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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평등·박애의 노래…세계사를 바꾼 라 마르세예즈
  • 정호천
  • 승인 2018.12.05 23:44
  • 수정 2018.12.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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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바꾼 라 마르세예즈 > Revival

1789년 바스티유 습격으로 점화된 프랑스 혁명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시민들이 왕에게 혁명의 상징인 삼색 휘장을 선물하며 “왕에게 축복을!” 이라며 환호하는 날도 있었고, 그 왕궁에 폭도가 난입하는 날도 있었고, 국왕의 가족들이 몰래 도망가다가 덜미를 잡혀온 날도 있었다. 그 와중에 학살과 처형은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피의 숙청을 모면하여 도망간 프랑스 귀족들은 프랑스 왕정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유럽 제국들의 앞잡이가 되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792년 4월 20일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에 선전을 포고한다. 하지만 왕은 오스트리아가 이겨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의 왕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므로.

프랑스 전역이 전쟁에 휩싸이고 “조국을 구하라”는 혁명 정부의 모병관들이 전국으로 파송됐지만 사실상 프랑스 군대는 썩은 고목이었다. 장교 만 명 중에 6천 명이 외국으로 탈출하여 이쪽에 총부리를 들이댄데다가 병사들은 혁명의 분위기를 타고 상명하복 따위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 익숙했다. 각지에서 ‘의용군’들이 몰려들긴 했지만, 거칠고 난폭한 열정 외엔 별로 취할 것이 없는 군상들이었다. 프로이센 군 사령관 브런즈윅은 이렇게 호언한다. “너무 장애물이 없어서 걱정이야. 좀 저항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프랑스 놈들한테 교훈을 가르쳐 줄 수 있을 테니까.”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쾌속 진군했다. 혁명은 위기에 빠졌다. 파리 턱앞까지 프로이센군이 들이닥치자 프랑스 의회 내에서는 피난을 가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당통은 유명한 말로 이를 물리친다. “대담함! 더욱 대담함! 오직 대담함만이 공화국을 구할 것이다.”

이때 프랑스 정부가 급조한 군대에게 요긴하게 챙겨 준 장비(?)가 하나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장비를 위해 8만 리브르라는 거액을 들인다. 그것은 한 노래의 악보였다. ‘라 마르세예즈’였다. 원래는 공병 대위가 지은 ‘라인 강 수비대의 노래’였지만 마르세이유의 의용병들이 1천3백 킬로미터를 걸어 올라오면서 수천 번을 불러대는 바람에 그들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노래였다.

승승장구하던 프로이센군이 발미라는 작은 소읍에서 이 급조된 프랑스군과 마주쳤다. 격렬한 포격전이 오가는 와중에 프로이센군은 돌격을 개시했다. 척 봐도 오합지졸의 군대는 일찍이 수천 명이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열병하여 유럽 각국 대사들을 경악시켰던 정예 프로이센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줏간 주인, 시계공, 농부, 세탁부, 구두 수선공들로 이루어진 프랑스 군대가 프로이센 군의 맹공을 꿋꿋이 버텨낸 것이다. 두 나라 군대가 가까워졌을 때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던 켈레르만은 ‘돌격’ 명령 대신 벼락같은 외침으로 프랑스 군을 격동시킨다. “Vive la nation!" 프랑스 만세 또는 국민 만세......

지금까지 귀족의 목을 창 끝에 꽂으며 그 물건을 훔치는 재미로 혁명에 가담하던 부랑자들, 하늘같던 왕에게 “돼지야”라고 조롱하는 맛에 통쾌해 어쩔 줄 모르던 농부들, 몇 년 전만 해도 숨도 못쉬던 귀족들이 없어진 것만으로 좋았던 파리의 빈민굴 사람들은 그 구호에 스스로의 존재와 위치를 깨달았다. 비록 혼란스럽고 어설프고 때론 피비린내도 무지하게 풍기긴 했으나 자신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한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급료를 받고 싸우는 세계 최정예군대의 넋을 빼놓는 강력한 군대가 된다. 영국 코미디언 마크 스틸의 표현에 따르면 “1부리그 축구팀이 파트타임 선수들에 패해 FA컵에서 탈락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때 프로이센군 진영에는 천재 하나가 종군하고 있었다. 바로 괴테였다. “비가 와서 땅이 질어진 덕에 포탄이 떨어져 박히기만 하지 폭발하지 않아” 몇 번씩이나 죽다 살아난 그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침에 우리는 프랑스 놈들에게 침을 뱉고 먹어치우자는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그 침묵 위로 라 마르세예즈가 흘렀다. “일어서라 조국의 아들 딸이여.... 적들의 목을 잘라 그 피로 우리의 밭이랑을 기름지게 하자”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만큼 용감한 이들은 없다. 자신의 존재 하나 하나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자각한 이들만큼 거침없는 흐름은 없다. 괴테는 그날 그 모습을 본 것이다. 혁명을 혐오하던 그는 이렇게 그의 발미 체험을 토로한다. “오늘 이곳으로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나니, 우리는 바로 그 탄생의 현장에 서 있다.” 1792년 9월 20일의 일이다.

테러가 일어난 후 수만 관중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면서 질서 정연하게 퇴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발미를 떠올렸다. 전직 대통령 이하 정부의 팔푼이들이 그토록 국민에게 심고 싶은 '자긍심'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외침과 행동이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 있고 바꾸었다는 느낌적 느낌. 물론 저들은 "한강의 기적"을 들이댈 수도 있고 그 자긍심이 오늘의 어버이연합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4.19와 5.18과 6.10과 촛불시위에 이르는 우리 역사상 모든 '발미'를 발싸개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그 감격을 지우고 오로지 '한강의 기적'의 자긍심만을 들이댄다는 데에 있다. 우리에게도 발미는 많았다. 잊지 말자.

정호천  newsfreezo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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