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형

기업에서 존경하는 기업인과 건실한 사원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인간자원이 생존하는 정신토양이 황폐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들여다보라. 거기엔 어떤 값진 명예심이나, 참신한 기풍이나, 잘 정돈된 질서나, 따듯한 인간애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값싼 성과주의와 천박한 이기심과 갈등에 찬 무질서와 차가운 인간관계가 웃자라고 있고 판을 치고 있다. 이상한 열풍에 기업토양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시초에 그 열풍은 인간다운 대우와 정당한 보수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욕구’의 자연스러운 바람으로 불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열화 같은 상승기류를 타고 반목과 불화의 회오리가 기업의 분수를 넘는 높이로 솟구쳤다.  그것에 뭔가 휘말려 무너졌으니 애써 세운 제 감장대로의 공들인 탑이었다. 거기로 들뜬 이기주의와 짝이 되어 불어 닥친 한발旱魃은 노동의 가치를 조각내고 말리는 ‘노동기피 현상’이었다. 보석 같은 일꾼들은 다투듯 설사 영혼이 괴롭더라도 높은 임금 급행열차에 올라타고 과거엔 한스럽게 멀어 보이기만 했던 살맛나는 마당으로 달려가서 내 인생과 내 자유를 즐기자 했다. 이 번영의 시대에 그까짓 초과수당이나 휴일근무 수당 받자고 잔업 할 거며, 휴일 근무라니 거절한다 했다. 생산성이 밑바닥 수준이던 회사 형편이 다급하던 두 자리 수 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사 폭력적 투쟁을 통해서라도 쟁취해야만 하는 목표이기 일수였다.

기업의 경쟁력은 짜부라지고 자꾸 벼랑으로 밀리는 데도 목소리가 커진 노조는 수틀리면 마음대로 공장 문을 닫아걸고 기업이야 멍이 들건 말건 보름도 좋다 한 달도 좋다 주먹을 휘두르며 실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여도 서비스 업체는 솜털이 송송한 소녀들까지 법망을 타고 넘으면서까지 꼬이는 인기업종이 되었다. 정보산업이나 서비스업으로의 급격한 이행移行은 ‘비 산업화 변화’를 가속화시켜 힘든 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을 만연시키고 있다. 고급 인력의 경우 일본의 8할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 경상학부 졸업생 중 불과 3할만이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매년 수 십 조원에 달하는 공, 사교육비로 키워진 대학졸업자들은 보통 수만 명씩이나 ‘고시 병’에 걸려 허송세월한다. 그들은 겨우 2퍼센트밖에 안 되는 성공을 위해 연간 무려 수천 억 원이나 허비하고 있을 정도로 지금 상아탑은 하나 같이 ‘출세지향성 소아마비 병’을 앓고 있다. 21세기의 국제경쟁이 지식산업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면 유능한 지식인이 그 주역으로 나서야 할 것인데 저 엄청난 애늙은이 낙오자들이 산업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한 것이다.

저들이 언제 견실하게 가정을 꾸미고 건실한 직업인으로 나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고 기여할지 의문인 것이다.
 근로자들은 인간답게 살겠다며‘3D 기피’상표가 붙은 드링크에 빠르게 중독  되어 가고 있어 ‘무전유죄’니 ‘실직 홍수 중에 구인난 가뭄’ 따위 등 도처에 부정적 금단현상을 빚고 있다. 어떻든 힘든 일은 싫고 쉽게 돈만 벌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가치 따윈 대수롭잖다는 것이다. ‘노동의 창조적 가치’ 라는 오아시스를 땀 흘려 파기보다는 시세를 쫓아 선택의 낙타를 타고 자기 입맛에만 맞으면 그만인 오아시스를 찾겠다는 것이다. 솜씨가 뛰어난 수많은 딸들은 유흥업소에서 얼굴값으로 포장한 서비스 팔아 버는 짭짤한 수입에 맛 들여 살고, 부모가 허리가 휘어져라 벌어 댄 학비로 고등교육을 마친 아들들은 적자인생이라도 월부 자가용 굴리고 넥타이 맨 채 편하게 일하는 골든 컬러 월급쟁이의 길을 가려 할뿐이다. 노동의 신성한 옥토가 갈수록 척박한 자갈밭으로 변하고 노동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러저러한 변화는 기업 미래에 있어 심각한 위기현상이다. 특히 제조업이 그러하다. 벤처강국이라는 미국이 실인즉슨 경제성장기여도나 고용창출, 사회 및 가계의 안정 등에 있어 그 어느 업종보다도 제조업이 모태요 중심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한테선 어이없이 외면당하고 박대 받고 있다. 연금술사의 꿈은 윤회하는 가, 기업엔 현대판 황금만능주의 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고 있다. 그건 기업의 정신적 성장을 가로막는 사악한 바람이다. 그 바람을 타고 이익과 안일 추구에 알 맞는 새 패러다임으로 길들여 ‘건강한 노동자’ 대신 ‘건장한 거지들’이 지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편하게 성공의 열매를 따려 할 뿐 함께 마실 수 있는 샘을 땀 흘려 파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업에 해로운 것은 그들 때문에 가치 지향적인 인생관을 소유한 채 생활을 절제하며 공동선을 추구하여 일에 몰두하는 '유익한 식균세포食菌細胞'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이다. 가치 상실의 도미노현상은 기업의 사막화를 가속시킨다. 그러므로 서둘러 가치회복에 나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위험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업의 경제적 성장에 걸 맞는 정신적 성장은 기업에 넘쳐나야 하는 현대의 이상적인 생활인인 ‘자유인’의 양성으로 가능하다. 자유인이란 ‘절대적인 진리를 고집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사랑하되, 부단한 자기 혁신과 소망사고所望思考를 통해 창의적인 기여를 하는 일꾼’이다. 이들의 존재와 헌신은 기업의 토양이 황폐화되지 않도록 막고 기름지게 만드는 생명의 단비다.
기업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윤리의 정립이나 지도층의 도덕적 모범 같은 가시적인 투자가 따라야 한다. 정신적 옥토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물질적 풍요란 사상누각 같아서 언제 이상한 열풍에 그 뿌리가 허무하게 뽑혀 말라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업의 미래 지향적 장기 발전전략은 반드시 경제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을 조화롭게 꾀하는 투자믹스여야 한다.

전 세계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도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던 80년대 초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데자뷔 라는 한 여행사가 주선한 <정신적 모험여행>에 기업들이 따라나서 어떻게 정신적 해갈을 했던가는 매우 흥미로운 일화다. 그들은 달라이라마사원에 있는 <영혼의 방>을 방문하고 이스라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는 등 정신적 성찰을 통해 닫쳐져 있던 정신적 보물창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그건 녹 쓴 채 팽개쳐진 개인의 인간적 자산이고 기쁨과 평화의 샘이었다. 그걸 외면한 채 허위단심 추종하며 매어 산 삶에 낀 어지러운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낳았었다.

누구는 그걸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 본성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생긴 당연한 ‘아담의 번민’이라 했고, 누구는 ‘천민 화 몸살’이라 했다. 우린 방종과 탐욕, 특히 돈을 버는 데 있어서의 지나침이 개인을 얼마나 욕되게 만들며 기업을 얼마나 허무하게 망가뜨리는가를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는 조금도 새롭지 않은 사실에 모두 경악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저서인《희망의 문턱을 넘어서》가 오래 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그 명백한 의미를 ‘건장한 거지’ 격인 기업이나 사원들이 음미해야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 정신적 지도자의 저서는 수천수만 권의 경영관련 책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서가 한 귀퉁이에 끼어 있을 뿐인 데도 그 첫 몇 페이지만을 넘겨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속에 뭔가 ‘신선한 느낌’이 일게 한다. 그건 기업에서 지겹도록 맡고 들어야 하는 돈 냄새와 돈 굴러다니는 소리와 사뭇 다른 냄새요 소리이기 때문이다.

괴롭지 않은 자기성찰과 조건 없는 순수한 공감과 명료한 분별력으로 가름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의 식별 안목 등 외면하기 아까운 예지와 교훈과 설득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어서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결코 물질적 빈곤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부패 때문이었고, 21세기의 인간적 갈증이 정신적 빈곤의 산물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기업의 사막화를 방치할 경우 어떤 재앙이 닥칠지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기업의 선량하고 성실한 일꾼 천사가 어떤 도덕적 타락으로든 기업의 사막화를 모른 척하는 힘센 악마로 둔갑한다면 그것이 바로 재앙의 시작이다. 지구의 종말이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의 침입으로 닥칠 것이라는 상상이나 환경오염으로 초래될 것이라는 예언은 분분한데도 기업의 사막화로 인한 정신적 붕괴 때문에 경제 질서가 혼돈에 빠져 급기야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하리라는 경고엔 등한하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사막화를 예방하고 생명이 사는 초원으로 복원하는 힘은 전적으로 기업 일꾼들한테 있고 그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기업이 사막화되면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인 게 결코 아니다.  기업의 사막화는 무서운 기세로 밀려오고 번지는 파도고 바람이고 열풍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진정한 관심과 애정이 없는 사람한텐 기업을 고사시킬지도 모를 저 무서운 바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문제고 여기서부터 비극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기업의 사막화가 어쩔 수 없는 시대변화의 한 흐름 즘으로 여기려는 그 어떤 신조 패러다임이나 의식적 포기도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사막화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모래폭풍처럼 휘몰아쳐 올 때 우리가 대처하거나 원상을 회복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뭔가 사막화 현상을 막아설 방도를 서둘러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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