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배려
어느 모임에 가던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무시하고 자기네 생각을 너무 심하게 주장해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이해(理解)하고 배려(配慮)하는 마음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지금의 여야(與野)의 정치인들입니다. 야당의 대표가 이 나라의 대통령을 “김정일의 대변자다”라거나, 의원들의 세월호, 5.16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망언(妄言)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서로 보기를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여깁니다. 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가 삶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남을 위한 이해이고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남을 위하여 헌신(獻身)하고 봉사(奉仕)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해란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형편을 잘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려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펴주거나 도와줌을 말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길 가던 나그네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뭇잎을 띄워 물 한잔을 건네주었고, 먼 길가는 힘겨운 나그네에겐 아무런 대가없이 하룻밤을 쉴 수 있도록 사랑방을 선뜻 비워주던 아름다운 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해와 배려에는 좋은 성격, 선량함, 그리고 인간성 등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그것에는 지혜와 민감성 또 눈치와 재치가 없다면 진정한 이해와 배려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루는 대문호(大文豪) 괴테와 악성(樂聖) 베토벤이 함께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멀리서 왕족들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괴테는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했지만, 젊은 베토벤은 왕족이 먼저 아는 척을 하기 전 까지는 못 본 척 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난 후 괴테는 베토벤에게 이렇게 한마디 합니다.

“왜 자네는 인사를 하지 않는가? 인사를 한다고 자네의 명성에 흠이 가는가? 저들이 이 일로 앙심을 품는다면 아마 자네의 인생에 금이 갈 걸세! 고개 한 번 숙이는 별것 아닌 일에 인생을 걸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은 내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존중할 때, 나 역시 존중받기 때문이지요. 강철 왕 데일 카네기는 어떻게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일 것인가 라는 화두로 유명한 처세술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파티석상에서 데일 카네기는 ‘인간이 어떤 일을 벌여 놓아도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신의 뜻이다.’ 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카네기는 이 말이 ‘성경이 아니라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 옆자리에는 세익스피어 전문가가 있어서 그에게 이 말의 정확한 출처를 묻자, 그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전문가는 짐짓 거짓으로 말합니다.

나중에 카네기는 그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은 ‘햄릿 5막 2장’에 나오지, 하지만 데일, 우리는 그 즐거운 모임의 손님이었잖아. 자네는 왜 그 사람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들지? 그렇게 하면 그가 자네를 좋아하겠나? 왜 그 사람 체면을 채워주지 않나? 그것을 확인해서 얻으려는 게 뭔가?”

그 유명한 처세술을 쓴 카네기도 이런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겁니다. 논쟁에서 얻는 것은 잠깐의 승리일지는 모르나 사람을 잃게 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보다는 조용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의 유일한 비결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 입장과 함께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또한 이를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설명은 길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귀고 관계하는 범위는 대략 2백 명 내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인생의 성패(成敗)를 좌우하게 됩니다. 그 이해와 배려를 잘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나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상대에게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 원하지도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째,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일곱째, 지나치게 다가서지 않는 것입니다.

여덟째,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홉째, 상대방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참된 배려의 기본이 아닐까요? 양 극단의 생각과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왕 남을 위해 베풀고, 이해하며, 배려할 줄 아는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 앞장서 화합으로 이끌지 않는 다면 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부터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면 이 땅이 바로 극락정토가 되지 않을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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