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5회

몇 년 전에 바라보았던 하늘은 푸르고 지극히 드높았다. 이 때 나는 훤칠한 키에 명석한 두뇌를 가졌던 최석의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의 앞에서 나는 괴테가 사모하였던 여인이었다. 그는 그 당시의 속물과는 다른, 가슴 속에 철학이 있었고 여자를 알아보는 기품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괴테의 여자처럼 나를 숭배하듯 하였다. 기품이 있고, 사랑스럽고, 영리한 여자…….

나는 그를 젊은 파우스트로 사랑하였다. 그와의 사랑이 무르익을 때 가을의 곡조가 널리 울려 퍼졌다. 들판의 벼들이 황금빛으로 출렁이고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추는 가운데 우리는 사랑의 몽롱한 바다에 헤엄쳐 갔다. 그 배에 우리는 사랑을 싣고 미래를 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최석의 겨드랑이를 끼고 미모의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부와 권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어서인지 자신만만하였다. 그러나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바로 최석의 흐리고 안개를 해매는 듯한, 모호한 눈동자였다. 그토록 부드럽고 아늑하며 정의감으로 패기가 넘쳤던 그의 눈동자는 사라져버렸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고민하던 그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냉철한 야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뱃속에서 생명체가 꿈틀하듯 하였다. 뱀이 똬리를 틀고 나의 뱃속에서 트림하듯 소스라치는 떨림의 아픔 때문에 나는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남자에게 나의 존재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듯하였다. 절망감 속에서 그와의 인연을 끝맺는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산부인과로 찾아간 나는 뱃 속의 생명체를 지우기 위하여 수술대에 올랐다. 가지랑이 사이로 핏덩이는 핀셋으로 여지없이 짓눌린 채, 붉은 액체가 되어 하숫가로 흘러내려 갔다. 나는 하혈을 많이 했고 이것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결국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난지도에서 바라본 모습 ⓒ 블어그 갈무리

나의 고향은 바다를 끼고 있는 농촌 마을이었다. 오직 그 고향만이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곧 바닷가에 나가서 부서지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갈매기는 구슬픈 마음에 가락을 맞추듯 끊임없이 울어댔다. 논 둑 길을 지나 오솔길의 옆에 조그마한 교회당이 보였다. 텅 빈 교회당의 중앙에 말없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창문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춰왔다. 그 햇살은 굳어진 나의 어깨를 살며시 어루만져 주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예수와 어린양들, 성모마리아….

나는 울면서 눈을 감고 소망을 주시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나며 나의 영혼은 죽음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잠시 후에 교회당 밖으로 나왔다. 한 동안 정처 없이 걸었다. 한참 걷다가 지치면 앉기도 하고 허공을 한 참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 모습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저수지 쪽으로 향하였다. 죽음의 그림자는 나를 에워쌌다. 순간 허공 속의 저 먼 길에서 눈부신 은빛이 반사하여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재빨리 옮겼다. 뜻밖에 마른 땅바닥에 제법 큰 잉어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붉게 충혈 된 채, 눈 커플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자신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하였다. 어쩌면 나의 영혼의 실체가 지금 잉어의 모습으로 환생한 듯하였다. 오후의 햇볕은 잉어를 더욱 목마르게 하고 있었다. 저수지는 붉은 빛이었다. 악취가 풍겼다. 순간 가지랑이에서 핀셋으로 눌려 살해된 생명체. 나의 자궁에서 파멸되어 흐르는 붉은 액체가 하수구로 흘러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 듯하였다. 그 물이 흐르고 흘러 강토를 적시고 저주의 땅이 되어 버린 듯 하였다.

‘저주받을 황폐한 웅덩이가 되었구나! 잉어는 그 물을 피하여 땅 위에 올랐던 것이다. 붉 은 액체, 타오르는 강, 피로 물든 강토……’

나는 두 손으로 잉어를 껴안은 채 맑은 호숫가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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