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기자=] 광복절 하루 전날인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일본 규탄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한창인 때 사법농단 재판에 위안부를 ‘매춘’이라고 표현한 보고서를 작성한 현직 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양승태 사법부’ 당시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일제 강제동원된 위안부를 가리켜 ‘매춘’이란 표현이 쓰인 것을 두고 이날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 설전이 벌어졌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22회 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양승태 대법원 행정처 심의관 출신 대구지법 조인영 부장판사에게 매춘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캐물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조 부장판사가 2016년 1월 4일 작성한 ‘위안부 손해배상판결 관련 보고’ 문건에 등장했다. 조 판사는 이 문건에서 ‘일본 위안부 동원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인지 상사적(매춘) 행위인지 아직 명백하지 아니한 상태’라고 적었다.

조 부장판사는 2015~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은 “매춘이란 표현은 위안부 할머니에게 귀책사유나 고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표현인데, 현직판사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조 부장판사는 “괄호 안 표현 하나를 짚어서 마치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말하는데,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 범죄라는 개인적 생각이 들어 기재한 것”이라고 답했다.

조 부장판사는 보고서의 전체 방향은 “위안부 동원은 국가적인 주권행위가 아니고 상사적인 행위라 국가의 책임이 없다”는 일본 측 주장을 인정할 경우 국내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주권 행위라는 점을 부인해야 재판권이 인정되고 반대로 이를 인정하면 없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문건 작성시 참고한 논문에도)국가의 주권적 행위인지 상사적 행위인지 명백하지 않으면 일단 재판권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상대로 그런 말을 하겠느냐”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보고서의 각주, 관련 논문, 문헌 등을 다 살펴봐도 상사적 행위를 매춘이라고 한 건 없었다”고 반박하면서 “매춘이라는 일본 제국주의적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용어는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로 썼느냐, 직접 판단해 쓴 것이냐”고 되물었다. 조 부장판사는 이에 “그런 구체적 표현을 지시하진 않았다”고 답했다.

검찰은 "1991년 8월 14일 오늘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제 위안부 존재를 처음 알린 날로 2017년부터는 관련 법률 통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위안부 기림의 날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평가된 사안인데 매춘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적 합의로 역사적으로 평가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매춘이라는 표현은…”이라며 지적하려 하자 양승태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명백히 증언했는데 추가 질문을 장황히 하는 것은 필요없다”며 검찰의 질문을 가로막으며 “모욕적 신문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며 “사건의 공소사실과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재차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은 “매우 부적절한 이의 신청”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모욕적 신문이라는 것은 증인의 명예나 과거 행적에 대해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질문했을 때를 말한다”며 “증언에 의하면 별 문제 없이 작성했다는데 무엇이 모욕인가”라고 반문했다.

재판부는 “증인이 작성한 보고서 내 표현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사가 질문한 것”이라며 변호인의 이의를 기각했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임 전 차장의 대외적 공보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했다고 했는데, 대외적 공보자료로 상사적(매춘) 행위라고 언론 등에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실언일 수 있고 부적절해보인다”며 “임종헌 법원 행정처 전 차장의 대외적 공보활동 목적으로 작성한 게 맞느냐”고 질문했다.

조 부장판사는 “저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기해서 말씀하시니…”라며 재판권 인정을 목적으로 여러 주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매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 뿐이라는 취지의 앞선 주장을 반복했다.

이어 검찰이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해달라고 요구하자 “전체 내용을 안 보고 그 문구 하나만으로 질문하는 것은 굉장한 오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임 전 차장은 주권면제, 한일위안부합의, 소멸시효 등 논점을 부정적 언급하며 작성을 지시했고, 이 같은 논점에 따랐다고 설명했다.

2013년 8월 위안부 할머니 12명은 일본 정부에 1인당 1억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조정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를 좌절시켰다. 할머니들은 법원에 본안 소송을 내기로 했다. 임종헌 차장의 지시는 이때 떨어졌다. 사실상 소송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임 전 차장의 속내를 느낀 조 부장판사는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반인권적 범죄'라고 명시했지만 '전후 일괄보상 협상이 있을 경우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같다.

임 전 차장은 해당 보고서 작성 이후 크게 만족해 다른 심의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잘 썼다”며 조 부장판사를 칭찬했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검찰의 이런 언급에 조인영부장판사는 “수고했다고 하셨다”며 “(잘 썼다는 칭찬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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