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심종대 기자]지난 2001년 시작된 삼성미술관의 격년제 신진작가 전시 <아트스트럼>이 올해로 6년째를 맞아 오는 8월 7일까지 전시된다.

1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아트스펙트럼>은 2001년과 2003년의 전시는 호암갤러리에서 열렸고, 이후 3회부터는 리움에서 관객을 맞았다. 특히 2014년에는 보다 넓은 시각을 반영키 위해 리움의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외부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에게 추천을 의뢰해 성장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상제도를 신설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편향되지 않은 시각과 긴 안목으로 한국미술, 나아가 세계미술의 주역이 될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아트스펙트럼의 기획 의도이다.

이번 <아트스펙트럼 2016>에 참여한 작가들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을 사용해 개인적인 서사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 고미술을 출발점으로 삼거나 각종 통계와 그래픽을 접목하고 시각이 아닌 청각에 집중하기도 하는 이들의 작업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점차 외연이 넓어지는 미술의 흐름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전시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관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전시에 풍부함을 더해준다. 

소리를 매체로 한 작업을 선보여온 김영은 이번 전시에서 물질성이 없는 소리의 특성에 주목하고 사물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단위를 소리에 적용해 소리의 실체화를 실체화하려 한다. 작가는 사물의 크기를 측정할 때 사용할 때 사용하는 기준인 길이, 높이, 폭을 각각 음원의 재생시간, 음정, 주파수, 대역으로 치환한 뒤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의 대중가요 음원이 한 곡당 1.29달러인 것에 착안해 29센트어치 재생시간, 음정, 주파수가 빠진 세 가지 버전의 1달러어치 노래를 만들었다.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기 때문에 존재를 확인키 어려운 소리를 물질화하려는 작가의 실험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박경근은 청계천 뒷골목의 소규모 공장에서부터 대형 제철소에 이르기까지 철강산업 현장을 촬영한 영상 작품에서 철이라는물질을 매개로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그리고 산업화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가치중립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 <군대:60만의 초상>에서 한국 남성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군복무를 소재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 안에서 발견되는 여러 퍼포먼스적 요소를, 신체성의 강조, 성적 긴장감 등을 관찰자적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이러한 군대 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주제에 대한 수행적 리서치를 바탕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이나 각종 아카이브 영상, 영화의 장면들을 선별해 재배열하는 작업을 해온 박민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류의 우주탐사를 화두로 한 영상과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경쟁적으로 달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올렸던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과 현재 국가적 프로젝트는 물론 스페이스 X, 버진 캘릭터 등 유력 민간 기업들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화성 중심의 우주산업을 병치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고 인류가 가진 우주에 대한 판타지를 파고든다.

특히 박 작가의 작업은 왜 우리가 계속해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서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외에 현실적으로 논의돼야 할 문제들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다.

예술과 과학, 과학과 주술, 물질과 정신의 틈을 메우는 작업을 통해 주로 이분법적 사고로 분열된 사회를 메마른 대지로 상정하고 이를 해소해 줄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프로젝트로, 백정기 작가는 이번 출품작에서도 기우제 작업을 발전시켰다.

작가는 악해독단이라는 사라진 기우제단의 역사적 맥락을 담아내기 위해 용산 미군기지 내 바비큐 그릴 받침으로 쓰이고 있던 기우제단을 모티브로, 전통의 단절과 역사의 상처를 상징하는 거대한 벽돌 기념비를 만들고 벽돌 사이사이를 바셀린으로 메워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 옆으로는 그만의 주술적이면서 과학적인 토룡기우제를 재현했다. 특히 기획전시장 입구에 당산나무처럼 설치된 느티나무는 안테나의 역할을 하면서 <악해독단>의 이야기를 전하는 라디오 방송의 전파를 송출한다.

안동일은 작고한 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보낸 60-70년대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위인 동상들에 주목한다. 동창의 발치에는 건립회에서 그 인물의 생애에서 기념할만하다고 판단한 일화와 업적을 모아 구성한 동상문이 설치됐다. 작가는 이를 사진으로 짝어 배열해 그 당시 한국이 추구했던 민족 이데올로기의 실태를 대면하게 한다.

이와 함께 전시된 <우리의 팔도강산>은 같은 시기에 발생된 기념우표에 등장하는 도상들을 취사선택해 300호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재구성한 회화로, 그 시대가 기리고자 했던 것들을 한 화면에 모아서 그린 시대의 초상으로 볼 수 있다. 

이정민, 진시우, 김화용으로 이뤄진 옥인 콜렉티브는 사회적 이슈를, 라디오 방송, 음악회 등 일시적이고 비정형적인 형식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이번 전시의 출품작 <아트 스펙트랄>로 이어진다.

‘사라지는 예술’ 또는 ‘유령같은 예술’로 해석되는 작품은 여러 작가 지원 프로그램임에도 예술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작품활동을 하는 틈틈이 유령처럼 홀연히 사라져다른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작가들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옥인 콜렉티브가 준비한 마루에 앉아 작가들이 기획한 ‘사라짐’에 대한 글이 담긴 책자를 읽으면서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예술가의 존재와 이 사회의 모든 소외된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옵티컬 레이스는 그래픽 디자이너 김형재와 정보 시각화 연구자 박재현으로 이뤄진 작가그룹으로, 인구와 주거 등 도시 인프라에 관련된 통계 수치를 인포그래픽으로 가공해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전작인 <확률가족>에서 베이비붐 세대 부모와 에코세대 자녀의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미래 가계 수지 분포를 그렸던 작가들은 이번 출품작 <가족계획>에서 에코세대 미혼남녀가 결혼해 중산층 가족을 이룰 수 있는 남녀 소득의 조화를  보여준다. 또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제성장이 둔화된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막막한 현실 뿐이다.

이호인은 여행을 통해 경험한 풍광이나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장면, 또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이국적인 경치처럼 다양한 풍경을 그린다. 캔버스에 유화를 기본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적 실험이 계속되는 동시대 미술 경향에 비춰볼 때 보수적이고 전통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최근 몇 년간 미술계에서 나타났던 회화의 재조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월드타워나 국회의사당 같은 도심의 랜드마크를 그린 작품은 저마다에 얽힌 역사와 사연으로 인해 결코 평범할 수 없는 풍경이 우리 곁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의 이상함에 초점을 맞춘다.

제인 진 카이젠은 식민주의나 냉전과 같은 역사의 부침과 그 세월을 살아내면서 경험한 개인의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탐구한다. 제주에서 출생해 덴마크로 입양됐던 개인적 배경에서 비롯된 해외입양에 대한 관심은 전쟁과 식민주의처럼 억눌린 기억과 트라우마를 낳은 역사적 순간들로 확대됐다. 제주 4.0사건을 다룬 영상은 수십 년간 입밖에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삭여야 했던 트라우마가 표출되는 다양한 방식을 취했다. 

작가는 제주의 자연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무속인의 읊조림에서, 4.3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활동가들의 발걸음에서 억눌린 기억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이를 담담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최혜리는 회화의 전통을 되짚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명하고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해왔다. 사군자나 화조영모도 같은 전통 회화의 어법에 판타지적 요소를 더한 작가의 그림은 어디서 본듯하지만 동시에 생경한 장면을 연출한다. 전통 회화를 재해석한 그림들은 특정 전통회화를 작가가 모사한 작품과 실제 고미술품 옆에 나란히 놓여 전통회화를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켰다. 함께 전시된 영상은 그림형제의 설화에서 따온 서사를 차용하고 분절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는 전통 회화의 요소를 빌려와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하고 비트는 작가의 회화 작품과 결을 같이 하고 있다.

이 10팀의 작가들이 미술의 현재를 온전히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각자 한국 미술의 단면을 구성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는 다양성과 진정성은 한국 미술의 앞날을 기대케 한다.

심종대 기자, simjd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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