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내 마음의 녹야”를 외쳤던 독립투사 이육사(1904~1944) 애국시인은 1940년 “은하수”<농업신문>라는 글에서 잃어버린 ‘은하수’를 그리워했다.

[진보평론] 최형록 편집위원 / 사진 = 고경하 기자

[진보평론] 최형록 편집위원은 은하수가 드리운 하늘 아래 여름날 7~8 세(1911~1912년)였던 이육사(264 이원록)을 상상하며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과거 군부독재정부, 현재 적폐세력을 비유하며 비판했다.

다음은 [진보평론] 최형록 편집위원 칼럼 [전문]이다. 

어린시절 집안 소년소녀가 모여 글짓기를 하고 장원을 해서 백지 한 권(20매)을 타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흥미로운 일은 장원례(壯元禮)다.

장원한 아이가 술 한 동이와 북어 한 떼를 사오거나 참외 한 접과 담배 한발을 사오는 것이다. 담배는 어른의 시름을 날려 보내고 아이들은 달달한 참외로 왁자지껄 웃음 피워 올렸을 것 아닌가?!

석양에는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하니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육사 시인의 “광야”<자유신문> 1945-12-17)의 시구로 메아리 친 것이리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저녁 식사 후에는 거리를 다니며 고시를 고성낭독하기도 했단다. 게인 날이면 할아버지는 별자리를 가리키시며 그 별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신다,

文昌星(북두칠성 중 여섯 번째 별), 南極 老人星(Canopus: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 三台星(북두칠성의 물을 담는 쪽 세 쌍의 별)... 그리고 가을이면 뜰 하나 가득 차는 풀벌레들의 찬 소리..

이육사의 시대에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 어린이는 대형 슈퍼와 백화점에서 뭘 고를지 헤매게 만드는 먹을 것들 그리고 한 손아귀에 세계 또래 어린이들의 삶을 실(Real Time)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기적 같은 물질적 풍요 속에 있다.

그런 반면 일제 강점기 초기 이육사가 누린 천진난만한 낭만 그리고 시공을 훠얼훠얼 날아다니는 상상력을 발효시키는 밤하늘의 별이 얼마나 희귀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이육사는 그 시절 교육방법이 엄한 한편 “정서 방면”을 매우 소중히 여겼음을 지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육사 선생이 글을 쓸 당시 조선의 상황은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중일전쟁(2차 세계대전 시작으로 보는 역사가관점에 주목해야)을 벌이는 일제가 조선을 대륙 병참 기지화 할 때였다.

1937년 정보통제와 국가 관념의 보급을 목적으로 조선 중앙정보위를 설치하고 1938년 7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발족하며 행정 말초신경으로 “애국반”(군사독재 박정희 유신시대 반상회의 원형)이 조직된다.

그런 한편 친일협력의 우두머리 공로자의 첫 손가락으로 꼽히던 이성환은 1941년 임전 보국단 결성연설에서 예전에 조선인이 일본의 지배에 감복해 자발적으로 협력한 적이 없고 중일전쟁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협력하지 않은 것을 “자기비판”적으로 호소했음에 유의해야한다.

그렇기에 임화는 “별들이 합창하는 밤”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더구나 청년이 / 무단이 / 묘혈을 팔 양으로 / 세상에 나왔다고는 믿지 않는다. / 별과 더불어 / 크나큰 궁전을 / 역시 우리 / 갈망하지 않는냐?

이육사. 이 고유명사는 즉각적으로, 내 고향 7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이라는 “청포도”를 호출한다.

미야다(宮田)가 지적했듯(1985년) 일제식민지화 이전 이후 “강한 반일의식과 조선독립에 대한 염원”이 조선민중에게 通奏低音으로 일관되게 존재해온 심성이 폭발한 “대구 10월 민중항쟁”에 대립하는 파쇼의 아버지 박정희와 독립투사 이육사 애국시인에게는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 나폴레옹 전기를 읽은 점이다.

황석영은 <<손님>>에서 백일몽까지 동원하면서 “신천 대학살”을 모티브로 삼아 이 한반도에서 그리스도교와 맑스주의라는 두 “외빈”이 어떤 인연을 맺을 수 있는지 성찰하고 있다.

이육사 시인 / 네이브 인용

군부독재 박정희는 맑스주의라는 외빈을 반공이라는 국시로 적대시 한 반면 독립투사 이육사 애국시인은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에서 레닌의 “전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지배적 가치관인 “사회적 다윈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핵심으로 삼는 “다윈주의 원리가 사회적 법칙이라면... 참으로 안타깝다.

일층 잘 순응한 자본가가 그렇게 잘 순응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보다 영구히 생존하여야할 것”이라며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레닌의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연구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육사의 관점은 근원적으로 올바른(Truthful and Just) 한편 다윈 사상을 “사회적 다윈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작 다윈은 “사회적 종들에서 적자(The Fittest)란 반드시 강한 자가 아니며 사실 가장 영리한 자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자들(The Most Sociable)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 다윈주의에 맹(盲)한 <조선일보>의 “중산층이 사라진다.”라는 기사에 따르면 30년 전 자신의 정체성을 국민의 75%가 중산층이라고 한 반면 금년에는 48%로 줄었다고 한다.

주목해야할 점은 소득 양극화에 대한 이유를 1위인 31.1 %가 정책실패를, 27.9 %가 고용부진, 22.4 %가 세계적 불황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종류 여론조사에서 눈여겨 볼 점은 물음 자제와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냐? 라는 문제다.

이 물음에 “자본주의 체제 자체”라는 답이 없는 것이야말로 이 설문의 “계급적 한계”이며 <조선>이 노리는 “계급 정치적 정략”이다! 세계적 여론조사 회사인 갤럽은 2018-08-13 여론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초로 미국의 18~29세 청년의 45% 만이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반면 51%의 청년이 사회주의를 긍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불변자본(설비투자 등) / 가변자본(임금)-를 높여가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이윤율 저하 경향을 보이면서 실업자를 양산하는 필연성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체제다.

오늘날 온갖 “속물 주류 경제학자”라는 놈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험담하는 작태는 “내가 지금 우선 이윤을 챙긴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 알 바 아니다”(Deluge after Me-<<자본>>)라는 악귀 그 자체인 계급의 발악인 것이다.

그런 한편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은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론”에 입각한 선택으로 오늘날 금융 자본이 판치는 세계에는 1930년대처럼 그나마 작더라도 효과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의 여론조사에서는 특히 30~40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면서 그들이 “소처럼 일해도 그냥 서민”이라며 앞으로 형편이 나아질 거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대는 1996년 연세대 대규모 학생시위 이래 학생운동이 쇠퇴하며 오늘날 실업과 함께 심각한 불안전 고용-비정규직 문제의 출발점이 된 1997년 노동악법 저지 투쟁의 실패 이후 사회변혁의 전망을 접고 체제 내화한 노동운동의 순치화, 그에 따른 노학 연계 대(對) 자본투쟁의 소멸 이후 대학생 나이에든 세대이다.

오늘날 시중에는 고 김수행 선생의 <<청소년을 위한 자본>>뿐만 아니라 중학교 1 학년 혹은 초등 6 학년생도 읽을 수 있는 <<자본>>을 설명하는 책이 널려있다. 불교도 강조하듯이 무지와 미망(Ignorance-Delusion-Illusion)은 고통의 근원이다.

AI와 IoT(사물 인터넷)를 축으로 하는 지식기반 제 4차 산업혁명이란 정확히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탈출하려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의 제고에 따른 임금 삭감과 상대적 잉여가치 착취의 제고를 노리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서 “살인적 해고”를 가속화하는 지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적폐 - 나의 어린 시절 국회의 파행과 거의 달라진 바 없는 국회 - 양승태사법부가 매국 반 민중 법비(Legalistic Bandit) 회사 김앤장과 함께 강제징용에 책임 있는 일본 전범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공모한 악행 - 민복기 시대 중앙정보부 받아쓰기 판결 - 지방의회의 부패 - 유치원 교육 부정부패를 사유재산 옹호 강변하는 원장 등이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벌어지는 나라이다.

임화 시인 / 네이브 인용

민주주의를 한자 문화권의 정치철학으로 번역하면 “덕치”다. 그 덕치는 맹자의 부끄러움은 정의로움의 단서(羞惡之心 義之端)이며 고통에 연민의 정을 느낌은 어짐의 단서(惻隱之心 仁之端) 등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인간 본연의 4단에 부합하는 정치다. 이런 4단에 입각한 민중의 “법 감정”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 “거대한 촛불 시위”였다.

그럼에도 그 민중의 도도함은 “파쇼 세력과 그들과 야합할 수도 있는 자유주의 세력의 도도함”을 꺾기에는 불충분함이 분명하다. 그 도도함이 SKY Castle, 자본주의 “패도”를 극복하지 못함은 현 청년 - 장년 세대가 삶의 조건인 Fact에 당달봉사인 데 있다.

“자유계약”이란 허울로 노동력을 상품으로 구매해서 노동자 삶의 시간표를 자본가 계급과 경영자 층이 짜고 그들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어떤 상품(필요-사용가치)을 – 왜? - 어떤 방식으로(노동과정) -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지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의 “자유의지 - 선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또한 생산해서 긴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아귀처럼 소비하도록 부단히 충동질하는 “인류의 선사시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낫”! 자본주의적 법치(法恥)의 패도(Capitalist Hegemonic Legalism)이다. 이 패도 체제로 인한 매연으로 별빛이 산란되어 오늘날 우리는 별 빛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치매까지 유발하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기후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생태학적 악화로 “여섯 번째 생물학적 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지질학적 자본세(Capitalocene)를 극복해야할 인간다운 윤리 도덕적 책무, 자본주의 법치의 패도를 맑스적 덕치로 대체해야한다.

“한밤 중 / 죽어가는 / 낡은 세계를 위하여 / 미칠 듯 / 조종을 난타한다.” 라고 외치며 임화는 1939년 31세 때 이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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