히 침묵하거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주 좋은 품종으로 자랄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고,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몽골 속담도 있습니다.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말 한 마디로 백만금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말을 할수록 본전 잃고 빚쟁이가 되는 겨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성공하고, 말로 실패하는 말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의 말 씀씀이를 되돌아보고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의 중요성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후하게 하고, 모든 일은 화(和)와 유(柔)로 해결합니다. 그러면 능히 강(剛)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자기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이 아름답고 평온하게 만드는 글씨, 말씨, 마음 씨앗의 위력이 아닐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1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회장)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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