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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수립 100년, 3·1운동의 계기가 되.. 그 의미는?
  • 노춘호 기자
  • 승인 2019.01.03 17:37
  • 수정 2019.01.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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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처음으로 개최한 역사적인 신년 축하식이 같은 장소에서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모여 98년만에 재연됐다. 올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것.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집결한 가운데 1921년 1월 1일 중국 상하이의 호텔인 대동여사(大同旅舍) 내 식당 대채루(大菜樓)에서는 역사적인 신년 축하식이 열렸다. 100년 전,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어떤 의미가 일까? 당시 행사에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끊이지 않던 노선 갈등을 뒤로하고 김구, 안창호, 이동휘 등 독립운동 지도자 59명이 한 데 모여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다진 행사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특히 임시정부 각료로서 1921년 기념사진에 있는 김복형·오영선·이복현 지사의 후손인 후페이중(胡佩中)·천위펑(陳玉鳳)·이윤식 씨는 과거 조상이 섰던 자리에서 그대로 사진을 찍어 눈길을 끌었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뒤따랐지만 대규모 만세 운동은 우리의 독립 의지와 일제의 만행을 국내외에 전하는 계기가 됐다. 3·1 운동의 정신은 그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 태화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묘의 만해기념관(한용운 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숙소로 쓰던  호텔 건물 옥상에서 촬영된 그 날의 기념사진은 노선, 계열의 벽을 넘은 '통합 임정'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료로 남아 있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 바로 그 자리에서 1921년 신년 축하식 행사를 재연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2일 독립운동가 후손과 교민 등을 초청한 가운데 옛 대동여사 건물인 현 융안(永安)백화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 기념 신년 축하식을 개최했다. 일제에 보다 단결된 모습으로 조직적인 독립 투쟁을 벌이기 위한 거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임시정부 수립은 왕이 아닌 국민이 주권을 갖는 나라가 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3.1운동 책임을 맏은 최린은 민족대표 33인 선정하기 위해 최초에는 천도교 11명, 불교 11명, 성균관과 유림 11명으로 조직을 하려했으나 유림측에서 확답을 하지 않아, 참신한 기독교인들과 1919년 2월 22일 합동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성하기로 하였다. 결국 33인은 천도교, 불교, 기독교 3개 종단 민족대표 33인 선정되어 기미독립선어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독립선언서에 사인을 하려는데 모두가 나서지 않았다. 이때 손병희 선생이, " 죽는 순서 데로 사인을 하는 거야! 내가 맨 먼저 죽겠다!" 하고 사인을 하자 그 뒤를 이어 사인이 이뤄졌다고 한다.

상하이총영사관 관계자는 "특히 이복현 지사의 아들은 이영백 전 상하이 영사이고 손자는 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이윤식 과장으로서 3대에 걸쳐 상하이라는 한 공간에서 독립운동, 외교, 경제 분야에 걸쳐 국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임시정부의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은 '민주공화'의 가치를 명시하고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을 선포했다. 일제의 탄압은 날로 거세졌지만, 애국선열들의 뜻은 그보다 더 뜨거워졌다. 마침내 1945년 8월,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최영삼 상하이 총영사는 이와는 별도로 2019년 신년 첫 대외일정으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 김구 선생 흉상 앞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상하이 임정청사 관리처 직원들을 만나 그간 우리 독립운동사적지를 보존, 관리해 준 데 대해 감사를 전했다. 그로부터 100년, 명실상부 경제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의지를 되돌아 볼 때이다.

▲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은 모습, 최남선 선생은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인쇄소인 신문관 직원에게 활자를 짜게 해서 완성한 활자판을 최린의 집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노춘호 기자  vanish11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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