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순의 한 평 극장 화랑방에서 1인극 <아부지의 불매기>를 관람했다.

박정순(1953~)은 충남 도고출신으로 서울 우신초등학교, 영등포 중학교, 서울공업고등학교, 국립 서울 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한 중견 연기자로 200여 편의 연극, 영화, 방송드라마에 출연했다. 신춘 단막극제 최우수 연기상, 인천연극제 연출상 및 대상을 수상했다. 극단 김상열 연극사랑 단원이고, 박정순 한 평 극장 화랑방 대표다.

1인극 <아부지의 불매기>는 중견배우 박정순이 집필, 연출, 출연까지 한 모노드라마다. 원래 옹기를 만들던 할아버지와 그 대를 이어 독 짓기를 이어온 아버지, 그러나 가업을 잇지 않고, 그림을 전공했으나, 배우가 된 아들이 선대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서 이번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천주교가 조선에 전파될 무렵 경기도 이천에 집단 거주하던 도공들이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듯이, 옹기장이인 할아버지도 천주교를 믿었고, 천주교 박해와 수난을 극복한 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로 병합되자,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위해 가업을 버리고, 만주로 떠난다. 떠나면서 할아버지는 믿을 신(信)자를 붓으로 써 액자에 넣어 가훈처럼 벽에 걸어 놓는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에 하모니카를 넣어두고 떠나간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 짓기를 시작한다. 지게에 옹기를 가득 싣고, 할아버지가 건넌 압록강을 한 겨울에 건너다가 그만 얼음이 갈라지면서 물에 빠진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아버지는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아니 되어 해방이 되고,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가 무섭게,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의 관할에 들어가면서 분단이 된다.

각자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되고, 남과 북은 체제가 다른 국가가 된다. 그러자 적화통일명목으로 북이 기습남침을 하게 되고, 유엔이 참전하면서 압록강까지 진격을 해, 통일을 목전에 두는듯했으나, 중공이 대군을 보내, 인해전술로 유엔군을 밀어붙여 임진강까지 후퇴시킨다. 아버지는 전투에서 부상당해 상이용사가 된다. 남북 양측의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인 한지순과 아들 오동통과 딸 오동동과 만나지 못한 채 헤어져, 이산가족의 한사람이 된다. 남북이산가족상봉자리에서 아버지는 가슴에, 헤어진 부인과 자녀의 이름을 적은 팻말을 걸고 거리를 헤매지만, 아무런 소식도 얻지를 못한다.

아버지는 황토 흙을 맨발로 짓이겨 점토 흙으로 만들고, 점토로 크고 작은 독과 항아리를 빚어 가마에 넣고, 바로 불앞에는 불 막이 항아리를 가로막아 직접 불이 닿지 못하게 하고, 그 열기로 옹기를 구워내면서, 비록 옹기에 금이 갔거나, 일그러졌거나, 형태가 볼 상 사나워도 아버지는 옹기를 버리지는 법이 없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출산하는 마음으로 옹기를 하나하나 꺼내 정성스레 맷물을 바른다. 그러면서 도자기 굽는 사람들이, 도기가 금이 가거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자마자 깨뜨려 폐기처분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끼며, 그런 행위는 자기 자식이 불구자로 태어나거나, 기이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어미가 자식을 죽이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며, 도공들의 잔인하고 인간적이지 못한 행태에 분노를 터뜨린다.

대단원에서 가족의 재회가 불가능한 것으로 체념한 아버지가, 세발자전거에 어머니와 자식들의 유해를 담은 유골함인양, 작은 항아리와 인형을 싣고 요령을 흔들며 영구타령과 함께 퇴장을 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나며 작은 항아리에 넣어두고 간 하모니카를 아버지가 꺼내 불며 흘러나오는 “학도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떠나며, 할머니와 헤어지는 장면에 나오는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은 관객의 가슴을 적시며 깊이 스며드는 음악으로, 이 연극과 절묘하게 어울려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박정순의 한 평 극장 화랑 방은 정면 오른쪽에 사랑방으로 설정된 한지 바른 여닫이문, 그 앞으로 쪽마루가 놓여있다. 왼쪽은 방의 벽이고, 벽 상단에 나무판에 사랑방이라 쓴 벽걸이와 사진액자가 걸려있고, 하단에는 박정순이 그린 추상화가 있다. 오른쪽 벽에는 아버지의 군 제대증이 걸려있고, 작은 캔버스에 그린 추상화가 여러 개 달려있다. 정면 벽 아래에는 낮은 선반이 있어 옹기를 비롯해 인형들이 놓인다.

정변 벽 왼쪽 모서리에는 솟대목이 서있고, 극의 진행에 따라, 진달래꽃과 여러 가지 색의 끈을 걸어놓기도 한다. 방 오른편에는 장독대가 있어 옹기로 만든 독을 나란히 놓았고, 장독대의 큰독 위에는 꽃을 꽂을 수 있는 조그만 항아리를 얹어놓아, 극의 도입에 아버지가 꺾어 들고 들어온 진달래 꽃망울을 항아리에 꽂아놓은 후, 극의 진행과 함께 그 꽃망울이 만개를 하고, 극의 후반부에는 단풍잎으로 바꿔놓는다.

아버지가 들고 들어온 유골함과 세발자전거에 싣고 들어온 제사용 작은 옹기항아리는 정면 벽 아래 선반에 얹어두었다가, 극의 진행에 따라 항아리를 마당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항아리 속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부는가 하면, 기다란 낚시로 자녀를 의미하는 인형을 낚아 올리고, 부인을 의미하는 나비를 낚아 올리는가 하면, 붉은 천으로 항아리를 장식하기도 하고 색동저고리를 입히기도 한다.

커다란 독 입구에 감아놓은, 고추와 숯을 꿰어달은 긴 새끼줄로 만든 금줄을, 사랑방 문과 벽 그리고 솟대까지 연결해 걸어 놓으면 방 전체가 한 폭의 아름다운 조형예술작품이 된다. 아버지가 제사를 마친 후 세발자전거에 다시 유골함과 항아리를 싣고 종을 흔들며 영구타령을 하며 떠나가는 장면에서 모노드라마는 끝이 난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상임간사 김지선)과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인터파크가 후원한 박정순 작, 연출, 출연의 모노드라마 <아부지의 불매기>를 비록 한 평짜리 극장공연이지만 어느 대극장 공연 못지않은 감동과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걸작 1인극으로 탄생시켰다./박정기 문화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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