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따랐던 경영기법과 패러다임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껏 의지해온 경영방식에 의문을 품은 경영자들이 새삼스럽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사람이요 인간관계다.
인간중심 경영이 필요하다고 새삼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시 기업들이 경영성과를 올리는데 골몰하느라 종업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영을 했거나, 경영자의 부도덕성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져 나온 탓인지, 아니면 갑자기 경영의 총아가 된 지식경영 때문인지 모른다.

이익의 극대화만을 지상주의로 삼았을 뿐 기업이 위기에 처할 때 힘이 될 건실한 사원정신 배양에 등한했거나, 기업주의 부도덕함으로 빚어진 결과가 기업에 많은 상처를 입히는 부메랑으로 날아들고 있다. 대기업의 총수들이 숨겨온 부정비리는 여전히 탄로 나 개탄을 자아내고, 중소기업까지 번진 투쟁적인 파업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립의 장벽만 높아질 뿐 회사 사랑은 그 과거의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한 대기업과 그 협력사들이 40일 가까운 파업에 입은 경제적 손실이 자그만 치 1조6천억 원에 달했던 사례가 있다. 어느 쪽에 더 공의로운 명분이 있었건, 또는 어느 쪽 주장이 더 인간중심이었건, 그 기업의 노사는 협상 테이블에서 시간당 물경 40억 원씩이나 고스란히 날린 셈이다. 저들이 피차간에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코 관철하려 싸웠던 명리와 가치란 대체 무엇이었나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기업들은 노사 간의 갈등 외에도 여러 가지 환경변화 때문에 경영에 있어 인간의 역할이 제한당하거나 위협받는 어수선한 지경에 처해 있다.
높은 이직과 힘든 일을 꺼리는 배부른 노동의식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실업사태 가운데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덕목처럼 회자되었던 종신고용제는 한 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고 있다. 그 결과 노조의 쟁의에 질린 대기업들이 유리한 인사권 행사를 위해 야금야금 비중을 늘려 고용한 임시직 사원들이 그 세를 불려 기업은 물론 정부를 곤혹스럽게 압박하는 압력단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 된 것이다. 공장 자동화나 사무의 전산화는 인간중심 경영의 기본을 뒤흔들었고 위협하게 되었다. 

덕목과는 상관없이 효율 위주로 인력과 대체해 설치되는 첨단 설비나 기기는 죄 없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전문 오퍼레이터라는 새 주인을 등장시켰다. 생산효율을 높이는 대신에 저임금 노동자 다수가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새로운 윤리문제를 야기 시켰다. 노동의 가치기준이 변함으로써 단순 기능공들의 자연도태 현상이 뒤따르게 된 것이다.

기업마다 단행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영혁신 또한 조직의 슬림화와 인원의 최소화를 그 일차적인 목표로 삼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사원인가 여부를 가려내는 일은 경영의 중대한 과제로 등장했다.
그렇게 경영효율화를 위한 제 수단이 경영의 신앙처럼 신봉됨으로써,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말썽이나 일으키는 사원은 도태되어 마땅한 무가치한 수단쯤으로 치부되는 비인간적인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기업에서 인간이 발휘했던 가치가 의심되고 떨어지는 위기감이 고조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 환경이 변하고 경영에 있어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어도 변할 수 없는 진리는, 경영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엄연한 진리가 새로운 틀과 기준으로 수정되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미지인용

《채근담》에 ‘덕이란 사업의 바탕이니 그 기초가 단단하지 못하고서는 그 집이 오래가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인간중심 경영을 하려면 먼저 기업주나 경영자가 인간다워야 한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서는 기업이 결코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주나 경영자가 마땅히 갖춰야할 덕목 중에 제일가는 것이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덕성’이다. 경영자를 존경하는 것은 그 지위가 대단하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명예 때문이다. 그 명예는 돈과 지위에 굴종해 살지 않고 도의상의 의무를 다할 때 얻는 것이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숭고한 명예시스템의 대명사가 된 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고귀한 신분인 귀족들이 앞장 서 출정, 죽음을 불사함으로써 돈과 지위와 생명을 희생한 대가로 얻은 그 고귀한 명예 때문이다.

일본 대기업 경영자들이 협소한 집에 살며 ‘중역열차重役列車’라는 애칭이 붙은 요코하마와 동경을 잇는 쇼난(湘南) 전차로 불편한 출퇴근을 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해내는 것은 검소한 생활 속에 빛나는 성취감이 애착하는 명예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기업가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일본 혼다회사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훌륭한 기업가정신은 그의 고귀한 덕성을 모태로 하고 있다. 

그는 기업가란 결코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정신으로 경영해선 안 되며, ‘조금이라도 사회에 유용한 형태로 돈을 벌지 않으면 한 된다’는 정신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을 사원 모두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업을 사유물처럼 여기는 기업주를 경멸했다. 그의 위대함 중에서도 사람을 믿고 아름다운 인간중심 경영을 일관되게 실천했던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인간적이고 감동에 찬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는 철저한 사업가면서 자신의 성을 회사명으로 삼았던 것을 후회할 정도로 매우 고결한 덕성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기업가정신 덕분에 혼다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중심 경영이 성공하려면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건실한 사원정신 배양이 선행되어야 한다.

덕성이란 재능의 주인이요 재능은 덕성의 종이기 때문이다. 재능은 있어도 덕성이 없으면 주인 없는 집안에 종들끼리만 살림살이를 하는 것과 같아서 그래가지고서는 도깨비들이 놀아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배고프면 들어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듯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는 게 바로 인간의 통폐通弊라서, 강한 책임감과 주인정신으로 무장된 사원정신이 아니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

기업이 어려울 때 필요한 사원이란 재능이 뛰어나도 덕성이 없는 인재가 아니라, 재능은 모자라도 덕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으르렁거리고 뱉는 이해상관에 밝은 사람들이 아니라, 개인보다는 기업의 존립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여럿과 함께 닥친 고통과 불리를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다.
평소 덕성이 풍부한 사원들을 양성하지 못했다면 그런 기업가는 인재양성을 했다 할 수 없으며, 재능만 뽐냈을 뿐 덕성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않았다면, 그런 사원들은 과객과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다.

인간중심 경영이 좋은 기업을 만드는데 꼭 있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자칫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데 부담이 되고 급기야 항우의 ‘부녀자적 측은지심’ 같은 어리석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덕성이 결여된 인간중심 경영이 허구인 것처럼 기업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이익을 내지 못하는 인간중심 경영이란 무가치하다. ‘무익유환無益有患’, 기업에 이익이 없으면 온갖 환난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덕성이란 무력할 뿐이며, 이익이 없는 인간중심 경영이란 공허할 뿐이다. 덕성이 풍부한 가운데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이 희망을 잃지 않고 지탱할 수 있어도, 이익을 내지 못한 데다 덕성마저 없다면 그런 기업엔 희망이 있을 수 없다. 덕성이 없는 경영자가 재능만이 뛰어난 사원들을 부려 커다란 이익을 낸들 그 이익은 오히려 부패와 불화의 화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기업엔 ‘덕성과 재능’이 함께 풍부하게 있어야 하며 그것들이 인간중심 경영의 두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위아래 모두에게 이 두 가지가 부족하면 기업은 틀림없이 망한다. 더구나 요즈음 같이 갖가지 환경요인이 기업에 있어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에 효율을 쫓느라 덕성 함양에 소홀히 하는 것은 기업의 장래를 위태롭게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재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으며 돈만 신앙한 결과 어떤 재앙이 닥쳤는가를 우리는 옛날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노사가 이해의 양 끝에 위태롭게 서서 다투느라 기업이 얼마나 멍들었으며, 인간관계가 얼마나 삭막해지고 지저분하게 변질됐나 질릴 정도로 겪고 있다.

이제 기업에는 기계와 기계를 닮은 일꾼과 금전적 사고에 이골이 난 프로들만 넘칠 뿐 ‘사람다운 사람’이나 ‘인간다운 사원’은 점점 그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다. 인간중심 경영이 ‘경영지본經營之本’이라면, 인간다운 사원이 되고, 인간답게 존중해 주며, 좋은 인간관계에 의해 좋은 경영을 해 내는 경영철학의 실천과 풍토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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