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여인 - 4회


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4회

어느덧 세리의 점심시간이 되었다. 자신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세리였다. 이 세리와는 남편과 주말부부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자신이 홍신애와 함께 한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쯤이었다.

남편은 대덕단지의 연구소장이었고, 본인도 대전시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항상 서울을 동경하였다. 교육과 문화수준이 최고인 서울, 그곳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영광을 꿈꾸었다. 화려하고도 유행의 첨단을 걷는 서울이 저 멀리서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노인숙은 자신과 같이 대단한 여자가 이 촌구석의 지방에서 생활하는 것이 정말 지겹고 답답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씩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보를 원하는 사람과 자리를 바꿔달라는 신청을 끈질기게 하였다. 이러한 전보이동의 꾸준한 도전 끝에 그녀는 결국 서울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노인숙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여 아들을 그 유명한 강남 8학군에 속하게 했다. 그리고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 후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야말로 남편과 자식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그녀의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섬세함을 받들어 모셔 줄 사랑의 임에 대한 아련한 기다림을 자극하여 그녀를 설레게 하였다.

금요일 저녁에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다시 대전으로 떠나는 남편과의 만남은 이제는 형식적인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 이러한 삶의 굴레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노인숙은 평일에 애인을 두고 데이트를 즐겼고, 그녀의 남편은 주말에 와이셔츠에 여자의 체취와 립스틱 흔적을 묻히고 나타났다. 그녀는 질투의 감정이나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남편이 손발이 긴 자신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하였다. 남편은 아담하고 복스러운 여인을 품에 안고 지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유부남과 열렬한 사랑의 황홀함에 젖어 있을 때처럼 남편도 그럴 것이다. 주말에 남편이 서울 집에 올 때면 그녀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언제나 빵을 구웠다. 그는 얼큰한 매운탕이나 북엇국의 따끈한 국물을 그리며 서울 집에 들어섰다. 그러나 달콤한 향료와 빵 굽는 냄새가 온통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그 빵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갑자기 구토가 일어나고 현기증이 났다. 곧 화장실로 들어가 그는 마음껏 토해냈다. 멀건 액체를 화장실에 흘러 보내고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세면대 위에는 두 개의 칫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칫솔 옆에 있던 칫솔은 자신의 칫솔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정부의 칫솔을 자신의 세면대 위에 놓아두듯 아내에게도 내방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르는 척하였다. 그는 새 칫솔을 꺼내 양치질을 하고 거실에 나왔다. 싱크대 주변에 개미가 스멀거렸다. 특히 제빵 기구 주변에는 더욱 개미 떼가 들끓었다.

남편의 주말 방문이 점점 뜸해졌다. 그러더니 그는 아예 대전에 머물렀다.

‘어디에 정신이 팔렸을까.’

그는 묘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곧바로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본 동창을 찾아갔다. 노년의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제 본격적인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착수해야 했다. 황 박사의 아이디어는 굉장했다. 그의 연구팀에서 그 획기적인 생체과학을 연구하여 세상에 발표해야만 했다. 이미 후원금을 받고 이제 연구팀 조직과 발표에 도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불타는 야망보다 실적을 거두어야 하는 압박감에 언제나 짓눌렀다. 그러나 역시 건강이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여편네에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만족스러운 식사 대접을 받아본 게 언제던가!

지친 마음에 들이킨 알코올은 어느덧 간에 신호가 간 듯 소변에 거품이 생겼다.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이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전립선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 황 박사의 줄기세포연구에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가 대전에 돌아가면 노인숙의 집은 다른 유부남의 거처가 되었다. 두 사람은 자유롭게 밀회를 즐겼다. 세리는 몇 번이나 정부를 물어뜯을 듯이 포악하게 굴었다. 그러나 남자의 완력이 두려웠던지 점차 그 포악함이 사라졌다. 곧 노인숙이 몇 번 쓰다듬어 주자 조용해졌다. 세리는 사람처럼 원한을 품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은밀한 정사의 광경을 포착하여 인터넷에 공개하지도 않는다. 절대로 몰래카메라 같은 것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숙은 세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오십대 초반의 여인이지만 아직도 몸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러한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정부에게 그녀는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의 나긋나긋한 애무는 그녀를 무아지경에 빠뜨렸다. 침대 밑의 세리는 어둠 속에서 원초적 행위에 얽힌 남녀를 충혈 된 눈으로 바라보면서 킁킁거렸고, 혓바닥으로 스멀거리는 개미를 쓸어 핥았다.

노인숙과 정부와의 밀회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정부의 시선이 서서히 홍신애에게 향하였다. 그는 잘생긴 체육교사였다. 홍신애를 지켜보던 그의 연정이 깊어갔다. 용모에 자신감이 있던 그는 용모를 담보로 언제나 거침없이 모든 여자를 유혹하였다. 비록 그도 오십대로 접어 든 나이였지만, 여심을 사로잡는 매력은 아직 넘쳤다.

이제 그 미남은 유혹의 시선을 홍신애에게 던졌다. 하지만 그의 유혹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의 육체에 머물지 않았다. 바로 저편의 깊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유혹을 의식하지 않는, 맑고 고요한 호수 같은 눈동자였다. 그것은 성화 속의 마리아의 성스러운 표정을 연상케 하는, 세속을 초월한 신비한 아름다움이었다.

남자는 그녀의 깊은 눈동자에 자신의 야성적 정열이 흡수되지 못하자 깊은 한숨으로 신음하였다. 홍신애의 신비한 위엄이 남자를 떨게 하였다. 직관력이 뛰어난 노인숙은 그것을 알아챘다. 정부의 유혹에 초연한 그녀, 자신을 더욱 음녀로 몰아치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자신은 음욕에 헐떡이고 있는데 그녀는 사랑의 풍요를 지니며 잠잠하였다.

‘나의 사랑을 가로채 간 여자…….’

노인숙은 홍신애에 대한 적대감으로 몸을 떨었다.

 

노인숙은 텔레비전 화면 속 홍신애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가 입양한 아이를 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고 아나운서 이금희 씨의 포근한 내레이션은 홍신애가 거룩한 여인으로 돋보이는데 일조했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마르고 약하게 보이는 아가씨가 말없이 인사하였다.

“가정부를 구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왠지 얼굴이 해쓱하고 길쭉하여 허약해 보였다. 숙희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노인숙은 그 아가씨에게 볕이 잘 들지 않는, 북향의 조그만 방을 거처로 내주었다. 그리고 세리에 대한 주의사항과 식사요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숙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가 설명하는 동안 숙희의 시선은 노인숙의 긴 다리를 따라가다가 발가락에 머물렀다. 숙희는 투시하듯 한참동안 그곳을 응시하였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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