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10회

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10회

 

‘재수 없이 그런 계집년이 들어오다니…….’

애초에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숙희를 싫어하는 이유는 생김새가 기다랗게 생긴 자신과 많이 닮아서이다. 꼭 소금강에 휴가를 보내던 그 시절의 비쩍 마른 자신과 너무 비슷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처녀가 아이를 낳고 죽은 것에 더욱 혐오가 치밀어 올랐다. 숙희의 사건은 그녀를 더욱 내면적으로 음산하게 만들었다.

어제는 홍신애로부터 입양식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2층의 개척교회에서는 계속해서 입양식 행사에 참여하는 성도들로 북적거렸다.

“어린 생명을 당신의 사랑으로 키우겠습니다.”

김생려 권사의 떨리는 엄숙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자주색 커튼 사이로 보이는 목사의 강대상 근처에 성경책을 손에 얹고 고개를 숙이며 선서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홍신애가 강보에 쌓인 아이를 김 권사에게 건네주었다. 노인숙은 말없이 그 행사를 지켜보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국의 아들이었다.

“숙희 누나는 잘 있나요?”

“그건 왜 물어?”

“아직도 집에 있냐고요.”

“없어, 죽었어!”

“죽, 죽다니요?”

“대전에 있는 동안, 어느 놈 하고 눈이 맞았는지 아기를 낳고 죽었어!”

“아기를 낳았다고요?”

더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언젠가 아들이 숙희 누나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스치는 말을 하였었다. 그녀는 생각이 자꾸 곤두세워졌다. 머리가 지끈하여 눈을 감았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럴 땐, 자신의 빵 가게 사업의 번창을 그려보는 것이다. 해마다 그녀의 매출은 늘어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세상 최고의 CEO가 되는 것이다. 이제 남편이 물려 준 돈으로 그녀는 제빵 유통업계와 큰 계약을 맺고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 5층 자리 빌딩을 멋지게 지었다. 1층은 빵 굽는 공간으로 넓은 매장이 차지하게 하고, 2층은 성인오락실, 3층은 애완견 센터, 4층은 자신의 빌라로 개설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애완견 사업에도 신경을 썼다. 장 선생의 일은 바로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애완견 협회에 관한 홍보와 안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의 연구주제를 게재하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회원가입이 홍수를 이루었다. 곧이어 회원들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쯤 되면 후원금 모금 광고를 개제해 봐. 많이 몰리게 될 거요.”

과연 장 선생의 말대로 후원금 입금의 통장을 개설하고 나니 어마한 액수가 입금되었다. 어떤 회원들은 자신들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동물이 출입할 수 있는 ‘애완동물카페’를 개설하자는 의견이 들어왔다. 또한, 어떤 회원은 애완견을 훈련하여 어마어마한 상금을 내건, 애완견 경진대회를 하자는 의견들이 속속들이 출범하였다. 그것은 삶의 무료를 해결할 수 있는 최대의 쾌락이라고 떠들었다. 이토록 각광을 받게 되자 갑자기 대박을 터트리는 환상에 사로 잡혔다. 그녀는 그 애완견 애호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신의 빵의 종류를 전시하여 판매하는 것을 구상하여 보았다. 애완견 잡지에 개의 식성에 맞는 먹잇감을 광고하여 그 판매수가 늘어나는 것과 곧이어 모든 회원들이 자신의 빵을 식단에서 즐기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많은 회원을 확보하면 남편 장 선생을 국회의원으로 출마시킬 수도 있다고 굳게 믿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가 생각한대로 빵 굽는 사업은 날로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새로운 도넛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히트를 쳤다.

어느덧 세월은 그녀에게 검은 머리와 피부의 탄력을 빼앗아갔다. 눈동자는 인생의 깊음을 바라보는 그런 눈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아직도 탐심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마치 가난한 아이들이 배가 고팠을 때, 음식을 보게 되면 서로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덤벼들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노인숙은 고객관리와 서비스를 위해 직원들을 엄격하게 다루었다. 장 선생과의 재혼 생활은 그녀에게 사업과 함께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제 내일이면 장 선생과의 재혼 기념일인 것이다. 협회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외출복을 벗고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으니 그녀의 전신이 거울에 비쳤다. 자신의 육체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피부가 많이 탄력을 잃었고 희고 곱던 피부가 윤기를 잃어 주름살이 많았다. 올해 58세!

눈가의 주름이 전보다 더 깊게 패인 듯하였다. 내일은 보톡스 주사를 맞아 주름을 펴야 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데…….’

언젠가 신문의 제 일면에 보도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젊게 사는 방법’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하여 화장대 앞에 붙였다. 그것을 정성껏 코팅을 해놓고 외우다시피 하였다.

‘매일 비타민제를 복용할 것, 튀긴 생선은 절대로 먹지 않을 것, 하루에 과일을 3번 이상 챙겨 먹을 것…….’

건강백과서로 삼고 매일 외우고 실천하였다. 키 168cm에 몸무게 48kg의 그녀는 아직도 날씬하다는 인상을 주나 살이 없어 더욱 주름이 많아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몸매와 아름다움에 더욱 집착하였다.

‘아름다워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여자 나이 육십이면 볼 것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느끼고 쉽지 않았다. 자신을 노화된 추한 모습으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잃는 것과 같았다. 몸매 관리를 위해서 아침마다 세리를 데리고 조깅을 시작하였다.

‘절대로 아름다움을 잃어선 안 된다.’

이 집착이 부지런을 떨게 하였다.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미모에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그녀의 대단한 존재의미였다. 그것을 잃으면 무슨 의미로 세상을 산단 말인가!

노인숙은 자신에게 끌리는 남자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남자가 상당한 매력을 지닌 남자라면 먼저 추파를 던지곤 하였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사랑해야 하고 반드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였다.

거울 앞에서 천천히 클렌징크림으로 얼굴을 마사지하기 시작하였다. 꼼꼼히 완전하게 세안을 하는 것이 자신의 피부 가꾸기 일번이었다. 그녀는 곧 화장대 앞에 앉았다. 겨드랑이에 최고급의 장미향을 뿌렸다. 장 선생의 담배 냄새를 압도하기 위해서였다.

“콜록 콜록…….”

자꾸 기침이 나왔다. 기침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되었다는 비애를 느꼈다. 화장솜에 스킨과 로션을 듬뿍 적셔 얼굴에 골고루 펴 발랐다. 최근에 주름 개선제의 기능성 화장품을 비싸게 장만하였다. 이마 주위에 로션을 한 번 더 진하게 덧칠하듯 발랐다. 얼굴이 유분으로 번뜩거렸다.

이어 장밋빛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언제나 바라보는 창가로 다가갔다. 맞은편의 교회도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성도들이 일요일이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예전엔 한산하고 조용하던 저 2층의 교회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늘도 노인숙이 바라보는 자주색 커튼 사이로 여전히 홍신애의 뒷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예배당에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듯하였다. 까맣게 윤이 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머리가 많이 길었는지 틀어 올려 귀족적이고 단아하게 보였다.

노인숙은 자신도 모르는 저주의 소리를 웅얼거리며 홍신애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여자! 저 여자의 즐거움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홍신애는 자신의 빵 가게에 교인들을 자주 보내었다. 교회 행사가 있을 때, 교인들에게 빵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별 적대감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홍신애는 그저 말없이 잠잠히 웃을 뿐이다. 그런 모습이 왠지 밥맛이고 얄미웠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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