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하는 여성과학자는 누구인가.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한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고, 영화 ‘밤쉘’(2018)로 유명해진 과학자 헤디 라머(Hedy Lamarr)? 대다수 사람들이 단번에 떠올릴 정도로 대중에게 알려진 여성 과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획기적인 발견으로 우리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남성의 영역’이라고 치부했던 과학계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과학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을 다룬 책 3권을 소개한다.

△그들이 마주해야했던 유리천장 「히든 피겨스」

“과거 과학계 내에서는 여성이 남자만큼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했어요. 같이 연구하는 동료로 여기지도 않았고요. 이건 비단 외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2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이레나 교수(의학과)의 말처럼 과거 여성이 과학계로 진입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기존의 과학자는 여성을 과학 연구 파트너로 삼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그들의 자질을 의심했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 역시 ‘여성이 어떻게 과학을 하느냐’고 의심하며 검증하려 드는 주변의 시선에 맞서야했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NASA에서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은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호기심, 열정, 압박감을 견디는 능력 등 모든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 여성들이 낮은 기대감이라는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남성만큼 훌륭하며 남성과 동등하게 평가받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히든 피겨스」,p.187)’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NASA에서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은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호기심, 열정, 압박감을 견디는 능력 등 모든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 여성들이 낮은 기대감이라는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남성만큼 훌륭하며 남성과 동등하게 평가받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히든 피겨스」,p.187)’

 ‘여자들은 지성을 낫처럼 휘둘러서 낮은 기대 수준이라는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 연구 보고서 작성을 위해 특정 엔지니어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여자들도 최종 결과물에 이름을 싣는 일은 드물었다. 엔지니어들은 컴퓨터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인정 욕망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쨌건 여자였으니까. (「히든 피겨스」,p.125)’

하지만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도로시 본(Dorothy Vaughan), 메리 잭슨(Mary Jackson)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자신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 같은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냈다. 컴퓨터가 낯설던 그 시대, 나사(NASA)의 전신인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고 나아가 러시아와의 경쟁으로 치열해진 우주경쟁에 큰 역할을 해냈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졌던 모든 고된 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웨스트 컴퓨팅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무너지면 자신들뿐 아니라 다음에 오는 여자들의 기회까지 박탈된다고 느꼈다. (「히든 피겨스」,p.80)’

△기억해야 할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과거의 수많은 여성 과학자들은 후대를 위해 길라잡이가 될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실존했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쓴 「히든 피겨스」의 저자 역시 역사책이 외면한 여성 과학자들을 발굴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새로운 이름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했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번거롭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책을 위한 초석이 마련됐고, 그 때 즈음 저자는 나사에서 ‘여성 컴퓨터’로 활약했던 이들의 숫자가 1000명도 넘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구나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직업 세계에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숨겨 있었던 것이다.

왜 과학과 대중은 여성을 기억하지 않을까? 뛰어난 업적을 세운 여성 과학자 16명이 소개된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여성 과학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대개 함께 연구하는 남성 과학자를 보조하기만 했을 것이라는 세상의 고정관념 때문에 승진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 마이트너와 우젠슝은 남성 공동 연구자들이 받은 노벨상을 함께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기여도가 당연히 남성 공동 연구자보다 적었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성과학자들은 이처럼 수많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능력으로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p.9)’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 파견되어 병사들을 지킨 헌신적인 인물로 알려졌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발휘되었습니다. 굳은 의지와 날카롭고 분석적인 태도로 자신의 뜻을 펼쳤지요. 나이팅게일은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객관적인 근거 자료에 입각한 과학적 보건 의료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이라는 것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p.94~95)’

뿐만 아니라 저자는 16명의 여성 과학자 모두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여성 과학자’가 아닌 ‘과학자’로 살고자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그들을 기억한다.

‘어머니나 아내, 사교계의 꽃과 같은 전통적인 역할로 제한된 삶에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살아있었고 끊임없이 도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p10~11)’

△앞으로도 계속될 투쟁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

2018년 현재에도 여성, 특히나 과학을 하는 여성이 겪는 차별은 진행형이다. 현대의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 교수는 “아직도 일부 남성들은 그들을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 생각하며 여성들은 능력을 신뢰받지 못해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가 제공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자연?공학계열 여성 졸업자 취업률은 64.5%로, 71.3%인 남성 졸업자 취업률보다 6.8% 낮게 조사됐다. 신규채용 시 3,5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비율 역시 남성은 62.0%, 여성은 50.4%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과학계 내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취업의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를 집필한 이들 역시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로서의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책의 공동저자 권소영 연구원은 여성 연구원으로서 임신했을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제일 먼저, 임신한 연구원은 실험실 출입을 금한다. (…) 실험실 출입을 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사실 연구원에게 실험을 하지 말고 어떤 성과를 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니,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나는 직무 변경을 통해 지원 업무나 간접 부서로 이동해야 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p.18)’

 ‘그때만 해도 내가 연구소에서 거의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을 했고, 아주 어렵게 꺼낸 말이 3개월이었다. (…) 불과 6~7년 전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우리의 모습이다. 물론 나의 선배들은 육아휴직이 제도화 되어 있지 않았고, 출산휴가 3개월에도 감사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p.20)’

또 다른 저자는 과학계 내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남성 선호 문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여성이 소수라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 그 자체로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3년간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마치고 교수 채용 공고를 찾아서 지원할 때도 성차별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아무래도 아직 한국 사회는, 특히 이공계는 남성 위주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조건이 같으면 여성보다는 남성 교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여성보다는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여성 박사가 더 우수한 실적을 쌓았어도 남성 박사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주변에서 과학도의 길을 걷다가 그만두는 여성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p.173)’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도 그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며 ‘여성 과학자들이 당당히 과학자라고 자랑스럽게 자기를 소개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계속해서 투쟁할 것임을 선언한다.

‘백야의 시베리아 동토와 이누이트 원주민의 삶터뿐만 아니라 전 지구 바닷속에 퍼져 있는 화산, 어린 왕자의 사막, 아마존의 정글, 밤하늘의 은하수 등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여성은 너무 일찍 상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p.145)’

 ‘더 많은 여성들이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머리를 맞대 고민을 해결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함께 살고 있으니까.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p.40)’

히든 피겨스

마고 리 셰털리 저, 고정아 역, 동아엠엔비 출판, 2017년, P416

1950년대와 1960년대 인종 차별과 남녀 차별이 노골적으로 행해지던 미국에서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재능을 빛내 인류를 달에 보낸 인물들이 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십 혹은 수백 명이다. 그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야말로 ‘히든피겨스’ – 가려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책은 ‘컴퓨터’가 기계가 아닌 인간을 칭하던 시절, 인류가 우주를 꿈꾸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꽃피웠던 그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기록한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펜드리스 노이스 저, 권예리 역, 다른 출판, 2018년 P268

여성은 16세기 말부터 과학 발전에 참여해 왔지만 오랫동안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은 이처럼 역사 속에서 잊혀져가던 위대한 여성 과학자 16명의 기억을 끄집어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책 속에 소개된 과학자들은 과학을 꿈꿀 때마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쳤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이 이룬 과학적 성취보다 그들이 지닌 여성성이 부각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시대적 한계와 성별 제약이 극심했음에도 훌륭한 연구를 과학사에 남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

권소영 외 11명 저, 와우라이프 출판, 2018년, P256

이 책에는 아직 척박한 우리나라 과학 분야의 최전선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들의 진솔한 삶이 담겨 있다. 누구보다 치열한 공부 경쟁에서 성공한 여성 과학자 역시 우리나라의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정 일을 떠맡아야만 했다. 과학자라는 신분은 그 것들을 거부할 사유가 되지 못했다. 이 책은 그런 여성 과학자들, 과학자와 여성의 신분 둘 사이에서 줄을 타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을 실제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여성 과학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 과학계 여성인력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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