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2016년 6월 30일, 카카오톡과 SNS를 통해 '이건희 사망 속보'가 돌았다. 거기에 더해 메시지에는 '오후 3시까지 엠바고 요청'이 붙었다.
 
 기업 총수의 유고는 주가에 악재다. 하지만 삼성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수혜 가능성이 부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2년간 에버랜드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을 통해 이미 지배구조의 큰 골격을 갖췄다. 향후 지배구조 관련주가 대박을 칠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졌다는 뜻이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에서는 ‘불확실성 해소론’이 나온다. 이 회장의 공백이라는 불확실성의 해소가 호재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사망은 삼성 3세 체제의 본격화라는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직결된다. 시장이 삼성 3세 체제를 악재로 인식했다면 주가 상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도 다른 재벌처럼 ‘편법 상속증여’, ‘경영능력 검증 없는 승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이 ‘이재용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로서는 나쁘지 않은 신호인 셈이다.
 
교묘하다. '엠바고'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그렇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사실의 보도 시기를 약속한 시각까지는 유예하자는 언론의 합의를 '엠바고'라 한다.

  

짧은 메신저상의 단문이지만 마치 언론화 직전의 고급 정보라는 뉘앙스로 메시지를 보는 사람의 사고를 단번에 마비시켜 버렸다. 이 메시지를 본 개미투자자는 '돈 버는 고급정보를 너와 나만 알고 있자.'는 달콤한 속삭임에 흐물흐물 뇌수가 녹았을 것이다.
 
'이 고급정보는 나만 알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순진하게 입을 닫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 거짓말은 들통나지 않기에 유포자는 일부러 '3시까지 엠바고 요청'을 붙였다. 주식시장은 오후 3시에 폐장하고 작전세력은 그동안 치고 빠질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작전세력이란 특정 주식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오르거나 내리게 해서 단기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주식을 한 번에 사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실탄이 있어야 하고, 투자자들을 현혹할 그럴듯한 거짓 정보를 퍼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찌라시이다.
 

연예인 X파일 사건으로 일반인들은 증권사, 재력가, 대기업들이 그들만의 정보를 쥐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보가 곧 돈인 사회, 특히 주식시장에서 정보의 가치는 말할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이게 찌라시에도 나온 거야." 라며 자신의 공상을 퍼트리는 거짓말쟁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이번 사건에서 봤듯이 찌라시의 힘은 대단했다. 찌라시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찌라시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가 언론과 공시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이 작전이란 것이 항상 성공하지 않는 것이 주식시장의 참여자들 중에는 작전세력의 의도와 다른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건희 사망 찌라시에 대해 작전세력은 주가를 낮춰 매수하려다가 반대의 결과를 맞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단기간의 이익을 쫓는 투자자,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없이 시장의 추세에 의존하는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많을수록 작전세력은 활개를 친다. 반면, 중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갖고 차트보다는 기업의 가치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면 작전세력의 입지는 좁아진다.
 
브렉시트 이후 한국에 투자한 외국자본이 빠져나갈 거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 주식시장이 신뢰도가 떨어지는 후진적 시장이라는 외부의 평가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주식시장의 후진성을 한 번에 보여준 사건이다.
 
이 날 찌라시가 돈 결과는 삼성 계열사 주식 중 이건희 사망 후 이재용이 승계할 회사들의 주식이 급등이었다. 기억해 보자. 지난해 이맘때 전 계열사의 지배권을 강화했던 이재용의 삼성생명 합병이 있지 않았던가. 삼성생명의 주식은 이날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제 이건희의 시대는 가고 이재용의 삼성 시대가 열린다는 기대가 그 이유였다.

누군가는 대출(주식매입을 위한 대출은 일반 은행 대출과 달리 빛의 속도로 꿔 쓸 수 있다)을 받아서라도 웃돈을 주고 샀고,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팔았을 것이다. 그게 당연한 주식시장의 생리이지만 어떤 이는 돌덩이를 금값에 사고 또 다른 이는 돌덩이를 금값에 판 것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무려 12조 원의 돈이 증시에서 단 하루 동안 오르락내리락했다. 워낙 가늠되지 않는 액수라 비교해 보면,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다는 하반기 추경이 10조 원이다.(20조원의 추경이라 하지만 직접 자금은 10조 원으로 추산한다.) 또한 삼성이 3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8조 원에 도달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 후 삼성은 사실무근이라 발표했고, 검찰에 이런 찌라시를 돌린 유포자를 찾아내 엄벌해 달라고 수사를 요청했다.

 
굳이 삼성이 나서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증시 시스템은 작전세력에 대한 자체 추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위 작전세력이라는 존재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증권시장을 야금야금 파먹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산적인 영업활동을 성장시키는 필수 영양소와 같은 돈을 투입해 주는 투자자들이 있는 시장, 자본주의의 정점이다.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성장의 가치를 갖고 있는 기업에게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그 자본이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다. 뿐이랴, 구글과 애플의 사례에서 봤듯이 기업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기술은 답보 중이던 인류의 삶을 진일보시킨다.
 
그런데 이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시장에서 가치 없는 돌덩어리 같은 기업을 황금이라고 속여서 팔고, 네가 들고 있는 그 황금덩어리는 기실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기를 쳐서 헐값에 뺏는 도적들이 판을 친다면 자본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리라.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이 정도 수준으로 증권시장의 기본기능에 중점을 둬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마침 2016년 6월 30일이 공매도에 대한 당국의 엄정한 단속이 시작된 날이라든지, 이런 찌라시성 교란정보에 삼성이 증권시장 폐장 시간인 오후 3시쯤에나 반박을 했다는 것을 물고 늘어지면, 또 어디선가 음모론을 들고 와야 한다. 피곤한 일이고, 보편적 상식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주의 주식도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이번 사건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건희는 죽었나? 살았나? 살아있다면 왜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나?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에 사람들은 갖가지 상상을 가져다 붙였다.
 

이재용의 그룹승계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뇌사 상태의 이건희 회장을 계속 생명유지장치를 붙여서 살려둘 것이다. 모든 승계가 이루어지고 대략 6조 원 수준으로 예측되는 상속세에 대한 해법까지 준비되면 그때는 호흡기를 떼고 사망 발표를 할 것이다. 등등의 패륜적인 상상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어지간해선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은둔의 제왕, 어느 날 사옥으로 출근하다 만난 기자들에게 운동 삼아 그냥 나와 봤다는 호방함(?),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요금을 내는 디지털 덕후 이건희. 그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고 가장 불행한 노인이 되었다.
 
타인의 돈을 뺏기 위해 서슴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법의 빈틈을 노리고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돈 앞에서 부모에 대한 효심을 버리고,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 한 부부도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혼소송을 내는 세상이다. 

  

이런 한탄 앞에 '그게 어때서?'라는 반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 나오는 대한민국. 이런 사회에서는 수퍼카를 수집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든 노년과 죽음이 평온할리 없을 것이다.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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