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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좋은 죽음(2)
  •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 승인 2018.12.12 07:40
  • 수정 2018.12.1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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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2)

어제 <좋은 죽음(1)>을 발표하니까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누구나 생사문제는 심각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생사문제를 다뤄봅니다.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입니다. 이 근본문제를 생각하고 연마해두면 아마 황혼의 낙조(落照)가 한층 황홀할 것입니다.

내년 3월 28일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심장마사지⦁인공호흡⦁점적수액요법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행위 전반을 말하는 연명치료 중단 조건 중,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19세 이상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손자⦁손녀 동의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바뀝니다. 앞으로 가족의 동의가 부족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나가는 일이 크게 줄면서 존엄 사를 맞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품위 있는 죽음’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존엄 사인 것입니다.

이 같은 ‘연명 치료 중단’ 요건 완화는 존엄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이들은 회생(回生) 가능성이 없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을 위하여 온갖 기기를 매단 채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명치료중단은 ‘존엄 사’ 혹은 ‘품위 있는 죽음’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법적으로 연명치료중단을 통한 존엄사가 실행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존엄 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엄 사를 허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는 존엄사보다 한 차원 나아간 수준의 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즉, ‘의사조력죽음’(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논의입니다. ‘의사조력죽음’은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사가 치명적인 약물 등을 처방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일부 주, 캐나다⦁네덜란드⦁벨기에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합법이거나 처벌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들이 ‘의사조력죽음’을 허용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일종의 ‘기본권’이라는 인식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도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안락사’와 ‘의사조력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게시한 사람은 “내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췌장암 3기 판정 이후 5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이미 췌장암은 말기로 진행됐고 이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다.”

“현재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말도 못하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와 진통제에 의지해서 하루 종일 주무신다. 1분 남짓 깨계실 때면, 아버지는 고통에 빠져계시다가 간신히 손을 움직여 ‘안락사’를 검색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발 아버지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같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끄러운 경사면’처럼,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결국에는 타의에 의해 생명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환자가 불안, 공포 또는 죄책감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수 있고, 우울증을 동반한 불치병 환자가 감정적⦁충동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가족이 겪는 재정적⦁감정적⦁정신적 부담 때문에 자의 또는 타의로 떠밀리듯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의사조력죽음’의 반대론자들은 ‘의사조력죽음’이 유행처럼 번지면, 죽지 않아도 될 이들까지 죽음을 고민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와 안락사 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며, 국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아직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서 환자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아 덜 수용적입니다. 유럽이나 북미처럼 우리나라도 안락사 논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도 2017년 4월부터 항소법원에서 ‘조력죽음’에 대한 법률심사 허용 판결이 나왔다고 합니다. ‘조력죽음 금지’를 둘러싼 논쟁은 임종이 임박한 영국의 한 환자가 제기한 것입니다. 안락사로 알려진 ‘조력죽음(assisted dying)’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한 사법부의 법률심사 요청한 사건이 항소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이 사건은 2014년 루게릭병의 한 종류인 ‘운동신경질환(motor neurone disease)’ 진단을 받은 콘웨이라는 환자의 변호인들이 법정에서 콘웨이의 생존 기간이 6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결정을 내릴 만큼의 정신 능력이 있다면서, 그는 “평화롭고 존엄한 죽음으로 이끌어줄 조력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며 법률 심사를 요청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죽음’을 위한 비상구인 ‘조력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를 주장하는 하는 것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평균 수명이 늘어가고 이로 인한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점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만큼이나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반(涅槃)을 앞두고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덕(功德)이요, 둘은 상생의 선연(相生善緣)이며, 셋은 청정일념(淸淨一念)입니다. 이 세 가지 보물을 갖춤도 없이 그냥 <좋은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진리 앞에 떳떳하지 못한 행위가 아닐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2월 1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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