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빵굽는 여인 -제 4회 <쌍화차 친구>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안개 낀 시골길에 활짝 핀 코스모스를 잡아 뜯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힘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매던 그날의 밤거리……. 매정스럽게 자신을 대하였던 그때 장면이 필름처럼 스쳤다.

“형님께서 착각하신 것 같아요. 전 그때 하숙집에서 살던 선배님으로, 그리고 쌍화차 친구로만 생각하였거든요!”

“그러면 역시 그 여대생이 맞군요!”

“처음 뵈었을 때 전 너무나도 놀랍고도 반가웠습니다. 낯이 익은 그 쌍화차 친구. 선생님이 K대 출신이라는 것과 학번을 알았을 때 더욱 확신하였지요!”

“그럼 그동안 저를 지켜보았단 말이군요!”

“언젠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런 과거로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자! 너무 늦습니다. 이제 빨리 내려가야겠어요.”

전애희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향하였다.

한낱 지나간 일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고 서러운지, 버림받았을 때의 그 참혹함에 몸을 떨었다. 그때 그가 자신에 대해서 책임질 자신이 없어 그렇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꼭 그렇게 대하여만 했던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밖에 대하지 못한 그의 처사가 미련스럽고 혐오감이 밀려왔다. 마치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는데 귀찮게 들러붙는 거머리처럼, 억지로 떼어버리려는 듯 자신을 대하였다.

그 후 전애희는 착각으로 여기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다짐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남자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 그 어느 남자의 고백이나 사랑의 시선도 모두 무시하여 버렸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외치며 살아왔던 것이다. 사랑하기가 두렵고 모든 것이 허무하였다. 결국 자신은 인생이 허무하여 종교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신의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였다. 여름방학이면 아프리카 난민을 구호하는 봉사에 전념하였고 의료 봉사사업을 하는 의사 허정석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신약개발에 대한 연구논문에 대한 자료검토 과정을 밟기 위해 잠시 독일에 체류중이었다. 그 사이에 자신에게 휘몰아친 첫사랑의 추억은 마치 남편이 없는 공백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그녀를 가두었다. 그녀에겐 엄청난 외도였다.

전애희는 민상수를 대할 때 상현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내쉬는 숨소리조차 그녀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아찔하였다. 눈을 감고 떨쳐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매우 진지하며 표정마저 그 옛날의 상현의 모습을 드리웠다.

어느덧 일동이 저 완만한 도착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두 사람은 그들과 합류하여 민속 음식점에서 저녁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향하였다. 그 후 민상수와는 이제 한결 가까워지는 듯하였으나 전애희는 애써 멀어지려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세월은 흘러갔다.

10월 중순의 완연한 가을 날씨가 대지를 물들이고 있었다. 풍원중학교 학생들은 일 년마다 연례행사로 백일장과 사생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두 임진각으로 향했다.

철도 주변의 학교라 학생들은 신촌 기차역에서 파주행 기차를 타고 출발하는 야외활동에 대해서 매우 들떠 있었다. 학생들이 몇몇 앉아있는 자리에 저쪽에서는 다른 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 민상수가 책을 들여다보고 떠들고 장난하는 학생을 제어하고 있었다. 애희는 그를 본 순간 가슴이 척 가라앉았다. 그만 보면 그 옛날의 민상현이 떠오르고 자신을 그때의 분위기로 몰아갔던 것이다.

창밖에 황금빛으로 벼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저쪽의 야산들이 단풍을 준비하고 있었다. 덜 익은 듯한 노랑과 푸름과 붉음의 묘한 색채로 풍경이 펼쳐졌다. 밖의 풍경은 자신의 마음과 같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산행에서 돌아온 후 민상수와 전애희는 서로에 대하여 냉정하려고 노력하였고 보통 동료교사처럼 지내려고 짐짓 그렇게 보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업무상 자주 그와 마주치게 되었고 그는 그윽한 연정을 품은 듯 자신을 응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그 이후로 출입문에서나 복도에서 왜 그렇게 본의 아니게 마주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서로의 마음이 끌리는 자들은 육체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는 성질이 있는 듯하였다. 피하려고 하여도 자꾸 마주치니…….

민상수는 설렘과 사랑이 가득 찬 모습으로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끼듯 오랜 시선을 머물렀다. 그때마다 전애희는 빠르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마치 자신의 전체를 그에게 훔침을 당한 듯한 어떤 허탈감과 함께 한쪽에서는 그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는 남자의 감각을 빠르게 느끼는 직관력이 있다. 그가 자신을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였다. 그의 로맨스적인 분위기에 자신도 젖어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불같이 일어났다. 자신을 추앙하는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도 여자는 여왕이 되고 싶은 원초적 욕망이 있다는 것인가!

“선생님, 저기 국어선생님이 한참 쳐다보고 있어요!”

창밖을 향하여 상념에 잠겼을 때 영희가 외쳤다.

그러나 전애희는 그대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가 자신을 흡수하듯 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곧 눈을 감고 자는 듯 외면해버렸다. 한 사십 분이 지났을까, 기차는 어느덧 임진각역에 도착하였다. 학생들이 왁자지껄하며 우르르 내리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빨리 오세요!”

반 학생들이 손을 흔들고 앞서 내달으며 야단이었다. 학생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민상수와 나란히 걷게 되는 꼴이 되었다. ‘자유의 다리’를 지나 적당한 장소를 찾아 학생들을 집합시키고 그는 연못가의 정자에 자리 잡았다. 그 주변에는 다른 반 학생들이 미리 와서 주변에 자리를 잡고 그림과 글짓기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기 음악선생님께서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그리고 있었어요.”

“빨간 장미를?”

상수는 자신도 모르게 빨간 장미꽃을 그리고 있는 전애희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자신을 생각하며 꽃을 그리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 죽은 형님, 그 옛날의 사랑을 그리며 그 꽃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어떠랴! 그녀가 형님을 떠올린다면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그는 어느 때부턴가 전애희 씨가 형님을 사랑한 것은 자신을 사랑한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제는 하나의 신념처럼 굳어져 그를 매우 담대하게 하였다.

오후 3시쯤 되어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다시 서울행 열차를 타기 위해서 임진각역 앞에 모였다. 대기실에 전애희는 보이지 않았다. 2학년 5반 학생들은 이미 열차를 타고 떠난 듯하였다. 민상수는 학생들이 다 열차에 오르도록 하고 각자 알아서 귀가하라고 명하고 대기석에 홀로 앉았다. 모두 다 떠나는 듯하였다. 텅 빈 기차역! 그는 담뱃불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또 한 대의 기차가 정지하였다. 그는 차표를 끊고 기차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저쪽 뒤뜰의 의자에 전애희가 혼자 앉아 있었다. 임진강 쪽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는 듯하였다. 그는 속히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향하였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행복합니까!’

상수는 다소곳이 상념에 빠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얼마가 지나자 전애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지나가는 어느 젊은 아가씨에게 임진강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는 듯하였다. 여자는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약간 먼 곳이라고 하였다. 전애희는 머리를 끄덕이고 힘없이 천천히 기차역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잠깐만요. 임진강을 보고 싶어 하는데 그냥 가면 되나요?”

민상수는 가까이 다가가서 전애희에게 임진강을 들렀다가자고 하였다. 마침 빈 택시가 옆에 주차 되어 있었다.

“임진강 쪽으로 갈 수 있나요?”

운전사는 두 남녀를 훑어보고 아마 부부 사이인가 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하였다.

“얼마나 걸리는지요. 여기가 임진각이라 임진강에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네. 파주 쪽이라 좀 떨어져 있지요. 한 이십 분쯤 가면 임진강 근처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주변에 바로 보초가 서 있고 경계하는 분위기라서 잠시 내다볼 수만 있지요!”

“…….”

그들은 말없이 서로가 잠시 바라볼 뿐이다. 택시는 논밭을 낀 시골길 사이로 서서히 향하였다. 시골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자, 여기가 임진강변입니다. 그리고 저쪽의 음식점에 참게요리가 아주 일품이지요. 오신 김에 거기도 들러서 오붓하게 즐기다 가시면 더욱 분위기 만점이죠. 돌아가실 때 차를 잡기 힘드실 텐데 여기 번호로 불러 주시면 제가 다시 모시러 올 수 있습니다!”

운전사는 친절하게 안내하며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참, 좋은 선남선녀군요. 자! 그러면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유쾌하게 웃으며 서서히 사라져갔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시골 논밭 사이였다. 천천히 걸어가니까 저쪽 편에서 임진강이 보였다. 그리 강물이 많지 않았다. 전애희가 임진강을 보고 싶어 한 것은 화가인 친구가 임진강 풍경을 주제로 작품을 그렸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에는 작품 전시회를 열었었다. 전애희는 이곳에 온 김에 그 풍경을 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암울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장구하게 유유히 흐르는 길고도 긴 임진강이었다. 실제의 임진강을 접해 보니 친구의 임진강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논밭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들국화와 함께 섞여 피어 있었다. 갈꽃과 억새풀처럼 보이는 풀들이 가끔씩 보여 가을 분위기를 흠씬 장식하고 있었다.

“친구는 늘 임진강을 그렸어요!”

“아, 그렇습니까. 화가마다 자신의 주제가 있지요!”

“제가 화가라면 르느와르처럼 장미를 든 여인을 그려보고 싶군요. 아마 그 여인의 표정에 초점을 둘 것이며 그 여인을 바라보는 멋진 남자의 행복한 표정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군요!”

“그것이 민상수 선생님의 주제입니까!”

전애희는 약간 실망한 듯이 그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화가는 그림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민상수는 전애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난 장미를 든 여인을 기필코 그리고 싶군요!”

그는 의미 있는 강한 눈빛으로 애희를 응시하였다.

“네?”

“형님이 못 다한 사랑을 전 이루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장미꽃은 언제나 활짝 피어 있으니까요!”

“호호호…… 호호…… 하, 하하하핫핫…….”

전애희는 간드러지게 웃음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보이네요. 무모할 정도로!”

“그래요, 전 돈키호테입니다! 이젠 형님과 저를 연관시키지 마세요! …… 아까 도화지 위에 장미꽃을 왜 그리셨죠? 형님을 생각하시고 형님께 바치는 그림이었지요? …… 당신이 형님을 사랑한 그 사랑은 바로 저에 대한 사랑이니까요!”

“뭐라고요?”

전애희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의 마음이 너무도 단호하고 결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 두려움과 함께 위험한 증후를 느꼈다. 상수는 한 발짝 다가와서 두 손으로 전애희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당겨 안으려 하였다. 순간 애희는 아찔하며 혼돈스러웠다. 그를 싫어하지도 않았고, 그 옛 사랑을 찾은 듯 하였다. 상수가 자신을 껴안으려 하자 가슴에 마치 빨간 신호등처럼 깜박이는 신호가 느껴진다. 순간 전애희는 그를 가슴에서 밀쳐내며 몸을 내뺐다. 그리고 냉냉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재빠르게 힘껏 뺨을 후려쳤다.

‘찰싹!’

“앗!”

다시 한 번 그녀는 물밀듯 터지는 감정을 이성의 열쇠로 조이기 시작하였다. 마치 자물쇠를 점점 돌려 조이듯이…….

“똑똑히 들어요. 예전의 민상현은 단지 쌍화차 친구였어요. 난 그를 좋아한 적이 없고 사랑한 적도 없어요. 남자가 왜 이렇게 주책이지요? 유치하게!”

냉정하고도 참혹할 정도로 홱 돌아섰다.

그 옛날 처절했던 심정을 이제 그에게 보복한단 말인가! 가슴이 아프고 미어지는 듯하였다. 상수가 지금 어떠한 심정일까! 그녀는 잠깐 그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그러나 다시 이성의 열쇠로 잠갔다. 순간, ‘애희 씨, 좋아한 적 없어요!’ 하며 매정하였던 상현의 모습이 스쳤다.

‘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전애희는 숙연해지며 빠른 걸음으로 도로변으로 헤쳐 나왔다.

민상수는 뺨을 움켜쥐고 임진강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의 쓰라린 가슴이 전해져 왔다. 그 옛날의 자신처럼.

도로변에 다가서자 마침 택시 한 대가 그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가왔다.

“일산으로 가주세요!”

택시를 잡아타자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어머나! 지금 돌아오고 있다고요!”

“별일 없어? 보고 싶었어.”

전애희는 저쪽 편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였다. 순간 전애희는 자신이 한동안 신기루 속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지난봄에 마신 쌍화차는 너무도 진했어!’

한동안 지독하게 앓던 ‘쌍화차’ 몸살에서 이제야 겨우 깨어나고 있다고,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전애희는 되뇌었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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