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연극촌 숲의 극장에서 극단 진일보의 김경익 작·연출의 <아리랑 랩소디>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한 유랑극단의 이야기다. 공연장소의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건 공회당에서건, 제대로 된 무대이건 아니 건을 불문하고, 우선 관객의 눈길과 관심을 끌어들여야 하기에, 공연 직전의 배우들의 묘기나 장끼가 한꺼번에 연주와 함께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시대적 배경이 일제치하라는 설정이다.

조선후기에도 광대는 최하층 천민으로 취급되고, 비록 일제의 신학문과 예술에 대한 깨우침이 있었다고는 하나, 광대는 사사건건 연희활동에 제약을 밭고 숱한 검열의 대상은 물론 공연허가증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면서 활동을 벌여야 했던 당시의 정황이 이 극에서 재현된다.

연극 <아리랑 랩소디>는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과 나운규의 <아리랑>을 접목시켜 재창작한 작품이다.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은 1975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치독일 휘하의 세르비아의 우쥐쩨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곳 시민들과 <쇼팔로비치 유랑 극단 단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희곡이다. 공연을 위해 전쟁지역을 마다않고 순회하며 공연해야 했던 극단 사람들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사람들에게 연극이라고 하는 꿈과 이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극단 진일보의 공연에서는 나치 휘하의 세르비아를 일제치하의 조선으로 바꾸고, 온갖 제약과 방해를 극복하고 공연을 해야 했던 한 유랑극단의 고난과 애환의 행각을 그려낸 연극이다.

원래 <아리랑>은 박승희와 박진(朴珍)의 재기공연작품으로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리고, 최승희(崔承喜)의 무용과 함께 1929년 11월초에 막을 올렸다.

내용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토지를 잃고 북간도로 가는 한 실향민가족의 참담한 이야기다. 식민지수탈로 인한 민족의 궁핍과 수난을 반영했기에, 연극 이 공연이 되자 <아리랑 고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아리랑 랩소디>에서는 유랑극단 단원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공연활동을 펴는 대목이 단연 볼거리다.

온갖 악 조건을 인내로 극복하고 유랑극단을 이끌어 가는 극 단장이자 아버지 같은 박승희, 탁월한 연기력으로 만 가지 역을 해내는 여배우 이며 극단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 나영자, 마치 햄릿 같은 성격설정으로 현실과 연극 속에서 구분 없이 방황하는 남자배우 오희준, 아름다운 한 송이 꽃 같은 여배우 극단의 막내 김춘심이 단원이고, 여기에 유랑극단이 집을 풀고 머무른 집의 주인이자 술병을 늘 상 들고 다니는 주정뱅이 남편, 남편대신 가정을 억척스럽게 이끌어가는 욕쟁이 아주머니인 그의 아내, 이 내외의 아들은 말썽꾼이라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는 설정이다.

여기에 이 마을의 파출소장이 등장해 유랑극단을 통제하려 들면서 여배우에게 음흉한 눈길을 퍼붓고, 파출소 소속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방범대원 춘보, 그리고 백정의 아들이자 고문기술자에다가 피에 굶주린 야수 같은 모습의 박살제가 등장해 미모의 여배우 춘심에게 사랑을 느끼고 피범벅이 된 채찍을 버리고, 짐승 같은 모습에서 이성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유랑극단은 도입에 이 지역 파출소의 공연허가증과 통행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물론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파출소장이나 임시직인 방범대원도 연극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연극에서의 역할 이름과 실제 이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가명사용 운운하며 범죄자 취급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다.

마을사람이나 집주인도 유랑극단 단원을 비천한 광대나 상것으로 취급을 한다. 그래도 유랑극단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결심은 흔들림이 없다. 단원 중에는 지나친 열정 탓인지 연극과 현실을 구별 짓지 못하는 인물인 오희준이 있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를 두고, 파출소장은 물론 집 주인까지 침을 흘리는 것으로 연출되고, 악의 화신처럼 묘사되어 등장하는 범죄자 고문 담당자인 박살제 역시 여배우 김춘심의 미모에 첫눈에 반한다. 김춘심은 부근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와 몸매를 자랑을 하고, 그것을 보고 치근거리는 집주인을 보고 그의 아내가 욕설을 바가지로 퍼 붇는다. 그리고 집주이 내외의 아들이 범죄자로 몰려 파출소에 수감된 것과 박살제에게 고문을 당해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당연히 공연을 두고 파출소장과 유랑극단 단장의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희극적으로 연출된다.

칠흑 같은 밤, 잠시 집밖으로 나온 김춘심에게 박살제가 슬그머니 다가선다. 경악하면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 김춘심, 엉뚱한 마음을 먹고 다가선 박달제는 김춘심이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주변의 꽃 이름을 묻는 것에, 박살제는 원래 이 고장에서 태어나 잘 안다며, 꽃 이름 하나하나를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가깝게 된다. 그러나 몰래 이를 지켜본 마을사람들은 김춘심을 백정의 아들과 관계를 맺는 추잡한 여인으로 몰아붙여 집단구타를 한다. 김춘심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만다.

파출소장은 유랑극단의 공연허가증을 김춘심의 몸을 대가로 맞바꾸려한다. 당연히 단원들의 반대에 접하게 되고, 희준이 등장해 현실과 연극을 구별 못하는 행동을 보이니, 파출소장은 희준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리고 김춘심에게 흉수를 뻗치려는 순간, 박살제가 등장해 춘심을 보호하려드니, 파출소장과 박살제의 결투가 벌어진다. 박살제는 파출소장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신은 총격을 받고 쓰러져 절명한다. 김춘심이 박살제에게 다가가 부등켜안고 통곡을 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간다. 집주인의 아들은 죽은 희준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말이나 석방된 것으로 소개가 된다.

대단원은 유랑극단의 박승희 단장이 죽은 단원 오희준의 무덤을 뒤로하고 단원들과 함께 다음 공연할 고장을 향해 출발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정희중, 장태민, 지연우, 김도연, 정명군, 류희제, 부혜정, 이가을, 김정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김재유, 조연출 이가을 황제혁, 무대 박은혜, 조명 김성구, 안무 오재익 이종일, 작곡 최우정, 음향오퍼 한희경, 조명오퍼 신지은, 조명어시 지소연 등 스태프 전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진일보의 김경익 작·연출의 <아리랑 랩소디>를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박정기 문화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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