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아! 참 날씨가 좋습니다. 그야말로 화창한 봄날이네요. <덕산재(德山齋)> 창밖에 무한대로 펼쳐진 저 넓은 들판에도 봄이 무르녹는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강원도 산불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봄꽃의 명소로 몽땅 달려 나갑니다.

참 좋은 날이네요. 저의 봄날,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닌 탓인지, 몇 년 전부터 다리가 불편해 마음만 굴뚝이지 다니질 못합니다. 그 대신 집사람이 거실 창가에 조성해 놓은 ‘화원(花園)’이 제게는 봄을 완상(玩賞)하기에는 더 할 수 없는 장소랍니다.

그래도 조금 답답하여 창문을 열고 백설희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크게 틀어놓고 목청껏 따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감정이 북 바쳐서인지 저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네요. 적어도 덕산인 제가 이런 주책을 부리다니요?

한국의 시인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를 가진 가요가 무엇인지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한 노래가 가수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이었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로 녹음되어 한국전쟁 이후 1954년에 새로 등장한 유니버살레코드에서 첫 번째 작품으로 발표 된 노래입니다.

원래 3절 가사로 만들어졌으나 녹음 시간이 맞지 않아 초판에는 제1절과 제3절만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초판에 수록되지 않은 제 2절은 백설희가 다시 녹음한 재판에 수록되었고, 이후 다른 가수들의 녹음에도 대부분 수록되었지요.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대중음악 중에 좋은 노랫말은 아름다운 시(詩)입니다.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더욱 그러하지요. 작사가 손로원은 원래 화가였다고 합니다. 광복 후 ‘비 내리는 호남선’을 비롯한 여러 가사를 쓴 노랫말의 대가(大家)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6.25 전쟁 때, 피난살이 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어머니 사진을 걸어뒀습니다.

연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수줍게 웃는 사진이었습니다. 한 때 작사가 손로원은 금강산에 미망인인 어머니를 홀로 두고 방랑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 사진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판자촌에 불이 나면서 사진이 타버렸지요. 그때 손로원은 황망한 마음으로 이 가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황혼 길에 들어선 늙은이에게는 다시 온 봄은 이미 봄이 아니지요.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던 그 맹서도 세월 앞에는 속절없이 사라집니다. 봄날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요.

며칠 전,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이 미국에서 유명(幽冥)을 달리하여 돌아 왔습니다. 고작 70평생을 살아가기도 바쁜데 어찌 그리 탐욕의 세월을 보냈을까요? 인생은 허무(虛無)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부(富)의 허무는 허망(虛妄) 그 자체입니다.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에게 경종(警鐘)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습니다. 봄날은 갑니다. 죽어 칫솔 한 자루도 가져가지 못하는 우리 인생에 탐욕은 웬 말이고, 명예와 권력은 도대체 무엇인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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