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법안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홍영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간 합의로 타결되었다. 합의문은 위 4인의 서명과 함께 공개되었으며, 이후 각 당의 추인 절차가 주목되었다.

23일 가장 먼저 민주당이 소속의원 85명이 참석한 의총에서 만장일치로 추인되었음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다음 정의당 추인 소식이 전해졌다. 또 곧바로 민주평화당도 일사천리는 아니지만 호남 등 농어촌지역구 축소 최소화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추인했다.

이제 남은 당은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은 복잡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한 이질적 요소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자유한국당과 가까운 바른정당계는 전면반대, 민주당과 가까운 국민의당계는 대부분 찬성… 의총은 질곡이 있었으며 무려 4시간의 토론 끝에 투표를 통한 12:11로 추인이란 결과물을 내놨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오신환’ 변수가 생겼다. 오 의원은 24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개특위 내 패스트트랙 상정 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는 “당의 분열을 막고 저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사개특위 위원으로서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것.

오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이다. 그리고 여당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공수처법은 사개특위 소관으로 오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면 공수처법은 패스트트랙을 탈 수 없다.

이후 오 의원은 당의 사보임 방침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다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저는 단언코 사보임을 거부한다, 김 원내대표는 사보임을 않겠다고 약속했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 의원의 사보임 가능성을 열어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합의안이 의총에서 추인돼 총의를 모았다고 본다, 이에 따르는 게 소속 의원의 도리다, 만나서 최대한 설득하겠다”라고 말했다.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자유한국당 의원 90여명이 국회의장실로 몰려갔다. 난리가 난 것은 바른미래당이 아니라 자유 한국당인 셈이다. 나경원 원내대표 등 무려 90여 명의 의원들은 문 의장에게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이 이뤄질 경우 국회의장이 이를 허가해주면 안 된다”는 의견을 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의장실 입장을 강압적으로 하려 했고 의장실 직원들은 이를 막으려고 난장판을 벌였다. 이에 문 의장은 “전 세계에 이런 국회가 어딨나, 차라리 멱살을 잡아라”라며 “아무리 겁박해도 저는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 맞느냐,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라”라고 가슴을 치며 항의했다.

이런 소동이 한 30분간 벌어졌으며 결국 문희상 국회의장은 탈진 증세를 보여 국회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저혈당 쇼크 상태로 근처 병원에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후 자유한국당 여성의원들은 문 의장이 임이자 의원에게 성추행을 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가지회견에 나섰다. 갑자기 정국이 문 의장과 자유한국당 대결로 바뀌었다.

그에 앞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관영 의원이 민주당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아니다. 날 모욕했다. 가만있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링에서 제1야당 원내대표와 제2야당 원내대표의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또 “회기 중 상임위원 사보임은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사보임이 불가하다”고 반박했으며 당사자인 오신환 의원은 절대로 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국회 의사과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바른미래당 당내 대결이다. 이것이 24일에 벌어진 우리 국회의 모습이다. 2019년 4월 24일 우리 정치권은 피아의 구분이 없는 대결천국이 된 것이다.

왜? 앞서 언급했듯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비례대표 75명 지역구 225명 정수로 한 50%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 지정법안으로 합의한 때문이다. 하지만 여야4당이 이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할 때 자유한국당은 극한반대를 외쳤다.

선거법은 제1야당을 배제한 채 합의한 전례가 없으며, 공수처법 등은 정권 입맛에 맞는 무소불위의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들어 공직사회의 고위공직자들을 권력에 줄세우기 하려는 기도라는 것이었다. 이에 이 합의들이 이뤄지면 20대 국회는 거기서 끝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리고 오늘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이 상황으로만 보면 곧 나라가 거덜이 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어떤 법안이 지정되면 그 법안은 말 그대로 신속처리안건으로 오늘 내일 처리되는가?

거짓이다. 대국민 사기극이다. 왜 사기극인지 지금부터 설명한다.

2012년에 개정된 국회법을 소위 ‘국회선진화법’이라고 한다. 이 법안은 2012년 5월 25일 공포, 30일부터 시행되었다. 골자는 국회의장 법안 직권상정 요건 제한, 국회폭력 금지, 날치기 금지 등이다.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법률 통과 시 정족수의 60% 이상 동의 필요(패스트트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로 패스트트랙, 신속처리지정 안건을 명시한 법은 이렇게 되어 있다.

국회법 제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 ①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체계·자구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을 포함한다)을 제2항에 따른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경우 의원은 재적의원 과반수가 서명한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 동의(이하 이 조에서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라 한다)를 의장에게, 안건의 소관 위원회 소속 위원은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가 서명한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를 소관 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의장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지체 없이 신속처리안건지정동의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왜 이런 내용의 법안을 만들었나? 이는 앞선 국회에서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이 대통령 권력이 통과시키고자 하는 ‘하명법안’을 거의 대부분 야당의 극한 반대가 있더라도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란 방식을 통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치기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종편허가를 골자로 한 미디어관계법, 4대강정비관련법 등이 이렇게 날치기로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국회는 최루탄도 터지고 도끼도 등장했다. 즉 과반 한나라당(현재 자유한국당)의 무수한 불법 날치기에 당한 야당의원들이 그 같은 울분을 터뜨린 것이다.

이에 이런 상황들이 해외토픽에 소개될 정도여서 국회는 스스로 부끄러워 일명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법안의 핵심에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요건을 제한했다. 그리고 대신 위에 인용된 ‘패스트트랙’ 또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삽입했다.

모든 법은 정부 또는 국회의원이 발의하면 담당분야 국회 소관상임위의 법안소위와 소관상임위 전체회의의 심사 및 표결을 거치고 여기서 가결되면 법사위로 넘긴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넘겨진 법안을 최종 심사하는데, 자구수정과 함께 위헌여부 등도 본다. 이후 법사위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뒤 전체의원의 찬반 투표라는 의결과정을 거친다.

이런 법안처리과정 때문에 여야의 입장이 첨예한 법안, 특히 청와대 하명법안은 야당의 반대로 상임위 단계에서 발목이 잡혀 오랫동안 계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법사위로 올라와서도 제대로 일정을 지켜 심사되지 못하고 정치적 줄다리기를 심하게 한다.

이에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도를 필요시마다 악용했다. 본회의에 상정만 되면, 과반 의석으로 단독 가결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보통 '날치기'라 부른다.

그리고 날치기가 시도되면 야당은 극한반대를 외치고, 날치기가 성공하면 야당은 장외투쟁 등 여의도 정치가 아닌 거리정치에 나선다. 이에 이를 막기 위해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제한하는 일명 패스트트랙 또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삽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신속처리안건이지 사실상 1년 처리안건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우선 이 안건들은 해당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를 거쳐 위원의 60%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시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60%(180명)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

또 지정된다고 바로 ‘신속히’ 처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어렵게 지정된 법안이라도 최장 330일에 걸쳐 심사하도록 기간을 주고 있다. 이 330일 심사 기간이 끝날 때까지 개정합의가 안 될 경우 애초 지정된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상임위 심사 단계에서 특정 정당이 일부러 발목을 잡는다고 해도, 이 조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놨기 때문에 최장 330일이 지나면 어떻게든 본회의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반대로 330일이란 기간을 둔 것은 충분한 심의와 토론은 물론 협의와 합의과정을 준 것이다. 즉 지금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이 아니란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이 법을 만들 당시 여당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지금의 자유한국당)이다. 그들은 당시 이명박 정권이 국민적 비판을 받으며 인기가 떨어지자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기 힘들 것이라 내다보고 이 법을 주창했었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국회의장을 빼앗길 것이며, 만약 민주당이 과반 의석이라도 차지하게 되면 야당 발 날치기도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2012년 총선은 한나라당이 변신한 새누리당이 이겼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든 법안에 자신들이 발목을 잡혔다. 즉 박근혜 정권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지난번 유치원3법에 이어 이번에 다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이 패스트트랙을 타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이 난리를 벌이는 것이다. 오신환을 통해서 저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어라서...

실제 그렇다. 사개특위나 정개특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본회의는 통과할 수 없다. 재적의원 60% 찬성은 물리적으로 불가다. 바른미래당 반대표가 11표라는 것이 말한다. 재적 300석 중 자유한국당 114석 바른미래당 11석에 대한애국당 조원진,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면 반대표만 간단하게 127석이므로 찬성 180석에서 무려 7석이 모자란다. 그러므로 한국당은 오신환이 인계철선이다.

선거법이 걸려있는 정개특위에서 선거법을 통과시키면 된다고? 민주당이 자신들의 개혁성을 내보인 회심의 카드로 뽑은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이 다 무산되는데 자신들도 손해를 볼 수 있는 선거법만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는 없다. 따라서 사개특위에서 2개의 법안이 무산되면 정개특위의 선거법도 무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른미래당의 오신환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시키고 찬성파를 다시 보임시켜 처리해도 다시 말하지만 자유한국당에게 시간은 330일이나 있다. 그 330일 안에 임시국회는 무수히 열릴 것이며 법이 정한 정기국회 100일도 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가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열정,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들었다. 대화와 타협이란 책임감과 균형감각이 존재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베버는 1920년 사망했다. 100년 전 정치학자 베버의 주장을 2019년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도 입으로는 타협을 말하고 책임감을 말하고 균형감각을 말한다. 하지만 양보는 늘 상대만 해야 되고 이익은 자신들만 봐야 된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하면 독재다. 그래놓고 자신들이 또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국민과 역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다. 나는 지금 천지가 개벽을 할지도 모르므로 ‘좌파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자유한국당의 행위는 정국주도권을 쥐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란 얘기를 하고 싶다.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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