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어민도 완벽하지 못한 언어의 속성 

▲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캐시 애론슨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약간 빈틈이 있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실수효과'(Pratfall Effect)를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퀴즈 게임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가자들의 호감도를 측정했다.

그런데 퀴즈 게임에서 완벽하게 문제를 풀기보다는 제대로 풀지 못하거나 대답하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실수를 한 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는 사람의 실수나 허점이 오히려 매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국인이 영어를 하면 실수를 하더라도 외국인이 "귀엽게" 보아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한국인이 외국인을 대면하여 이야기를 할 때 우선 긴장부터 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대중 앞에 나가 한국어로 연설을 하라고 해도 긴장이 되는 데 말이다.

이러한 긴장감은 초보자이거나 노련한 연설가이거나 똑같이 느낀다. 우리가 보면 무대에 익숙한 연예인들이나, 아나운서들이나, 사회자들은 마이크 앞이나 대중 앞에 나가면 긴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세계적인 명 연설가였던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나 루스벨트 대통령도 대중 앞에 설 때면 언제나 긴장이 된다고 실토를 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한 웅변가이자 수사학의 혁신자였던 로마의 철학자며 정치가 키케로는 "어떤 실수도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정치가 알 프랜켄은 또 이렇게 말한다. "실수란 인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단지 어렵게 배운다고 생각하여 인생의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라." 영어를 하는데 실수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한국인이 영어를 원어민같이 100% 하게 되면 오히려 그들이 경계를 할지도 모른다.

원어민과 교제를 하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한국인이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면 '인간적인 배려'의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 조금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인정해 주려는 포용의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원어민이 자기처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을 상대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더 이상 한국인을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적인 유대'보다도 '사무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의사소통의 융통성이 덜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영어를 매개체로 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서툴더라도 이는 앞서 말한 실수효과가 얼마든지 통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영어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하면 원어민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관용의 여지가 없어져 버릴 수 있다.

물론 외교 분야와 같이 에누리가 없는 국제관계에서는 영어 구사의 정확성이 절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한 . 미 FTA와 같은 국제 통상문서에서 오류가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이런 국가적인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원어민 같이 완벽한 언어 능력을 갖춘 전문가로 육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국가적인 공식문서나 회의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완벽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실용적인 수준의 영어 능력만 갖추면 된다. 실제로 외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많은 한국 사업가들이 영어를 쓰지만 그들이 쓰는 영어가 완벽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비즈니스를 한다. 말하려는 내용을 직접적인 대화나 간접적인 정서교류를 통해 전달되면 되기 때문이다.

○ 어느 국가지도자의 웃지못할 영어 실수담

아주 오래 전의 일화다. 일본의 전 총리였던 모리 요시로가 백악관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러 갔을 때 저질렀던 영어 실수가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모리 총리에게 의전을 관장하는 일본 외무성 관리들이 회담에 참가하는 총리에게 기초적인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총리님께서 'How are you?' 하시면 미국 대통령께서 'I'm fine. thank you. and how about you?'라고 하실 겁니다.” "그러면 'Me, too'라고만 하시면 됩니다. 그 뒤부터는 통역이 맡아서 해 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총리에게 기본 인사말만 사전에 일러 주었다. 그런데 모리 총리는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자 난데없이 착각을 했는지 "Who are you?" 라고 먼저 인사를 하고 말았다. 의전상 각본이 빗나가게 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 느닷없는 질문에 당혹해 하며 잠지 머뭇거리다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대답을 했다.

"I'm Hillary's husband."

그러자 영어를 모르는 모리 총리는 자기의 실수를 깨닫지도 못하고 참모가 알려준 대로 "Me too"라고 해버렸다. 이 바람에 배석했던 주미 일본 대사와 외무성 간부들의 얼굴이 굳어졌다는 얘기다.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다.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초등학생용 기본 단어의 철자법을 연거푸 틀려 화젯거리가 된 적도 있다. 블레어 총리는 지방선거에 나선 노동당 후보에게 격려 메모를 써주면서 'tomorrow'(내일)을 'toomorrow'로 세 차례나 잘못 써주는 바람에 각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지는 "'tomorrow'라는 단어는 영국 정부가 지정한 12세 아동용 필수단어 600개 중의 하나"라고 총리를 비꼬았다. 그리고 《더 선》지는 "노력하시오. 투니(Toony)"라고 제목을 뽑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영국에서는 총리를 'Tony'라 말고 'Toony'로 부르자고 조롱을 했다고 한다.

한편 전에 미국 부통령이었던 댄 퀘일은 초등학생들 앞에서 'potato'(감자)를 'potatoe'로 써서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영어의 본토인 영국과 미국 지도자들의 영어 실수 해프닝이었지만 언론이 꼬집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영어국가의 지도자들도 그런데 한국 사람이 영어를 하는데 완벽하겠는가? 그러니 모두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가지도록 하자. 자신들의 모국어인 영어를 실수한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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