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우리가 콩글리시라고 일컫는 영어를 살펴보면 90% 이상이 엄밀히 말해 일본식 영어다. 한국어 중에서 차용어(loan word)의 대부분은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어에서 왔다. 

그 차용어들이 한국인들의 일상 언어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차용어들은 정통영어의 관점에서 보면 콩글리시다.

이것은 일본어로 토착화된 영어(glocalized variety)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속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우리보다 앞서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 문물과 영어를 받아들이면서 일본식으로 토착화 된 것을 우리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물론 그 중에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토착영어도 있다. 그것을 종종 우리는 마치 정통 영어처럼 생각하며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예를 들어보자. 애프터 서비스, 백넘버, 볼펜, 본드, 바디 라인, 더블 쟈켓, 아이 쇼핑, 파이팅, 파인 플레이, 핸드폰, 인프라, 점퍼, 오피스텔, 셀러리맨, 셀프, 서비스(무료), 스킨십, 네임 밸류 등등...

○ 미국, 영국의 본토 발음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이제는 한국식 영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영어 배우기에서는 후발주자인 중국도 중국식 영어를 인정받아 가고 있다. 오히려 원어민들조차도 중국식 영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물며 영어교육의 대국이라고 하는 한국이 글로비시의 대열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곱씹어 볼 일이다. 오로지 원어민 영어에만 몰입되어 있는 형국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들여 원어민 교사들을 초빙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재원도 한계가 있을텐데 무한정 원어민 인력을 공급할 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한국어 맥락 속에 기반을 두고 영어를 터득한 한국 사람이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도 여러 가지 면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이 반듯이 원어민처럼만 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원어민 정통 영어를 고집하다 보니 우리의 의식이 마치 미국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원어민 강사를 선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본토 발음으로 듣고 말하기를 배우는 강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잉글리시가 아니라 글로비시가 대세가 되는 마당에 설사 본토 발음이 아닌들 그게 그렇게 문제 될 게 아니다.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이미 20세기에 세계화 과정을 거쳐 이제 21세기에는 토착화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영어는 태생 자체가 알파벳은 라틴어나 더 길게는 이집트에서 차용해 오고 회화는 독일어를 포함하여 스칸디나비아어 등 다양한 유럽어를 혼합시켜 만들어졌다.

영어 자체가 여러 언어들을 결합하여 국제적인 단일 언어로 자리 잡은 후 글로벌 세상을 맞으면서는 다시 여러 개의 영어 지파(支派)로 분리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나 영국의 원어민 본토 발음에만 집착한다면 필리핀 영어나, 인도네시아 영어나, 인도 영어나, 싱가포르 영어 등은 국제무대에서 의사소통 영어가 아니란 말인가?

그들은 의연히 자기네식의 발음으로 영어를 하면서 글로벌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이런데도 꼭 미국의 영어에만 몰입되어 있다면 그거야말로 글로벌 시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 과거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에 침잠하여 헤어나지 못하는 격이다.

○ 우리도 한국식 영어를 당당히 만들어내자

이런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콩글리시를 한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라는 부정적 뜻으로 지칭하는 말로 해서야 되겠는가? 더욱이 콩글리시를 비문법적인 엉터리 영어라는 의미의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라고 매도해야겠는가? 콩글리시를 주창한다고 해서 정통영어를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를 외래어로 많이 쓰면서 한국식 영어를 콩글리시라 폄하하는 우리의 패러다임부터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언어 감각에 맞춘 영어를 개발해서 미국이나 영국의 영어사전에도 올리고 원어민들도 그것을 존중하게 하는 당당함을 갖도록 노력해 나가자. 이미 많은 중국어나 일본어 단어들이 영어에 흘러들어가 외래어로 정착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외래어들은 비즈니스, 예술, 복식, 정치, 행정, 종교, 무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원어민 사전에도 보란 듯이 등재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어가 영어 외래어로 채택된 비율은 미미하다. Chaebol(재벌), HapKido(합기도), Taekwondo(태권도), Bibimbap(비빔밥), Bulgog(불고기), Galbi(갈비), Kimchi(김치), Kimbap(김밥), Soju(소주), Hanbok(한복), Chobo(초보), Gosu(고수) , Kisaeng(기생), Manhwa(만화) 등, 영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우리의 복식이나 전통 무예와 같은 고유 명칭에 국한되고 있다.

영어의 "정통", "정통"을 외치며 우리가 익숙한 미국식 영어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필리핀 영어도 브로큰 잉글리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필리핀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영어를 원어민들이 이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미국 영어의 숙어인 "He has butterflies in his stomach"(그는 긴장하고 있어요)를 "He has a mouse in his chest"라고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쓰는 영어는 자신들의 문화를 표현하는 자기 방식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세계 상위권에 들어 있다. 그러나 언어 경쟁력 부문에서는 하위권에 처져 있다. 이제는 정통 영어 경쟁력에서도 그렇지만 글로비시로 편입시킬 수 있는 한국식 영어를 만들어내는 창의력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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