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어느덧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행은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은 기자는 마음이 정리된 듯 송 박사와 좀 떨어진 곳에 앉아서 골똘히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독일로 출발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송문학은 그 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가정사역과 사회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다시 정리하며 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은 기자와의 사건이 자신을 한 단계 성숙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참, 내 자신이 그런 실수를 하다니!’인간은 역시 약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느 누가 자신이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신기루송문학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두 손을 은기자의 어깨에 올려놓고 정면을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난 하늘이 허락지 않은 것에 범할 용기가 없구려. 하늘은 언제나 나에게 성실했으니까!”“……….”“자, 그럼 잘 자시오. 내일 아침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떳떳한 모습으로 뵙게 될 것이오!”그는 은기자의 손을 꽉 붙잡았다.“선생님 저를 사랑하시는 거죠!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맞지요?”송문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사랑한 건 사실이지 않은가? 은 기자는 안심했다. 자신을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5회신기루‘결혼 후 이런 감정 처음이다.’‘아, 내가…?’인간의 마음이란 알 수 없었다. 송 박사의 마음에 돌연 찾아온 사랑의 열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의 화살을 맞은 듯 송 박사는 눈만 뜨면 온 천지에 은 기자로 가득 찼다.“선생님 다음은 장애아 교육시설 방문입니다.”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은 기자,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송문학은 가슴이 설레었다. 청바지에 하얀색 남방을 걸친 여체는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점심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은
사회복지 팀이 독일의 베를린에 도착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호텔에 투숙하고 이 도시 저 도시 옮겨 다니며 현장답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내일은 독일의 사회복지 정책과에 순방할 예정이다. 송문학은 독일어가 아쉬웠다. 영어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었으나 독일에서는 말이 자유롭지 못했다. 다행히 은 기자가 곁에서 통역해 주고 있어 별 문제는 없었다.이번 사회복지 취재팀은 정부에서도 매우 관심을 가지고 사회복지부에서 후원해 준 코스였다. 비용과 여러 가지 면에서 후원을 받아 든든했지만 그만큼 실속 있는 풍부
큰 바위 얼굴채성은 자신이 수석합격자가 되어 장흥의 후원을 받은 걸 상기하며 말했다. 그 때 자신은 S대 경영학과 최고득점의 우수학생으로 신문지상에 파다하게 알려져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웠다. 그 때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증오감으로 다시 온몸을 떨고 분노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혹시 신문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여긴다면?’ 만약 곁에 있었다면 폭행하고도 남을 만큼 증오의 피가 끓고 있었다.‘나에겐 엄마가 없다. 난 이제 고아야.’어머니를 부정하며 증오했다. 아니,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2회큰 바위 얼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절망〉이라고 했다. 애춘을 죽음에 이르도록 절망케 한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시인하며 참회하기 시작하였다.“휴…, 지독한 이기심, 살인자와 같은…!”채성은 사나이로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두 여자가 너무도 불쌍했다. 그리고 애통한 듯 소리 내어 울었다.“으흐흑…, 으흑흑….”무대 위에서 섹스폰이 구슬픈 가락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빌 클린턴을 연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1회큰 바위 얼굴평창동으로 돌아온 애춘은 너무도 낯설고 타인의 집 같았다. 그의 집은 이제 애춘을 잊어버린 듯 고요하기만 했다. 채성은 화순 댁에게 애춘을 각별히 부탁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정원의 작은 벤치에 앉았다. 작은 연못 위에 자신의 얼굴이 비추었다. 물 위에 비추인 자신의 얼굴조차 그에겐 낯설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만추의 바깥공기는 꽤 쌀쌀했다. 아니, 채성의 가슴엔 싸늘한 겨울 기운이 감돌았다.‘난 애춘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만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80회발견채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현관 벨을 눌렀으나 기척이 없었다. 문을 밀어보니 잠기지 않은 채 쑥 밀리었다.“으흑흑…, 흐흐흑….”베란다 쪽에서 신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들려왔다. 채성이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자 애춘은 아파트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뉴스에서 모기업 사장이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에 대한 압박감! 혹시 애춘이 자살…?애춘이 발을 들었다. 채성은 날듯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소
【한애자 칼럼】- 개혁의 시대(11) 4. 사회개혁 -낡은 것을 벗어버리자(2)2017년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곧 새해가 밝아온다. 돌아보면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한해였다. 대통령 탄핵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했고 정치적으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새 정부에서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드러내며 국정원의 비리와 블랙리스트 등..검찰의 수사와 국정농단의 인물들이 나란히 구속되는 뉴스를 연일 듣게 되었다. 돌아보면 왜 우리나라는 부정부패가 끝이 없는지 한숨이 나온다. 제도가
발견“아, 아니.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지….”혜란은 아쉬운 이별을 느끼며 채성에게 매달렸다.“오늘밤은… 마지막으로 저와 함께해요…!”그들은 나이트 홀로 이동했다. 홀 안에는 현란한 광채 가운데 남녀가 엉켜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혜란은 채성을 무대 중앙 쪽으로 리드하며 그에게 깊이 몸을 파묻듯 밀착했다. 약간의 취기 속에서 혜란의 요염한 몸짓과 입술은 채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채성의 머릿속에는 사나이를 뿌리치고 단호하게 사라지는 애춘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밤이 깊
발견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혜란은 와인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저편의 숲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떠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채성의 시선은 다시 애춘을 향했다. 두 사람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애춘이 의자 바깥쪽으로 몸을 틀어 앉는 것이 이제 곧 집으로 가고 싶은데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오래 끄나 하는 태도였다. 무심히 창밖의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두 남녀가 검정색 자가용에 몸을 싣고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머리를 기대며 유쾌하게 제2차로 사랑을 꿈꾸듯 그렇게 사라져갔다.채성
발견혜란이 꼼꼼히 주문하고 있을 때 채성은 출입구로 시선을 향했다. 두 남녀는 팔짱을 끼고 채성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아버지와 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남자의 음흉스런 웃음과 여자의 상기되고 들떠 있는 표정이 관계를 말하고 있었다. 그 다음 순서는 모텔이나 호텔로 향하고 있으리라. 그 때였다. 애춘이 웬 사나이와 힘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채성은 빨리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고 알아보면 낭패인 것이다. 그는 아찔했다. 다시 한 번 그들을 훔쳐보았다. 두 남녀는 아까 그 남녀가 앉았던 왼쪽의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채성은 애춘보다 동
발견채성은 처음 만났을 때의 혜란을 생각하며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떠나면 자신은 어떻게 되나! 그러나 아내를 버리고 혜란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진정한 쉼은 없었다. 이제는 제자리에 돌아가고 싶었다.“다음 달에 아주 미국으로 돌아가려고요. 그곳에서 휴가도 보내고 좀 더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업도 구상해 보려고요.”“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모델하우스〉를 운영하는 송 박사님 아세요?”“응, 나의 대학 동기야, 나에게 한 번〈모델하우스〉에 참석하기를 권한 적이 있었지!”“어머, 동창이세요? 저,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분의 말
발견채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이런 상태가 서로에게 좋을 거야. 사람들은 부부는 정으로 살아간다고 하던데 난 왜 그렇게 애춘에게 모질었을까. 우리 어머니를 나는 혐오했어.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였어. 난 그런 여자와 똑같은 애춘을 만난 것 같아 잘해주려고 해도 그 모습만 보면 혐오감이 몰려오더군!”“여자는 모두 사랑을 찾아 이기적일 수 있어요!”“하기야 요즘은 자기 핏덩이도 내버리는 독한 여자들이 많지만 거기에 비하면 애춘은 악한 것은 없어. 너무 호강하게 받들어 자라서 좀 푼
발견애춘은 가랑비가 내리는 교정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공허한 마음속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다시 밀려왔다. 심정수와의 정사로 자신은 갈 데까지 간 더러워진 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민 선생이 이런 나를 보면 어떻게 대할까!’프로방스에서 마치 신부 앞에 고해성사하듯 애춘은 자신의 은밀한 모든 것을 토해냈을 때 지선의 그 깊고도 깊은 사랑의 빛을 보았다.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진지함과 동일시하는 따뜻함과 친밀함이 감동과 함께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희롱이나 조소가 없는 진정성을 보여주어 유일한 자기편이 된 듯 의지
방문상념에 젖었던 애춘은 욕실에서 서서히 나왔다. 냉장고가 깜박였다. 갈증이 몰려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모두 오랫동안 저장된 것들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음료수들로 가득 찼다. 애춘은 난생 처음으로 냉장고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음식들이 모두 쓰레기장으로 들어갔다. 점점 비어지고 깨끗해지는 냉장고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상쾌해졌다. 그녀는 갑자기 ‘청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채성이 머물고 간 소파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회복’이라고 그는 말했다. 부패되고 냄새나는 것들을 지니고 다니기에는 이제 진력이 날 것 같았다
방문강석진은 애춘을 일으켰다.“자! 그만 돌아가셔야죠!”그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 몸을 싣고 집에 돌아온 나날들이었다. 카페의 한쪽에서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심정수는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기회를 노리는 살쾡이 같은 모습이었다.“허허허…, 외로운 여자가 또 있군! 그건 간단한데 말이야! 꼴에 무슨 자존심은 있는지… 날 피한단 말이야. 난 그것이 더욱 흥미를 끌고 있어, 이봐 장애춘! 허허허허….”주위 사람들은 남편에 대한 갈등을 그녀의 넋두리를 통해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방문채성은 애춘을 빈정대듯 물었다.“왜요? 예쁜 나의 모습에 자신감이 생기고 주변의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더군요. 남자가 당신 하난 줄 아세요?”채성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키며 괴로운 듯 소리쳤다.“그만해! 그런 유치하고… 미친 소리!”애춘은 그만 벌떡 일어나 앉았다.“전 피곤해요. 씻고 자야겠어요.”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애춘의 등 뒤에서 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무튼 이번 달까지 결정하도록 해요. 계속 이런 상태로 있을 순 없고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회복할 것인지….”채성은 싸늘하게 돌아서서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70회방문돌아가는 발걸음 속에서도 애춘은 머릿속에 지선의 그 활기찬 대화가 떠나지 않았다. 그 안정되며 흔들림 없는 어떤 확고하고 견고한 내부의 집이 존재하고 있었다. 애춘은 약간 흥분되고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평창동으로 향했다.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도 지선과의 만남은 삶에 의욕을 불어넣고 생기를 주었다.‘남편은 자신을 찾아올 것인가! 아냐, 그는 나를 아주 떠났어!’애춘은 머리가 복잡하고 산란스러워 생각을 접어버렸다. 어느 덧 집 앞의 현관에 도착했다
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69회방문애춘이 돌아가고 나자 지선은 문득 은 기자와 남편의 일이 떠올랐다. 애춘에겐 걱정할 것 없고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덮어두었으나 은 기자가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남편을 배웅하면서 보았던 단발머리의 은 기자! 자신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은 은 기자와 남편사이를 질투나 추호의 의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따져보았다. 애춘은 남편이 선호하는 여자가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