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정은미 기자]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보다 10.9% 인상된 8350원이다. 2018년에도 16.4% 인상되다 보니, 언론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따른 경비원 해고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공동주택 경비원과 청소원이 집단 해고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실제로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우리 아파트처럼 경비원 해고를 막아내고 상생을 모색한 단지도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600세대 대단지인데 최저임금이 인상됐지만 경비원을 한 명도 감원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 경비원은 지난해 말 단지당 6.48명으로 1년 전 6.61명보다 2% 감소하는데 그쳤고, 같은 기간 청소원은 1.8% 증가한 5.11명을 기록했다.

먼저 그 과정을 보자. 나는 2016년에 아파트 동대표를 시작해 2018년부터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이사를 맡고 있다. 관리이사는 경비원, 청소원 관리는 물론 용업업체 계약도 주관하는 자리다. 2018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 축소 문제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아파트 주민들의 의결기구인 입주민대표자 회의 모습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 감원을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갔다. 회의 결과, 도로차단기 등 새로운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해 경비원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를 추진하고자 주민투표가 진행됐는데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게 나왔다. 노동부는 사업주에게 인건비 일부를 지급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이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완화해 고용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투표 결과 경비원 축소를 반대하는 의견이 56.7%로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온 의결이 주민들에 의해 부결된 것이다. 주민들은 한 달에 몇천~몇만 원 절약하는 것보다 경비원들과의 상생을 택했다. 지난해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받은 공동주택 경비원과 청소원은 모두 25만 명으로, 2천6백여억 원이 지급됐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최저임금이 또 두 자리 수로 인상되자, 일부 동대표들이 다시 경비원 감원 안건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2018년 주민투표에 의해 부결됐던 터라 입주자대표회의 투표 결과 감원 안건이 부결돼 단 한 사람의 감원도 없이 근무하고 있다.

아파트 동대표 주성란(47) 씨는 “경비원 아저씨들이 하는 일이 정말 많잖아요. 아파트 주변 정리는 물론 택배 수발, 재활용품 정리, 음식물수거함 청결 유지, 야간 순찰, 불법주차 관리, 방문자 확인 등 많은 일을 하는데 최저임금 오른 만큼 받는 건 당연해요”라며 경비원 해고를 반대하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반장이 주변 정리, 분리수거, 순찰계획 등 근무 지침을 내리고 있는 모습.

우리 아파트에서 최저임금 인상에도 경비원 해고자가 없는 가장 큰 비결은 휴게시간 조정과 고통 분담이다. 사실 경비원은 나이가 대부분 65세 이상이다. 경비원들은 2개 조로 편성해 각각 1개조씩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근무한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좁은 경비실에서 근무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휴게시간을 늘려서 경비원들의 휴식 시간도 늘리고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줄인 것이다.

예를 들어 2017년 휴게시간은 9시간이었는데, 2018년에 10시간(주간 4시간, 야간 6시간)으로 늘렸다. 최저시급 만큼 덜 지급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줄일 수 있었다.

올해는 휴게시간도 늘리지 않고 최저시급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만큼 월급도 인상됐다. 경비원 김 모(68세) 씨는 “최저임금이 인상된다는 뉴스를 보고 행여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주민들이 경비원을 생각해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근무하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 임금도 인상돼 요즘은 더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며 기뻐했다.

경비원 감원에 반대를 했던 주민 김길진(67) 씨도 “경비원을 해고해서 한 달에 몇 천~몇 만 원 절약될지 모르지만 몇 년 동안 보고 지내왔던 경비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것은 너무 매몰차다. 우리가 관리비를 조금 더 부담하더라도 경비원들을 그대로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원 고용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비원뿐만 아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청소원들도 올해 최저시급을 그대로 적용하고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와 청소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통해 이뤄진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 지난해 12월 기존의 경비, 청소업체와 재계약을 했다. 경비와 청소업체 입찰 시 우리 아파트에서는 계약 조건으로 ‘기존 경비원, 청소원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한다. 이는 경비·청소업체가 바뀌더라도 기존 경비원들이 해고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경비원 감원, 해고를 막기 위한 개별 아파트 단지의 노력에 정부도 힘을 보탰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안정자금은 총 65만여 사업장 264만여 명의 노동자에게 2조 5136억 원이 지원됐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및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부담을 완화하고,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특히 고용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됐던 공동주택 경비·청소원의 경우 지난해 25만 명에게 2682억 원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급하면서 고용안정에 기여했다. 그 결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 단지당 평균 인원은 2017년 수준을 유지했다. 우리 아파트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체 경비원과 청소원 수는 각각 2167명, 4580명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으로 지난해 경비원과 청소원 수는 각 각 2167명, 458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으로 지난해 경비원과 청소원 수는 각 각 2167명, 458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경비원 자리가 가장 먼저 감원 한파를 맞을 줄 알았다. 우리 아파트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휴게시간을 늘이고 주민들이 십시일반 조금 더 부담하자는 상생 방안으로 단 한 명의 해고자도 나오지 않았다.

노인 일자리를 유지하고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참 잘한 결정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나 혼자만 잘 살자’는 생각보다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생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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