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7일 올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를 열고 가까스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을 처리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민생보다 정략적인 정쟁을 우선하는 정치권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국민들의 피로도를 한껏 높였다.

민생 현안과 무관한 정치적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온 야당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지만, 타협과 돌파의 정치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여당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여야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7일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애초 오후 2시로 예정했던 본회의를 3시간40분 늦춰 오후 5시40분에 시작했고, 산안법 개정안은 회의 개시 후 3시간 20분 만인 오후 9시에 가결했다.

지난 11일 김씨가 근무 도중 목숨을 잃으면서 산안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해졌지만, 법안 내용과 무관한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의 국회 출석이 최대 쟁점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산안법 개정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명분으로 산안법을 잡아둔 채 조 수석의 운영위원회 출석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안법 개정과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은 성질이 전혀 다른 사안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사안을 풀 어떠한 뾰족한 수도 내놓지 못했다.

▲27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여야가 김용균 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합의하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의 직장동료를 안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아들을 잃은 김씨의 어머니가 여러 차례 국회를 방문하며 법안 처리를 읍소했지만 함께 껴안고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었다.

물꼬를 튼 것은 협상의 주체인 여당이 아닌 청와대였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전 회의에서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산안법이 연내에 처리돼야 한다"며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이 결정되자 여야 간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본회의에서는 산안법 개정안을 비롯해 그간 미뤄져왔던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등이 한꺼번에 처리됐다.

김용균법은 통과를 시켰지만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 문제를 제기해 논의가 촉발된 유치원 3법은 여야 합의에 실패하면서 바른미래당 유재훈 의원의 중재안을 패스트트랙(fast track)으로 넘겼기는 데 그쳣다.

한국당은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을, 바른미래당은 이학재 의원의 탈당으로 한국당에 잃었던 정보위원장 자리를 각각 얻어냈지만,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이견이 크지 않았고 정부가 발의를 한 산안법 개정만 얻어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패스트트랙은 최대 330일이 걸리는 사실상의 슬로우트랙(slow track)으로 유치원 3법에 반대해 온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 시간만 벌어준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27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치원 3법'의 신속처리대상 안건(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집단퇴장하고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그나마도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과정에서도 한국당 의원들이 교육위원회의 유치원 3법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해 가보겠다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정회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이같은 연말 강대강 대립은 한국당이 원내대표 회동,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등 곳곳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시작됐다.

법안 처리 등을 통한 압박이 야당이 가진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시급한 민생 법안을 발목을 잡으면서까지 정치적 사안과 연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은 협상 내내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는 불만만 표시했을 뿐 사태를 풀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야당의 반대가 계속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협상의 교착이 지속되자 여당이 조 수석의 국회 출석 저지로 청와대를 비호하면서 청와대가 어떤 시그널을 보내는지만 기다리고 있는 눈총이 쏟아졌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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