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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인권, 민주 운동으로 이어졌다. 로사파크스의 용기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18.12.01 23:25
  • 수정 2018.12.0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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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파크스

[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1955년 12월, 로사 파크스의 용기, 짐 크로우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짐 크로우’는 1830년대 뮤지칼의 배역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점차 미국 내 흑인들을 경멸하는 뜻으로 사용되게 됐고 ‘짐 크로우법’은 흑인들을 박해하고 차별하기 위해 제정한 흑백 분리법을 뜻하는 말이 됐다고 한다. 이 법에 따르면 흑백의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기차 안에서 같은 객차에 탈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차별은 20세기도 중반을 넘길 때까지도 살아 있었다.

버스 좌석도 그랬다. Equal and Segrefate '평등하게 대우하되 분리하라" 흑인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정해져 있었고, 백인이 오면 지체없이 일어서서 다른 자리로 가야 하거나 서서 가야 했다. 미국 남부의 상식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법이었고 짐 크로우 법은 미국 대법원에 의해서도 그 합법성을 여러 차례 인정받고 있는 ‘현행법’이었다.그 법의 취지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분리하지만 평등하다.” 즉 흑백을 분리하여 다른 차에 태우더라도 그 대우가 동등하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말이 그렇지 뜻이 그렇지 않은 건 미국도 마찬가지라 그 대우가 동등할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1955년 12월, 그 역사가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로사 파크스라는 백화점 양복 코너 직원이 있었다. 그녀가 사는 앨라바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도 짐 크로우 법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하루 일의 피로에 지친 로사는 백인이 없을 시에는 유색인종이 이용 가능한 자리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운전사의 불호령이 들렸다. “어이 검둥이! 어서 일어나 너희들 자리로 가란 말이야!”

퍼뜩 눈을 떠 보니 백인 한 명이 자신 앞에 서 있었고 곁에 있던 흑인들은 양순히 뒤쪽으로 움직인 뒤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로사도 엉거주춤 일어나 불만스럽 입술을 실룩이며 뒷좌석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은 로사가 너무 피곤했다. 또한 마음도 피곤했다. 희한한 짐승 다 본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백인의 눈초리, 얼굴이 뻘개진 백인 운전사의 얼굴, 그 모두가 로사의 마음을 후려치고 짓밟고 있었다. 로사는 자신의 몸과 마음 모두를 위해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경천동지였다. 백인 운전사는 즉시 경찰서로 차를 몬다. 법은 지켜져야 했고 그 법은 백인들의 권리와 이익고 욕망을 보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경찰은 이 불법적인 여인의 ‘개김’을 위법한 것으로 보고 그녀를 체포한다.

권총 차고 수갑 내미는 경찰의 위압감 앞에서 “내가 미쳤지!” 가슴을 치면서 “다시는 안그럴께요” 하고 울먹일 수도 있었겠지만, 전국 흑인지위 향상 협회 회원이었던 로사는 내친김에 자신의 사건을 공론화해 보겠다는 또 하나의 용기를 낸다. 법정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나의 존엄은 어떤 법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죄목 하나가 더 추가된다. 검둥이의 존엄을 법 위에 두었다는 이유였을까. ‘법정모독죄’였다.

그녀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흑인 사회는 들끓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판이 시작된 12월 5일 스물 일곱의 젊은 흑인 침례교 목사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목사들은 흑인들에게 버스를 보이콧할 것을 주창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당신이 올바른 일을 할 때, 두려워 해선 안됩니다. - 로사 파크스

보다 나은 가치를 향한 열망이 그녀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평생 고수하던 가치 기준을 높이고 오늘부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결심한다면 어떤 결과가 드넓게 펼쳐질지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굴욕적인 태도로 버스를 타느니 존엄을 지키며 걸어다니는 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혼을 혹사하느니 다리를 혹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우리는 몽고메리 시내를 걸어다니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쇠약해진 불의의 벽은 정의의 망치에 두들겨 맞아 허물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제창한 사람들조차 버스 보이콧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십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60퍼센트만 보이콧 운동에 응해 주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12월 6일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거의 100퍼센트의 흑인들이 보이콧에 응하여 걷고 또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no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로사파크스의 용기는 킹목사와도 인권운동을 했다.

텅텅 빈 버스의 백인 운전수들은 망연한 얼굴로 그 검은 행진을 쳐다보았고 흑인들은 버스 안에서는 결코 드러내지 못했던 당당한 표정으로 몽고메리 시의 거리를 활보했다. 차가 있는 흑인들은 자신의 차를 방향이 같은 흑인들과 함께 이용했다.

노예 해방 이후로도 노예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흑인들, 즐겨 짐승으로 비하했고 백인 여자에게 치근대기라도 했다간 사람을 해친 동물원의 동물처럼 도살되기 일쑤였던 흑인들은 이 보이콧으로 자신들이 존엄을 가진 인간이며, 무엇보다 불의한 법에 단결할 줄 아는 인간임을 선포했다.

단시일에 끝난 것도 아니었다. 버스 보이콧은 1년을 끌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흑인들의 카풀을 금지한다는 꼼수까지 부리며 흑인들의 기를 죽이려고 들었지만 결국 연방법원은 버스 내 인종분리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흑인들의 승리였다.

버스 좌석을 얻고 얻지 않고의 승리가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의 승리였고, 인간의 존엄을 모토로 하는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내 발은 피곤하지만 내 영혼은 편안하다.”고 했던 참가자 마더 폴라드의 말처럼, 흑인들은 자신들의 불이익과 피로감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일당을 털어 이 운동을 후원했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수 킬로미터를 걸었다. 차를 몰고 가는 흑인들은 툭하면 창문을 열고 거리의 흑인들에게 물었다. “어디 가요? 아 거기? 타쇼! 조금 돌면 되지 뭐!”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장담컨대 한국에서 이런 형태의 연대가 행해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1년씩이나 끄는 끈기가 뒷받침된다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바뀔 것이다. 버스 파업하면 내일 출근 걱정하면서 개새끼들 배때기가 불러 가지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의 수가 준다면, 지하철 파업하면 기관사 멱살이나 잡는 사람들의 결기가 없어진다면, 노동 조직률이 세계에서도 알아줄만큼 낮은 나라에 살면서 “노조가 나라 망친다.”는 복날 가마솥 속 개가 웃을 소리가 사라진다면, 대한민국에서의 변화는 1년도 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좀 서글프다. 로사 파크스는 불의한 법에 저항하여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서 역사를 바꾸었지만 한국에서는 스무 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지고 엄동설한 추운 날에 고공의 철탑에 올라가 ‘법을 지키라’고 외쳐도 오불관언 마이동풍인 나라 아니었던가.

촛불정국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오십보 백보라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오십보 이후에는 이제 유턴 금지선이  확실하게 그어져 있으면 좋겠다. 그나마 유턴이 가능하고 백보까지는 안간 정권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마음 염원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를 실행에 옮길 열망들이 정권의 교체에 수그러들지 말고, 정말로 존엄한 인간이 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양보할 줄 알고 지킬 것을 지킬 줄 알게 되어, 정권 교체 따위의 명제 이상으로 인간의 존엄이라는 화두에 대해 “아직도 우리는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생존과 인권을 위협받는 이들의 손을 함께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노무현 정권 때 “왜 노동계가 노짱의 발목을 잡느냐?”는 식으로 묻는 이들은 사실 앨라배마의 백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음을 기억하면서, 적어도 앞으로는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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