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날
저의 졸저(拙著)『청한심성(淸寒心醒)』에 운문문언(雲門文偃 : 864~949)선사의『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법문이 나옵니다. 운문은 절강 성 가흥에서 출생했습니다. 속성은 장(張)씨이고 법명이 문언이죠. 17세에 지징(志澄) 율사(律師)에 출가한 뒤 설봉의존을 찾아가 제자가 되고 후에 운문종(雲門宗)을 개창한 대선사입니다.

어느 날 그 운문이 대중들에게「15일 이전의 일은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으나 15일 이후의 일은 한 구절씩 가져와서 일러보라.」하시고 대중들이 말이 없자 스스로 대중들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좋은날이로다.”

사람으로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좋은날이 되어야하고 언제나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생각해보면 사람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산다는 이것만으로도 매일 매일 좋은 날이며 즐겁고 행복한 날이 아닐까요? 살아가는데 여타의 다른 조건이 있어서 좋은 날이거나 행복하거나 즐겁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생을 살면서 하루하루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죄악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모순과 갈등과 불만으로 괴로워하고 육신의 병고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격고 있다하더라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조건 행운이며 큰 복입니다.

어떤 사형수는 형 집행 날짜를 앞두고 감방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며 “제발 저 벌레가 되더라도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하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요. 그러므로 날마다 날마다 늘 좋은 날이고, 늘 행복한 날이며, 훨씬 더 큰 행운의 날임을 깨닫고 뜨거운 진심의 눈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 것입니다. 운문스님의 말씀처럼 15일 이전이나 15일 이후나 어느 날인들 좋은 날이 아니겠습니까?

몇 해 전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 친구가 부인과 사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지요. 그 친구가 부인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실크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건 그들이 뉴욕을 여행하던 중에 유명 매장에서 구입한 스카프였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비싼 스카프여서 애지중지하며 차마 쓰지를 못 한 채 특별한 날만을 기다렸답니다.

친구는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말을 멈추었습니다. 저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지요. 잠시 후 친구가 말하더군요. “절대로 소중한 것을 아끼고 두었다가 특별한날에 쓰려고 하지 마. 네가 살아있는 매일 매일이 특별한 날들이야!” 그날 이후 그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집사람을 끌고 나가 외식을 했었습니다. 오늘도 특별한 날이라 생각하고 일산의 유명 중국요리 집에 가서 요리를 즐겼지요.

생활은 우리의 소중한 경험이지 지나간 날들의 후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도자기 잔들도 장식장 안에서 식탁 위로 올려놓고 써 보시지요. 물론 나중에 아주 특별할 때 쓰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특별한 날은 오지 않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더 이상 우리들의 사전에는 특별한 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기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바로 그때가 좋은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옛 친구들과 만나려할 때 ‘다음 기회에’ 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부부간에 편지 한 통 써서 애틋한 정을 표시하려 하다가도 시간이 없어서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쓰지도 못하고 남겨진 비싼 스카프 꼴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오늘이 바로 특별한 날이다.’라고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매일, 매시간, 매순간들이 모두 그렇게 소중한 것들입니다. 후회 없는 하루가 되기 위해선 그 비싼 스카프라도 쓰면 안 될까요?

우리에겐 매일매일 기쁜 날이라고 하였지요? 그야말로 그날그날이 생일입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고 일일시생일(日日是生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일에도 육신의 생일과 마음의 생일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일이야 한 때, 한 끼나 잘 얻어먹으면 고작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생일은 그 기쁨과 즐거움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생일은 어떤 날일까요?

첫째, 큰 서원(誓願)을 발한 날입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이치, 이 두 가지 진리가 대도(大道)입니다. 이 진리를 깨치면 중생을 면하고 불보살의 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어찌 대도에 서원을 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마음을 다시 추어 잡는 날입니다.

일을 하거나 수도(修道)를 하면서 마음이 물러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새로 다잡아 분발하는 날이 수도인의 생일이 아니고 무엇 인가요!

셋째, 좋은 마음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마음이 요상한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 생각 밝은 마음과 한 생각 좋은 마음을 챙기는 것이 바로 우리 수도인의 마음 생일 인 것입니다.

기쁜 일이 일어나고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 가짐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길일(吉日)은 진정한 지도 인을 만나는 날입니다. 진정한 법에 결정 심을 내는 날이고요.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날입니다.

어느 특별한 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서원을 세우고, 마음을 새로 추어 잡으며, 좋은 마음을 낼 때가 특별한 날입니다. 맨 날 생일 같이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왕처럼 사는 것입니다.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우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이 ‘일일시호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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