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김석태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희귀 사진임)

눈물의 인식표와 사진 한 장

풍상에 닳은 비목마저 없는 계곡
군번 하나 남기시고
홀연히 사라져 간 님이시여
산울림마저 되돌아온 반세기
우린 그저 잊고만 살아왔소
이슬이 님의 눈물인 줄
시퍼런 하늘이 님의 한(恨)인 줄
바람이 님의 한숨인 줄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님이 쓰러진 산길을 따라
어깨동무하고 걸으며
즐거운 노래를 불렀었지
오늘을 있게 한 님들을 잊고서...

군번도 없이 썩어진 호주머니에
한 장의 사진만 남기시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님이시여
낙엽 쓸쓸히 흩날린 반세기
우린 까맣게 잊고만 살아왔소
소나기가 님의 눈물인 줄
내리는 눈이 님의 맹세인 줄
산그늘이 님의 슬픔인 줄
내내 알아채지도 못한 채
모습 잃고 울부짖는 언덕길 따라
조잘대며 꿈을 예기했었지
내일을 있게 한 님들을 잊은 채...

생사조차 몰라 밤이면 밤마다
눈물의 강을 오가는 이들
따끈한 밥 이불 밑에 묻어두고
내 나이만큼이나 기다려온
백발 성성한 모정의 세월들
얼룩진 눈물 자국, 자국엔
깊고도 거친 주름만 늘었다오

파랗게 날리는 향 연기 사이로
얼굴 없이 빛나는 인식표,
군번 없는 사진 한 장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두 손 모아 명복을 비옵나니
아직도 앳된 님이시여
당신은 맘 눈 영원히 뜨신 분
여한일랑 우리에게 맡기시고
이제 편히 눈을 감으소서.

(2004년 6월 6일 현충일에 인식표,
또는 사진 한 장 남은 유족들을 보며...)

(삼일절 100주년을 맞은 오늘날 사라져간
항일 애국 독립투사들도 함께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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