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하남지역위원장

우리말에는 한 두 음절로 된 예쁜 단어가 참 많다. 하늘, 별, 밤, 바람, 바다, 너, 나, 우리 등 한두 글자 단어들이 머릿속을 금세 스쳐지나간다. 세 음절 단어는 조약돌, 굴렁쇠, 손바닥 등 발음에 리듬이 실린 단어들도 있다. 높다, 밝다, 쓸쓸하다 등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꾸밈말이 많아 표현이 다양하다. 이러한 꾸밈말과 하늘과 별과 바람 등의 단어를 소재로 윤동주는 시를 썼다. 시를 쓰면서 한없이 부끄러워하며 청동거울에 남아 있는 몰골에 대한 참회록을 쓰고 또 썼다.

부끄러움을 미학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윤동주는 본디 시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밤에 주로 시를 쓰고 산책을 즐겼다. 산책을 같이 즐겼던 다섯 살 아래 가장 친한 동생에게 ‘형’이라는 존칭을 깍듯이 썼고 예의를 지켰다. 사후 출간이 된 시집의 친필원고의 표지에도 동생을 두고 형이라 지칭했다. 읽던 책에는 연필로 소감을 빼곡 적고 이따금 중화식당에서 술을 기울일 때 남의 뒷담을 하는 법이 없었다. 

윤동주는 육첩방의 남의 나라에서 쉽게 쓰인 자신의 ‘시 쓰기’마저 부끄러워했다. 이를 두고 나라 뺐긴 지식인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세간의 해석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무력감과 패배주의가 짙은 시로 읽는 것 같아 저어한 마음이 든다. 

중등학교 시절 일제강점기를 처음 배울 때는 당혹스러웠다. 시인은 총칼보다 강한 펜을 손에 쥐었지만 칼 앞에 더 없이 약한 존재였다. 독립투사는 소수였고 일제의 총칼 앞에 무력했다. 급기야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친일과 반일로 모든 시와 시인을 분류했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중학교 수준에 알던 시인이 좀체 몇 안 됐고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을 빼고 나니 더 이상 손에 셀 저항시인이 없었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기록이 적다는 이유다. 돌이켜보니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한용운과 이육사를 저항시인이라고 또바기 적고 윤동주는 짐짓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저항의 의미를 총과 칼로 저항한 독립투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절필로 항거하고 시로써 우회적으로 담은 저항도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이란 인식이 생겨 큰 논쟁은 없다. 

2011년을 기점으로 윤동주는 수능에서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시인이 됐고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동주>는 블록버스터 대작이 아님에도 110만이 넘는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시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이만큼의 성공을 거둔 다른 사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를 보고 “다 보고나니 눈과 귀를 맑은 물에 헹군 듯하다”라고 한 줄 평을 썼다. 이처럼 윤동주는 가장 대중적인 시인이 됐다. 

정치 현장에서는 막말이 수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제 누가 더 센말을 할 차례냐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한 비판조차 비판을 가장한 비난이 난무한다. 정치인 스스로 정치 언어의 신뢰를 깨는 일이다. 일견 싸우는 정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쁜 국민을 대의해 싸운다면 그것도 마땅히 정치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막말로 치달은 정쟁은 국민을 위한 국회의 시간을 소비해버려 결국 정치 자체를 국민이 혐오하게 만든다. 

이러한 막말 현상에 대해 또 하나의 비판을 지면에 싣는 일도 유의미한 일이지만 이제 비판을 넘어 정치 언어의 활로를 다시금 모색해야 할 때이다. 비판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치열한 현실인식을 보여줬던 윤동주의 삶을 짧게나마 돌아보는 일로 막말을 일삼는 정치 언어의 비판을 갈음한다. 

진심을 다해 치열하게 고민한 윤동주의 시와 같은 시인의 언어만이 사람들에게 오래 남는다. 사람의 마음에 남는 말은 막말, 센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그 온도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상대를 깎아내리고 조롱하려는 의도가 담긴 말, 사실을 왜곡하거나 보다 크게 과장하는 말, 근거가 없거나 맞지 않는 근거로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말, 한순간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말, 역사와 사회인식이 부족한 언행을 사람들은 금세 안다. 

호국보훈의 달인 이번 6월을 맞아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중에 가장 먼저 윤동주를 떠올렸다. 시대를 부끄러워하며 이를 시에 담으려했던 그의 노력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죽창 외워야 했던 시대에는 과도한 국가주의의 연장 같아 잠깐의 묵념이 거북했다. 그러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크게 개선되고 나서는 묵념을 깊이 생각해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어느덧 행사를 위한 습관처럼 여겨졌다. 우리의 빈곤한 정치 언어는 윤동주와 같은 순국선열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기도 하다. 

서울대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는 <희망을 묻다>라는 글에서 “어떤 폭력적인 경험은 때로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침탈과 이후 분단이라는 원초적 폭력의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70여년의 세월을 다 보냈다. 이번 정부의 과업도 남북평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 도약이다. 즉 우리는 아직도 윤동주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에서 출발한 과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시인의 언어를 깊이 탐색하고 본받는 데에 소홀했다. 

정치의 언어는 발화되는 시점에 세상을 이해하는 현실인식에 근거해 시민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이는 시인의 언어와 마찬가지이다. 이제 막말을 거두고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등 순국선열에 대한 긴 묵념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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