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자신을 숨은 촉과 같은 존재라고 자부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지냈어도 당신은 분명히 일터에서 숨은 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주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기업엔 여러 분야가 있어 사원은 제각기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한다. 같은 업무라도 개인마다 하는 역할이 다르고 책무의 경중이 또한 다르다. 또한 직위의 상하가 있어 권한과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생산하는 제품에 쓰이는 부품이 용도에 따라서 중요도가 다르고 겉으로 드러나게 쓰이는 게 있는가 하면 제품 깊숙이 틀어박혀 쓰여
위대한 영웅호걸들이나 예술가들이 자기관리에 무지하고 등한해서 불행하게 살거나 비참하게 죽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많은 불후의 걸작을 남긴 조각가 로딩은 어느 골방에서 얼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창 날리던 시절엔 부귀영화도 누렸고 세상에 화제가 된 사랑도 했었다. 희수 나이에 죽었으니 그 당시로는 장수한 편이라 작품 활동도 오래 한 편이고 예술가한테 치명적인 불행인 요절하는 비극도 피했다.그러나 저토록 유명한 조각가가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얼어 죽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 야망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욕망이든 그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가 ‘시장경제’다.그건 자본주의 경제운용의 핵심이다. 자본주의경제는 시장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꽃핀다. 기업에는 여러 가지 활동무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영업의 한마당인 시장은 기업의 보물섬이면서 또한 무덤이기도 한 곳이다.기업은 시장에다 판매상품이라는 씨를 뿌려 데뷔한다. 새내기로 첫 출전을 하는 것이다. 기업이 계획한 목표대로 시장정착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실로 생존을 좌우한다. 때문에 시장에는 기업의 승전고도 많이 울리지만 요절한 무덤도 즐비한 것이다.시장정착하기까지 신생기업을 괴롭히고 그 존립
도전과 경쟁을 하지 않는 기업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을 멈추면 기업은 희망과 활력을 잃게 된다. 또한 무수한 기업을 망치는 것도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경쟁이다.상식적으로 미꾸라지의 평화로운 삶은 포식자인 메기가 없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메기와 어우러져 끊임없이 잡아먹힐 위험 속에 살고 있는 미꾸라지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훨씬 민첩하고 강하며 번식력이 높다고 한다. 메기의 마수를 피해 살며 잡아먹히는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새끼를 계속 낳아 기를 수 있는 힘은 ‘번식에의 부단한 도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세기가 열리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려는 기업은 어떤 패러다임을 따를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패러다임(paradigm)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극명하거나 전형적인 모범 또는 본디의 모양’을 의미한다. 경영학적 정의로는, 시대를 규정하는 ‘시대정신 zeitgeist’과 그 시대의 ‘주도적 생산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사고의 틀’이나 ‘사고방식’으로 이해한다. 패러다임은 시대사조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 pa
맷돌의 존재가치는 곡식을 고운 가루로 가는 데 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맷돌이 그 기능을 잃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그 맷돌의 역할은 맷돌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어처구니가 있어야 수행이 가능하다. 해서 이치가 완성되는 데 꼭 있어야 될 것이 없어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다.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그 맷돌은 맷돌이라 할 수 없으므로 어처구니없는 맷돌을 맷돌이라 하거나 맷돌을 돌리겠다고 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이 세상에는 맷돌과 어처구니 같은 관계가 비일비
요즈음에 와서 정부가 앞장 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자고 독려가 부쩍 자심해졌다. 정부의 기업정책 또한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틀린 말도 아니고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만시지탄이고 또 과거에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 런지 싶은 게 문제다.과거에는 상생이라는 용어 대신에 더불어 잘 살자는 취지의 공존공영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어의인데 새삼스러워 보일만큼 티를 내는 것은 아마도 현실적인 문제성이 간과하기에 심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그 심각성이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신바람은 신묘한 힘으로 모두를 한 동아리가 되어 달려가게 만들므로 기업발전에 그보다 더 좋은 뭉친 바람은 없다. 그건 활력의 완전연소를 돕는 산소 같은 것이다. 지금 기업인들은 기업할 재미가 없다 의욕이 밑바닥이고, 종업원들은 왠지 옛날처럼, 비록 고달파도 신명나지 않아 한다. 당최 기업에 활력이 넘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질을 높이고 발전하는 것이 지체될 것이다.대체 기업에 있어 신바람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신바람은 '알찬 기업비전'으로부터 일어난다.사원은 본시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신바람은 신묘한 힘으로 모두를 한 동아리가 되어 달려가게 만들므로 기업발전에 그보다 더 좋은 뭉친 바람은 없다. 그건 활력의 완전연소를 돕는 산소 같은 것이다. 지금 기업인들은 기업할 재미가 없다 의욕이 밑바닥이고, 종업원들은 왠지 옛날처럼, 비록 고달파도 신명나지 않아 한다. 당최 기업에 활력이 넘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질을 높이고 발전하는 것이 지체될 것이다. 대체 기업에 있어 신바람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신바람은 '알찬 기업비전'으로부터 일어난다.사원은 본시 단순한 월급쟁
기업이란 참으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생존을 건 경쟁을 하 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땀 흘려 일하는 밥벌이꾼들의 하나같이 엄숙한 사명은 말할 것도 없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엄중한 책임이다.무엇인가를 창조해 낸다는 것은 대단한 역사役事다. 기업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은 매우 의미심장한 창조활동이다. 그것을 위해 남남으로 모여 한 가족처럼 일하고 그것의 성과라는 열매를 수확해 개인과 가정이 먹고 살며 아들딸 낳고 일생을 영위해 산다. 어찌 거기를 외경한 삶의 한마당이라 하지 않을 건가.그러므로 저 일터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터전이
현대 경영의 큰 화두의 하나는 지식경영, 기업마다 그것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사원들의 음주문화를 보면 거기에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지식경영과 술은 언 듯 생각하기에 깨끗한 식수와 러브호텔만큼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업과 술을 연관 지으면 인화지에 영상이 떠오르듯 기업에 있어 음주문화가 일상의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직장인들이 술을 마시는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스트레스 해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마시는 술값이 연간 수십조 원이라는
기업 내부적으로 가장 비생산적인 갈등을 빚고 이해가 충돌돼 심각한 경우 기업의 존망까지 위협하는 불화나 다툼이 노사 간의 대립이다.지금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마치 조개와 도요새, 키잡이와 삿대 잡이가 싸우는 형국 같다. 그 가멸차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노사분규는 기업 호의 뱃길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노사분규를 마치 연례행사처럼 아귀차게 벌이는 기업을 보노라면 이런 고사가 생각난다.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을 때 마침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조가 연을 공격하려 했다. 연나라 사신 소대
기업에서 일하는 사원들이 자신이 국가나 사회나 가정에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고 있으며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위대하다는 찬사를 보통 놀라운 업적을 달성한 영웅이나 철학자나 예술가에게 보낸다. 저들이 성취한 업적이 위대하였다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함이 마치 훈장처럼 달려 있는 것이다.그러나 저들의 삶이 부러움을 살 정도로 위대했다고는 단언하기 어렵다.업적과는 다르게 불행한 일생을 살고 요절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저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란 위대한 성취 때문에 그나마
경영은 협동의 산물이고 협동의 모체는 공동체임으로 그 덕목은 당연히 주인공들의 소속감과 책임의식이다. 지금 기업에선 주인다운 주인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걱정한다.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모두가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권유해 ‘올바른 나라 사랑의 길’을 이렇게 일깨운바 있다.『대한 사람은 모두가 대한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이외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 사회에 주인다운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이 모두 나에게 달렸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자가 진정한 주
협동의 이치는 움직이는 자전거에 매달려 인간의 탑을 쌓은 채 허물어지지 않고 맴을 도는 곡마단 묘기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것이다.사람이 태어나는 일로부터 세상사 어느 한 가지도 공존공생의 이치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하찮은 미물인 동물이나 곤충 세계의 먹이사슬까지도 그러한 이치로 돌아간다. 코끼리가 풀을 먹고 싼 배설물을 쇠똥구리가 먹고 그 속에 알을 낳아 유충을 키우며, 다 자란 쇠똥구리가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오면 코뿔새가 그것을 잡아먹고 산다.기업이 운영되는 이치 또한 마찬가지다.기업의 목적은 바깥 시장에서 판매활동을 통해
과거에 따랐던 경영기법과 패러다임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껏 의지해온 경영방식에 의문을 품은 경영자들이 새삼스럽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요 인간관계다.인간중심 경영이 필요하다고 새삼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필시 기업들이 경영성과를 올리는데 골몰하느라 종업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영을 했거나, 경영자의 부도덕성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져 나온 탓인지, 아니면 갑자기 경영의 총아가 된 지식경영 때문인지 모른다.이익의 극대화만을 지상주의로 삼았을 뿐 기업이 위기에 처할 때 힘이 될 건실한 사원정신 배양에 등한했거나, 기업주
재벌그룹이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데 무관심해서 그 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세상이 자본주의를 경멸하게 만들고, 나아가 민주주의까지 의심케 만든 것은 유죄다.재벌은 독점적 자본가 또는 일가나 친척으로 구성된 대자본가의 집단이라는 뜻이다. 재벌은 막강한 재력을 소유한 큰 부자인데 혈족이 중심이 되어 있고 엄청난 규모의 재력이 그들에게 편중돼 있는 특징이 있다.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그런 거부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다. 아마도 치부를 하되 부정한 수단과 방법으로 하기 보통이고, 그런 거부를 소유하면서도 정당하게 나누려 하
언젠가 법원이 한 재벌그룹 총수에게 내린 선고 내용을 들으면서 너무나 개탄스러워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량이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원이라니, 세계적으로 기업 역사상 어느 기업인이 그런 중형을 받은 적이 있을까 의문이다. 20조원 대의 분식회계를 했고, 10조원 가까운 사기대출을 했으며, 회사 돈을 훔쳐 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도피 시켰다는 그 죄목 또한 기업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주 더럽고 부끄러운 짓이었다.재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은 보통 부도덕한 기업인
이 땅에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린 지가 아무리 오래지 않다 해도 재벌이 그토록 밥맛없는 존재로 지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국가 장래를 위해 참으로 걱정된다.어느 재벌 총수가 대기업을 적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경제단체 건물엔 ‘기업을 사랑해 달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적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게 저 정도로 기업에 대한 바깥 시선이 곱지 않으며 지탄의 소리가 높다. 그런가 하면 어떤 대학교수는 국민소득 수준을 밑바닥에서 상위권으로 끌어올려 잘 살게 만든 일등공신인 재벌을 턱없이 구박하는 건 온당치 않다며 재벌을 해
정계나 사회단체가 무슨 유행처럼 기업 때리기에 생야단이다. 이른바 재벌기업치고 매를 맞지 않는 데가 없다. 재벌가 자식들이 철딱서니 없는 ‘갑 질’이나 부리고, 동네 빵 가게나 넘보며 커피나 외식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한심한 행태를 보고 말 매라도 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긴 하다. 기업 때리기(bashing)는 말 매를 치고 각종 규제를 가하며 변화를 강권하는 것이다. 말 매는 대기업의 부도덕성을 매도하는 것인데 그게 무서운 것은 반 기업정서라는 후유증을 낳기 때문이다. 규제와 정책적 강권은 부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