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HJ 컬쳐의 한승원 김종석 프로듀서, 김유현 극본, 이진욱 김보람 작곡, 이진욱 음악감독,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를 관람했다.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Sergei Vasil'evich Rachmaninov, 1873~1943)는 러시아 벨리키노보고로드(Velikiy Novgorod)에서 출생,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California Beverly Hills)에서에서 사망했다.

라흐마니노프(Vasil'evich Rachmaninov)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에는 크게 종교와 우울증, 그리고 러시아가 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가 어렸을 때 성당에서 들었던 종소리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고, 그의 작품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의 도입부 특유의 피아노 타 건과 합창 교향곡 "종" 전주곡 3-2 '종' 등에서 교회의 종소리와 정교회의 엄숙함이 짙게 풍긴다. 기악곡에 풍기는 종교적 색채 외에도 종교 관련한 작품도 많이 작곡했다.

24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압도적인 비판을 받으며 그 충격으로 후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또 같은 시기에 사촌과 결혼해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을 받아 우울증이 심해진다. 우울증은 교향곡 1번의 혹평으로 3년 간 슬럼프인 것도 있지만, 지주였으나 방탕한 삶을 살아 가정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와 평소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슬럼프시기에 사촌이랑 결혼한 것에 대한 정교회의 비난 등 라흐마니노프의 작곡 환경에서 심적으로 억누르는 요소가 된다.

또한 조국이 소비에트 혁명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그는 죽을 때 까지 조국을 그리워한다. 조국을 떠난 후에도 음악적으로도 '러시아인다웠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망명 후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4번과 그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에서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드러내었듯이.

2011년에 호주의 라임라이트 매거진이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 100인에게 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뽑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를 했다. 2위부터 5위까지는 호로비츠(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1903~1989),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 1887~1982), 에밀 길렐스(Emil Gilels, 1916~1985)의 순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늘 위로가 되어준 안식처, 차이콥스키(Tchaikovsky, 1840~1893)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진다. 게다가 스승이었던 즈베레프(N.S.Zverev, 1832-1893)까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아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낸다. 그 무렵 라흐마니노프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 안나 로디젠스키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친구의 아내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그녀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함께 한 사이였지만 그녀와 더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의 배려에서이다. 바그너가 제자의 아내를 빼앗고, 드뷔시가 후원자의 아내와 도피를 한 것에 비하면 지고지순의 사랑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큰 키(190cm)에 스케일도 컸지만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듯이 매우 섬세하고 로맨틱한 사람이다. 안나 로디젠스키를 위해 많은 곡이 작곡되었고, 공식적인 헌정 작품은 'caprice bohemien op.12'와 '교향곡1번 op.13'이다. 하지만 안나에게 바친 이 작품의 초연에서 평자들의 악평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에 빠지고 이후 3년간이나 작품을 쓰지 못한다.

깊은 사랑만큼 충격도 컸던 것일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영화 <브리지존스의 다이어리>의 OST로, 데이비드 린((Sir David Lean, 1908~1991) 감독의 <밀회> 주제곡,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라스트 씬을 장식한 곡이다. 영화 <혈의누>에서는 주인공이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에 삽입되어 극적 긴장감을 주었던 곡이기도 하다. 호주 영화 샤인 (Shine, 1996)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주제곡으로 연주되고, 특히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 1926~ 1962)가 환풍구에 치마가 날린 명장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녀도 조명이 꺼지면 라흐마니노프와 같이 우울증에 괴로워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믿고 의지한 차이콥스키도 예민한 감수성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슈만은 우울증과 정신착란으로 수많은 자살 시도를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치료를 결심했고 장기간의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여 치료를 도와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정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이에 힘이 되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해준다. “당신 안에 위대성이 잠들고 있소, 그 위대성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주인공인 그가 음악활동을 3, 4년간 중단하고 우울증에 빠져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던 시기에 그에게 다가가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신적 치료를 해 마침내 다시 작곡을 하도록 만든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와의 이야기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건반악기와 현악기의 연주석이 마련되고, 무대전체가 주택의 거실이다. 객석을 향해 비스듬한 무대바닥과 상수와 하수 쪽 공간을 각기 작곡가 라흐마니노프(achmaninov)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방으로 설정을 하고, 상수 쪽에는 건반악기와 탁자 그리고 의자가 놓이고 술병과 술잔 등의 소품이 비치되고, 하수 쪽에는 책장과 출입문, 안락의자, 탁자가 놓이고, 출입문에는 메모를 한 용지를 잔뜩 붙여놓았다. 벽과 천정에는 악보용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이채를 띤다.

배경은 실내장면에서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게 해놓고, 대단원에서는 하늘 색 조명으로 일망무제로 탁 트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연출된다. 무대 중앙에 적갈색의 외투형태의 맨틀피스를 옷걸이에 걸어놓았다가 작곡을 다시 하게 된 라흐마니노프가 착용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배경 가까이 연주석에서 시종일관 출연자 대신 건반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탁월한 기량이 극적분위기 상승은 물론 뮤지컬을 고수준 고품격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박유덕이 라흐마니노프로, 김경수가 니콜라이 달로 출연해 호연과 열창으로 갈채를 받는다. 안재영이 라흐마니노프, 정동화가 니콜라이 달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프로듀서 한승원 김종석, 무대디자인 김대한, 소품디자인 김정란, 음향디자인 김주한, 조명디자인 이주원, 의상디자인 도연, 분장디자인 김숙희, 무대감독 김은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HJ 컬쳐의 김유현 극본, 이진욱 김보람 작곡, 이진욱 음악감독,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를 남녀노소 누구나 보아도 좋을 걸작 뮤지컬로 만들어 냈다./박정기 문화공연칼럼니스트

newsfreezo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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