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엔 멀리건이란 없다

경영은 철저하게 인과원리에 의한 게임이다. 씨를 뿌리고 땀 흘려 가꾸지 않고 수확한다는 법이 없다. 골프에서처럼 멀리건이란 있을 수 없다. 경영은 프로게임이기 때문이다.

골프에는 ‘멀리건(mulligan)’이라는 관행이 있다. 실패한 첫 티샷(teeshot)을 별점 없이 다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함께 경기를 하는 골퍼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아마추어 게임에서만 가능하며, 시작 첫 홀의 첫 티샷에서만 허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 외에도 아마추어 골프게임에서는 첫 홀의 점수를 일률적으로 좋게 적어 준다든가, 그린에서 퍼팅 거리가 짧을 경우 ‘컨시드’라고 치지 않고 점수를 인정해 주는 이른바 ‘오케이’ 관행도 있다.

그 모두가 잘못에 대한 벌점 같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든가, 공짜로 점수를 얻는다든가, 일행 모두가 동의할 경우 첫 한 홀의 경우이지만 나쁜 성적을 좋게 조작하는 등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관행이다.

물론 그런 것들은 원칙이나 규칙에 없는 것으로 별로 떳떳하지 못한 예외적인 선심이다. 아무리 타수를 경쟁하는 게임이지만, 직업적 게임처럼 큰돈이 상금으로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에서 지고 점수가 낮은들 불명예가 되는 게 아니므로, 그저 별문제 없이 활용되는 것이다.

경영도 이익을 얻고자 벌이는 게임이라면 골프처럼 멀리건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경영엔 그게 없으려니와 있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경영이 절대로 아마추어 게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게임엔 많은 사람들의 삶과 희망과 행복과 큰돈이 걸려 있고 거기서 지면 거덜 나고 끝장나기 때문이다.

주요 경영원리나 프로세스를 보면 손실이나 희생이 없는 멀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의 기본원리는 투자와 생산판매다. 공장에서 원재료를 투입하면 그 결과물인 제품이 생산돼 나온다. 그런데 투자한 원가가 계획에 어긋난다 해서 없었든 일로 치고 다시 투입하는 멀리건은 있을 수 없다.

일단 투입하면 그건 생산품으로든 원가의 손실로든 귀결되고 만다. ‘잠깐, 미안합니다. 다시 제대로 하겠습니다.’ 식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물림과 다시 하기’란 없다.

기업에선 사업계획에 따라 매일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비용을 쓴다. 그중에 자산 적 지출에 해당하는 비용은 자산에 가치로 남고, 생산을 위한 비용은 원가로 쓰여 상품가격의 기본이 되며, 경상활동을 위한 비용은 생산과 판매를 지원하는 비용으로 쓰인다.

비용 중에 인건비 같은 것은 사내에 지출되지만 이자나 기타 비용은 거의가 기업 밖으로 유출된다. 그런 사외유출비용의 지출에는 멀리건이란 있을 수 없다. 비용에 지출이라는 날개가 달려 새 주인한테 날아가면 장부에 기록만 남을 뿐 날아간 새일 뿐이다. 돈이 바람이 들어 과소비를 했거나 허투루 낭비가 되었다면 되 물림이란 있을 수가 없다. 비용의 지출결의와 집행이란 게 그토록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잘못 사용되었다 해서 없던 일로 돌릴 수 없는 어렵고도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회사가 출시한 신제품 게임기 <X박스 360>는 일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해서 결국 백기를 들고 멀리건을 선언하고 제2의 런칭에 착수했다. 그 멀리건은 매우 뼈아프고 적잖은 손해를 보는 다시 하 기다.

창업해서 처음 선보이는 상품이나 내부 창업에 해당하는 신제품이 시장에서 소박데기 신세가 되는 날이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끝장이 날 수가 있다. 엄청나게 투자한 개발비를 날리고 다시 개발에 착수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손해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런 개발 멀리건이란 뼈아픈 것이다.

기업경영에선 멀리건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치열한 경쟁에다 이익이라는 돈이 결부돼 있고, 돈이나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후회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네 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봐주기 식 멀리건이나, 컨시드 떼쓰기’에 이골 나고 철면피며 도사다. 멀리건을 청하는 데도 함께 라운딩 하는 골퍼들에게 정중하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예의가 있어 자기 마음대로 다시 치거나 강청하는 태도는 비신사적인 무례다.

작은 아마추어 게임에서 조차도 그런 예의를 차리고 법도를 따라야 하는데, 프로게임에다 아주 중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지며 수많은 종업원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기업경영을 망치고는, 정부더러 공적자금이니 구제금융이니 살려 달라 매달리고, 이자 탕감에다 빚 탕감까지 해 달라 떼쓰기를 예사로 하는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고 무도한 멀리건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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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이 봐주기 식 멀리건과 공짜 컨시드 떼쓰기에 이골이 난데는 국민으로서나 지도자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인 대의나 경영마인드가 결여된 정치인과 관료의 죄가 크다.

그들은 국민이 맡긴 권세를 함부로 휘두르고 부정한 이득을 챙기기 위해 치도곤을 맞아 마땅한 기업인들에게 벌점 없는 선심성 멀리건도 턱없이 푼푼하게 주고, 특혜성 공짜 컨시드를 너무 헙헙하게 남발했다. 그런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나는 봐주기란 제 피 한 방울이나 자기 돈을 한 푼인들 쓰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국민이 한혈汗血 노동으로 벌어 바친 혈세 가지고 헤프게 쓰는 선심인 것이다. 물론 저들의 명분은 외견상 항상 그럴 듯했다.

어느 땐 국가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라 했고, 어느 땐 사회 불안을 야기 시키지 않게 하려는 고육지책이라 했으며, 어느 땐 국민기업이기 때문이라 했고, 어느 땐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재기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전 세계 나라마다 시장경제체제를 통해 국제경쟁을 하고 번영을 성취하려고 하는 차제에 오히려 반 기업정서가 확산되게 만든 장본인격인 우리네 대기업들은 분수 넘게 오지랖이 넓은 정부한테 떼쓰고 매달려 너무 많고 정도에 벗어난 멀리건과 컨시드를 받아내 파탄지경에서 다시 살아나기도 했으며 거대한 빚을 지고도 여전히 행세를 하며 거드럭거리고 있다.

또한 그 탓에 우리네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향상되기는커녕 갈수록 뒤쳐지게 되었으며 국가경쟁력 역시 그런 퇴보에 난형난제 형국이다. 정부는 창조적 발상이나 예지나 경영마인드에 있어 하수이고, 기업은 국가장래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돈 버는 일에 허발 들려 돌아가니, 과연 장차 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경쟁 마당에서 어떻게 경쟁을 치를는지 걱정이다.

정부나 권력이나 기업이나 봐주기 식 멀리건이나 공짜 컨시드를 무책임하게 남발하는 것이나 터무니없이 후안무치하게 달라 떼쓰는 짓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건 기업이건 ‘우리가 남인가,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으로 불의한 소굴에서 자꾸 멀리건과 컨시드를 주고받으며 경영하면 진정 견실한 성장이나 발전이란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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