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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주의 하지 않을 자유, 14년을 버텼다. 출소한 그는 19년째 보안관찰법과 싸우며 창살 없는 감옥을 부수고 있다.
  • 정호천
  • 승인 2018.11.29 18:20
  • 수정 2018.11.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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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용주의 하지 않을 자유 >

말로만 들었던 광주민주화항쟁, 그 현장에 있었던 이를, 더구나 마지막 날까지 총을 들고 싸웠다는 이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18살짜리 고3이 그 이후의 생을 살아가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 영혼이 쨍하고 금가는 소리를 들은 그때에 갇혀 살고 있다." 그 말을 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그에게 고통스러운 질문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질문을 한 내가 독하다 원망스러울 만큼.

마지막 순간 두려움에 총을 버리고 도망갔던,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던 그 고교생이 고교 선배에게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주었다는 이유로 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우리나라 최연소 장기수이자 세계 최연소 무기수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면을 받고 나오는 순간에도 전향서에 사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전향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간첩사건이 조작이라 인정할 수 없었고 재판과정에서 변변히 항변해 보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또한 전두환 정권이라는 광주 민주화의 학살자들에게 또다시 반성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고문에 굴복하여 쓰레기 통속에 처박혀 버린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전향제도와의 투쟁의 과정 속에서 내 영혼이 근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더라도 이 싸움을 하겠다고 선택했고 그렇게 14년을 싸우고 나왔다."

만델라는 2013년 세상을 떠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이야. 그는 인종차별주의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27년 동안 수감되었고, 인종차별이 철폐된 뒤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

만델라의 옥살이 기간은 ‘겨우’ 27년이지만 한국에는 그 정도 형기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밀 장기수 정치범 또는 양심수들이 수두룩해. 인민군으로 체포됐다가 무려 45년간 옥살이를 한 뒤 북한으로 가서 2011년 타계한 김선명은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기수로 등재돼 있어.

그런데 김선명을 비롯한 좌익 장기수들은 옥살이 외에 만델라도 상상하지 못했을 고통을 겪는단다. 바로 ‘전향 교육’이라는 거였지. 대한민국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양심의 자유란, 외부로부터 속박받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말해. 대한민국 정부는 스스로 헌법을 짓밟았단다.

이른바 사상범들의 머리를 개조해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게 하겠다는 전향 공작을 자행했어. 교도소에 수감된 깡패들이 두들겨 패기도 하고, 전향서에 사인만 하면 석방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곁들이면서 말이야. 많은 이들이 굴복했지만 어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자기 양심의 선택을 지켜냈어.

나는 그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으나 끝내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들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해. 양심의 자유를 사수했다는 건 대한민국을 부정했을망정 헌법 제19조의 정신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지 않았겠니.

역대 정권들은 수많은 간첩 또는 반체제 사범을 ‘생산’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영문도 모르는 조직에 휘말려 귀신도 모르게 죽거나,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간첩이 되어야 했지. 오늘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다.

1980년 5월 광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전두환 졸개들의 야수 같은 만행을 목도한 광주의 고교생들도 항쟁에 뛰어들었어. 그들 가운데 강용주는 광주 동신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날 그는 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계엄군이 땅거미처럼 시나브로 도청을 덮쳐오는 가운데 그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만단다.

사람이란 의외로 나약한 존재야. 예수의 수제자라 할 베드로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보고 하룻밤에도 세 번이나 그를 부인하지 않았니. 하물며 죽음의 촉수가 자기 목에 스칠 듯 다가오는 상황을 견딜 사람은 많지 않아. 어떤 이는 그 트라우마에 갇혀 평생을 경계하며 살거나 일부러 과거를 외면하기도 하지. 강용주는 그러지 않았어.

의대생이 된 그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어. 빡빡한 의과대학 공부와 학생운동을 병행하던 그에게 운명 같은 올가미가 씌워진 건 1985년이었어.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거창한 간첩단의 일원으로 ‘그려져’ 옥살이를 하게 된 거야. 자그마치 무기징역.

무기수 간첩이 되어버린 의대생 강용주에게도 전향 공작의 유혹과 협박이 동시에 닥쳐왔어. “이거 한 장이면 나갈 수 있다.” 한창 젊은 나이의 무기징역 수인에게 그만한 유혹이 어디 있겠니. 눈 질끈 감고 사인 한번 휘리릭 하면 되는데. 나가기만 하면 의대에 복학할 수도 있고 데이트도 할 수 있고 감옥 같은 거 깡그리 잊고 살 수 있는데. 그는 그 유혹을 뿌리친다. 그 에게 닥친 건 협박과 고문. 그래도 그는 전향서에 도장을 찍지 않고 14년을 버틴다. 왜 그들은 ‘비전향’ 장기수가 됐던 걸까.

강용주는 이렇게 말해. “한 인간의 영혼을 국가권력이 굴복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굴복하면, 한 인간의 존재가 파괴돼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선 그걸 그렇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거고요(<한겨레> 2017년 5월13일자 인터뷰).”

거짓이든 시늉이든 위력에 굴복해서 전향서를 쓰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이고, 미세한 구멍이 팽팽한 타이어를 망가뜨리듯 한 사람의 영혼에 실금을 가게 만든다는 뜻이야. 때문에 정부는 전향에 집착했던 거란다. 그 집착의 강도를 느끼게 해주는 강용주의 증언. “장기수 중 한 분이 위암에 걸렸으나 교도 당국에서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고 치료해주지 않았다. 그분이 절명하자 교도 당국은, 죽은 자의 무인을 찍어서 죽기 전에 전향했다고 발표했다.”

부당한 집착과 양심을 향한 집념의 대결에서 승리자는 강용주였어. 1999년 3월, 전향서를 끝내 쓰지 않고서 교도소 문을 나선 거야. 학교에 복학하고 의사도 되고, 그런대로 민주화된 세상에서 잘 살아가면 되는 거였지만 강용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집념을 불태워. 바로 보안관찰법과의 싸움이야.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이들에게 적용되는데, 출소 이후에도 3개월마다 주요 활동 내역을 거주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법이란다. 이건 비행 청소년이나 형 집행정지를 받은 이들을 교도소에 가두는 대신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보호관찰과는 완전히 달라.

14년 동안 형기를 치르고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는 이도 경찰서에다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고, 그걸 이행하지 않으면 범죄자가 돼버리는 게 보안관찰이야. 명백한 이중 처벌이고 인권침해지. 하지만 또 어찌 생각하면 형식적으로 신고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어. 귀찮지만 몇 자 끼적여주면 평온한 일상을 맞을 수도 있거든. 이 갈림길에서 강용주는 또 한 번 ‘하지 않을 자유’의 깃발을 든단다.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았고 경찰에 체포됐으며 명색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법정에 출두해 보안관찰법 폐지를 외친 거야. “보안관찰은 제 삶을 과거로 묶어놓으려 합니다. 이미 32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을 ‘재범’할 것이라고 멋대로 추측합니다(보안관찰법 관련 1심 최후진술).” 그의 최후진술을 꼭 읽어봐주기 바란다. 역사의 절벽에 길을 내고 자유의 계단을 놓는 집념의 표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그 말미에 강용주 역시 만델라를 호출하더구나. “만델라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그래, 만델라가 투옥돼 있던 즈음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에게 흑인 대통령이란 안드로메다처럼 멀었을 거야.

1980년 5월 강용주가 카빈총을 내던지고 전남도청에서 도망갈 때 7년 뒤 온 국민이 일어서서 독재 타도를 부르짖는 광경은 망상에 가까웠을 거야. 아직 우리는 사람의 머릿속을 재단하는 국가보안법과 이미 처벌받은 사람을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는 보안관찰법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이 케케묵은 잡동사니가 돼 역사의 뒤안길에 팽개쳐지는 날이 올 거야. 그날을 앞당기는 사람이 되자고는 하지 않겠어. 단, 그들을 지켜보자꾸나. 두 눈 뜨고 관찰하자꾸나.

2018년 11월 30일, 아직도 강용주는 보안관찰대상자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보안관찰처분 면제 결정 신청에 대해 6개월 동안 답을 주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법무부와 검찰은 강씨를 보안관찰할 필요성이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라는 굴레는 계속 씌워두고 있다. "

법무부 관계자는 “강씨가 관할 경찰서에 필요 서류를 갖춘 형태로 정식으로 면제를 신청한 것이 아니어서 3개월 규정의 속박을 받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무부가 직권으로 강씨의 보안관찰처분 면제를 할지는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검토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정호천  newsfreezo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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