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7회

날이 밝아왔다. 새벽공기가 매우 상쾌하였다. 그녀는 신선한 아침을 맞으며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벌써부터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행은 산행을 하는 사람과 계곡을 향하는 두 부류로 나뉜 듯하였다.

그녀는 계곡 쪽으로 향하였다. 이른 아침이라서 풀잎에는 아직 이슬이 맺혀 있었다.

8월 초의 무더운 날씨였다. 불볕의 더위는 한창 기승을 부렸다. 그녀는 곧 계곡의 물에 손발을 담갔다. 그리고 전신을 흐르는 계곡물에 적셨다. 너무나 시원하여 기분이 상쾌하였다. 잠시 후에 계곡에서 나와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의 평평한 곳에 누웠다. 바위가 달구어져서 온몸이 다시 후끈거렸다. 그녀는 다시 계곡물에 뛰어 들어 수영을 하였다. 시원한 물이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차가움에 피부는 소름이 끼치고 움츠러들었다.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 위의 평평한 소나무 그늘에 누웠다. 그늘의 안쪽에 얼굴을 향하게 하고 다리를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였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바윗덩어리는 그녀의 등을 달구었다. 누워있는 그녀의 시야는 하늘과 숲의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였다. 조금 떨어진 계곡의 저쪽에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가족끼리 음식을 나누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피곤하여 잠시 눈을 감은 채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눈에 검은 그림자가 어리는 듯하여 눈을 떴다. 어제 민박에서 만난 강석호라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손에 큼지막한 수박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물에 흠뻑 젖은 그녀의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여체의 곡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브라의 상태여서 유두가 돌출되어 도드라져 보였다. 남자의 눈이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먼저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지나다가 여자 혼자라 위험해 보여서…….”

여자는 얼굴을 붉혔다.

“언제 가시죠?”

쑥스러움을 무마하기 위한 순간적 물음이었다.

“한 열흘은 더 있을 것 같은데, 글쎄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마음을 잡을 때까지 있을 겁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져온 수박을 계곡의 흐르는 물에 담구고 다시 여자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는 먼 시선을 향하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리고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혼남이나 마찬가지지요. 지금 부인과는 별거중이니까.”

냉소적으로 그는 자신을 비아냥거리듯 쓴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마흔 다섯의 나이였다. 여자가 스물다섯인데 비하면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많았다. 여자는 그 유부남에 대해서 설레기 시작하였다. 뭔가 모를 사랑의 예감으로 다가왔다.

그는 벤처기업을 일으켜 한창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의학적으로도 불임의 원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지치고 지쳐서 이제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부부는 서로의 방탕함과 순결하지 않음에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서로가 젊었을 때 이성관계가 복잡하고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 부부는 불타는 증오심으로 급기야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시험관 아기니 그런 식의 노력도 없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벽이 두꺼워지고 말았다. 그들 부부는 선남선녀였다. 외모, 집안, 학벌 등 어느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는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이럴 때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해결하는 방법보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환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급기야는 극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아저씨는 매력적이고 정이 많으신데요!”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런데 아가씬 결혼은 언제 하죠?”

남자는 여자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전 빨리 교사자격증을 따고 결혼은 그 후에 생각할 겁니다.”

“꿈을 향하여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이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입니다. 이미 꿈을 가지고 점령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여자는 남자의 말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에 용기와 희망이 샘솟듯 하였다.

“전 이번엔 꼭 합격을 해야 합니다!”

그녀는 힘을 주어 결연히 말하였다.

그들은 같은 집에 민박하는 인연으로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립교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거부의 뜻을 확실히 했다.

“돈을 주거나 소개로 교사가 되는 건 비겁해 보여요. 전 당당히 합격하고야 말겠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대견스럽고 귀여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중에 서울에서 한번 뵙지요.”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여자에게도 연락처를 물었다.

남자가 소금강에서 떠난 일주일 후에 여자도 서울에 올라왔다. 곧 있을 고시에 박차를 가하였고, 남자의 말에 힘을 얻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기필코 합격하여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그 남자 앞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해도 합격자의 명단에는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꼭 합격하리라고 자부하였던 그녀는 심한 절망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하였다. 자기비하와 소외감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방종의 마음이 그녀를 지배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탕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거칠고 대담하게 술을 마음껏 마시고 디스코텍에서 몸을 흔들어댔다. 새벽까지 만취되어 비틀거리며 자취방에 도착하였다. 한숨을 푹 자고 잠깐 눈을 떴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약간 정신이 든 상태에서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시죠?”

“저, 소금강의 강석호입니다.”

그 남자! 소금강의 사나이! 그 남자였다. 처음으로 포근하게 안기고 싶고 키스를 하고 싶었던 그 남자였다.

다음날 그들은 미사리에서 만났다. 생음악이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미사리의 밤 풍경은 무척 이국적이고 낭만적이었다.

남자는 그때 소금강에서 만난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다. 정장을 입고 있던 그는 중후한 남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밤색 양복에 연두색 계통의 넥타이를 한 모습은 구릿빛 피부에 썩 잘 어울렸다. 그는 미남이었고 지성미가 흘렀다.

남자도 여자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소금강에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흩어진 채 틀어 올린 머리였는데 지금의 모습은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어깨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거기에 빨간색 앙고라 니트를 치마까지 세트로 입었고 겉에는 검정색 파카를 살짝 걸친 차림이었다. 신축성이 있고 부드러운 보온성을 지닌 빨간색 니트 정장은 고급스럽게 그녀의 마른 체격을 감싸고 있었다. 소금강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과는 너무도 달랐다. 남자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남자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계속 그녀를 은근하게 바라보았다.


“실내라서 좀 더워요.”

여자는 남자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고 있음을 이용하여 유혹하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상체의 파카를 벗어 의자 뒤에 걸쳤다. 그야말로 빨간색의 니트 정장으로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그녀의 젖가슴의 볼륨이 니트의 선을 따라 드러났다.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 번 와인을 목에 적셨다. 남자의 시선은 여자의 가슴에 머물렀다.

여자는 자신이 지금 파바로티의 애인이 된 느낌에 빠져들었다. 지긋한 나이의 연인과 어울리는 자신의 기질에 눈을 떴다. 어리지만 수준이 맞고 아내가 될 수 있는, 조숙한 여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자라면서도 왠지 같은 또래의 남자들은 어린아이 같고 유치하게만 여겨졌다. 오빠나 아버지 같은 남자는 생에 대한 깊은 표정이 어려 있고 그 품이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취향 때문에 그녀에겐 남자 친구나 애인이 없었다. 오히려 이성에 대해서 무감각할 정도였다. 그녀에게 이제야말로 매력적인 파바로티 같은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이혼하였는지 궁금하였다.

카페 안에는 차츰 손님이 붐비기 시작하였다. 무대 위의 가수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날 밤 이슬에 맺힌 눈동자, 그 눈동자…….”

남자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한숨을 쉬며 계속 그는 술을 마셨다.

“드디어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울음이 섞인 그의 목소리였다.

“보고 싶었소, 그대를!”

남자는 소금강에서 그녀를 만난 순간, 한시도 그녀를 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깜찍한 당신을 그리워하다가 병이 날 것 같았소!”

그날 밤 여자는 남자와 뜨거운 정사에 빠졌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는 모두 깊은 바다 속에 내던져버렸다. 그 순간은 그녀의 순결을 바치는 시간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사랑의 휘몰이였다. 사랑의 기쁨의 전율 속에서 처음으로 남자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파바로티를 정복한 듯 여자는 잠겼다. 남자의 깊은 애무와 감미로운 사랑의 언어들! 사랑은 그들에게 광풍같이 광기를 몰고 찾아왔다. 이미 엄습한 그 사랑의 광기를 그 누가 말리겠는가! 두 남녀는 이 광풍에 휩싸였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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