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빈시인의 노동 현장에서의 엘레지

[뉴스프리존=박재홍 시인문학마당 주간 ]‘직장에서 맡은 일이나 맡은 일을 처리한 내용을 적은 기록이거나 그러한 책’으로 본다면 옥빈 시인의 시집 『업무일지』의 사전적 의미를 통하여 개략적인 서정성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옥빈시인의 시집 『업무일지』을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노동의 현장에서 ‘사회적 시간’(social time)의 다층적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전제로 볼 때 ‘사회적 시간’이란 사회나 문화에 따른 인식에서 오는 시간의 분절형식에 초점을 둔 시집 전반에 걸친 현장성 있는 단어를 살펴 볼 수 있다.

그 밖에 내용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구조적으로 일구어 낸다면 시의 형식이나 서정성에 의한 노동을 원시적 샤만이나 축제의 반복적 개념을 동반하여 노동자들의 ‘순환적 시간’을 통한 노동의 재해석의 ‘상징성’을 돌출 해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먼저 하면서 옥빈의 시집 『업무일지』를 풀어내고자 한다.

시간이 분절화 되는 시대상황은 엄중하다. 각각의 사회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시간은 사회 구성원의 서정성을 삶의 구성에 따라 중요한 축으로 실제 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시인의 현장성을 기피하며 거리를 두고 성찰할 필요에 따라 시는 어렵게 작동되기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침은 서둘러 오네/ 기상알람은 어젯밤과 오늘아침 사이에 경계선/언제나 전쟁을 부추기네/ 출근의 여러 절차 중/ 아침밥을 생략하는 날 많아지네/ 신이 인간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 일이라는 말 들은 적 있네 / 다녀올게, 다녀와, 서로 주고받는 말은/ ‘무사히’를 동반하고 있지/ 아침이 서둘러 오는 것은/ 최대의 선물 때문이네/(출근-전문)

5연으로 나누어진 시는 무덤덤하다. 일상이 객관화 되고 서술적 형태의 시어들이 연결고리가 하나의 상징적 단어들로 숨은 낱말찾기처럼 차갑게 다가선다. 서정성은 喜怒哀樂愛惡慾(희노애락애오욕)을 담아야 하는데 대공황때 흑백무성영화의 찰리챌플린이 드릴에 옥수수를 먹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옥빈의 시는 시간 내부에 들어있는 다양한 시간의 차원성을 달리한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현장의 이들의 모습이 속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속에서 나름대로 적절한 모습을 취하여 나타나게 되고 보편적 일상 생활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철 막대가 전부다/ 참 보잘 것 없고 소박하다/십자나 일자 더하거나 빼는 일/이미 정해진 길이지만/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온 것처럼/ 일의 끝머리에서/ 마지막 부품을 조이거나 커버를 덮으며/ 다시는 나사 풀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 흔들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필요한 곳에서 나는 / 큰 힘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큰일을 해내고 싶은 것이다/ 각기 다른 부품이나 기능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 그곳에 동참을 하고 싶은 것이다/ 기계문명의 기초였던 나는/ 지금도 소리없이 일하고 있다/ 격렬하거나 창조적이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풀고 조이던 날들/ 어느새 멋진 家計(가계)를 만들어 놓았다(드라이버 – 전문)

위와 같은 시를 통해서 옥빈시인은 금속성을 가진 드라이버를 통해 나름대로 적절한 모습의 자신의 모습(드라이버)을 취하고 특수화된 분절화 양식을 통해 그가 지닌 노동자로서의 삶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들이 반복되고 크게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특수함은 보편화 되고 독자에게 설득력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 위험한 것은 문명은 늘 회환과 반성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공사를 멈추게 한다 낮술은 기약없는 다짐을 하고, 순대국밥집 창밖 오줌발처럼 내리는 빗줄기는 오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부아가 나고 심술이 난다 TV속 공기업 입사비리는 권력이나 돈이 저지른다고 꿈은 공평하게 꾸어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낮술은 아무나 먹는 게 아니라고 낮술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던 순댓국 속 머리고기와 허파내장이 숨을 죽이고 있다/ 순대 국밥집 새우젓처럼 짭짜름한 오후, 낮술은 유치한 건배사에 멋진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일당 두배를 날리고 취한 마음을 추스르는 귀갓길, 잦아든 빗줄기가 포플러나무로 흔들리고 있다(공空친 날 –전문)

옥빈시인의 “상상”의 활동의 의미는 ‘무한한 진보’로만 향하는 현대사회에서 대기업과 소기업, 권력과 비권력으로 양분한 감이 없지 않으나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인간 생활에 전반적으로 균형을 회복시키는 시인의 효용적 가치의 중요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균형은 일상속에서 성찰과 자아 혹은 시인이 얘기하는 ‘空’에서 우주 사이의 화해를 꿈꾸는 희망을 낳게 하고 인간의 형상 자체를 우주와 분리시키지 않았던 원시 우주 ‘인간의 전통적 모습’을 회복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한나절이나 하루를 쓰고 무심코 버려질 때마다 나는 무사한 날들을 꿈꾸었다/ 내가 잡았던 연장이나 자재들이 쉼없이 일하는 동안 기름때에 얼룩진 저녁이 오면 검은 노을이 진다/ 무엇이 나름 사지로 내몰아대는가 닳고 헤어져서가 아니다 스멀스멀 내안쪽까지 파고들어 위협하는 분진이나 기름때에 방어선을 넘겨주었을 뿐이다/ 오른쪽과 왼쪽이 없다 정해진 것은 과거이고, 정해지지 않은 것은 미래다 날품 같은 사랑이 전부다( 면장갑 –전문)

옥빈의 詩는 무덤덤한 사랑이 느껴진다 아니 자기애가 참 더디다. 사회 자체의 분화가 빠르고 산업화의 소멸시효가 찰라처럼 느껴지는 시대에서 현대인은 시간에 잡혀서 산다. 시간에 지배당하여 시간 안에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시달리고 자연의 주기보다는 인위적인 패던에 의존한 현재의 삶이 이 시집 전체에 대한 모티브로 작동되고 있음을 일련의 시들이 보여주고 있다.

스패너는 힘이 세다 생긴 것 하고 다르게 쓰는 힘이 남다르다 잘난 척 힘센 척 안하며 모든 인연의 벌어진 사이를 좁히고 응어리를 풀어낸다 볼트와 너트를 위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저 자신이 이루어낸 일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스패너 – 전문)

옥빈 시인은 시간이라는 개념은 사람에 의해 생성되고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한 이해를 자연과학적인 개념의 분절화 된 양식으로 일관되게 상징적 도구를 사용해 시, 초, 분, 월, 년등으로 나누어 생각한 것 같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시간의 개념이고 노동현장의 도구를 통한 개념과 단위는 정치적인 이유로 표준화 될 수 있으며, 각 문화권의 관습적인 특이한 일상이 잘 드러났다. 결국 사회적인 규율의 성립이 현장성을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빈시인의 금번 『업무일지』는 그 동안 노동현장에서의 個人史(개인사)적인 시선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노동현장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들은 자본에 의해 잠식되고 통제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르포형식의 새로운 시적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경제정치, 문화를 비롯한 노동현장 전반에 일어나는 빠른 속도의 변화와 한 개인의 서정이 일생을 놓고 볼 때 『업무일지』는 옥빈시인 시의 세계관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직은 제한 된 공간의 변화이지만 전반적인 문화의 혼합과 공존은 이전에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한다. 시인의 정체성을 극복하는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옥빈시인의 『업무일지』를 통한 詩業(시업)은 한발짝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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