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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이해와 공감
  • 김덕권
  • 승인 2019.01.09 08:16
  • 수정 2019.01.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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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공감

우리 시대의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 사회는 물론 가정과 단체에서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문제는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공감하려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기에 바빴고, 아집(我執)으로 똘똘 뭉친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됩니다. 조금만 이해하고 공감했더라면 우리의 사회와 단체 가정, 그리고 저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영어로 ​‘이해(understand)’란 말 그대로 ‘낮은 곳에(under)’ ‘서는(stand)’ 일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서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면, 누구와도 공감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공감(共感)하면 하나가 됩니다. 바로 내가 상대방보다 한발 낮은 곳에 설 때,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해(理解)는 자신의 처지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거나 또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황금률(Golden Rul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서(聖書)에 나오는 교훈으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도덕원리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와 같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했고, 유교에서는 “내가 원치 않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했으며, 이슬람교에서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공감한다면 그만큼 갈등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는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분노, 슬픔, 기쁨 등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이해한다면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감은 자신과 타인이 한 마음을 갖도록 해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 해결은 이렇게 하면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첫째, 이해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공감입니다.

자신과 타인이 한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지요.
넷째, 용서(容恕)입니다.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논어(論語)》<위령공>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평생을 지켜나갈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가 답하기를 “그것은 ‘서(恕)’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용서는 자기의 입장과 남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사람은 자기중심성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진정한 용서란 어떤 것일까요? 용서란 작게는 자신과 상대방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의 의미는 상처를 준 사람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단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베푸는 선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용서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용서로, 남을 용서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아 화를 내게 되면 그 순간 나에게서 행복은 사라지고 맙니다. 화는 복수를 부르고, 그 복수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결국 복수를 행한 자 또한 불행해지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진정한 용서는 그저 참는 것이 아니라 화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용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나 피해를 긍정적으로 이겨내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효(元曉)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견해만 옳다고 해서는 화해와 통합이 불가능하다. 마음을 비워야 화해와 통합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상이지요. 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는 화쟁사상을 통하여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화(和)를 통해서 조정할 수 있으며, 화해와 통합은 결코 자기의 견해만 옳다고 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마음을 비워야 상대방과 더불어 화해와 통합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 여야 간의 갈등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로는 화해와 통합을 외치면서도 행동은 여전히 반목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물론 오랜 시간동안 반목과 갈등을 계속해 왔으니 하루아침에 이를 없던 일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화해와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반목과 갈등의 상대가 서로를 탓하며 자기 탓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국민 모두가 묵은 앙금을 털어내고 한마음이 되어 새로운 통합의 시대, 화합의 시대를 열어나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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