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기업 중에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할 때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 해이 때문에 기업의 명예는 만신창이 형국이다.

기업은 남을 알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고 고객만족도를 측정하며, 자신을 알기 위해 경영실적의 결산을 통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경영분석을 한다.
기업이 안으로 목표만큼 이익도 내고 노사 간 평화도 잘 유지하면 좋은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밖에서 공개한 주가가 계속 오르며 거래가 활발하고 견실한 기업 이미지를 통한 높은 명성을 계속해 유지하고 있다면 그 기업은 더욱 좋은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선진국 기업들에 대한 평가는 그런 경영실적에 의한 평가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좋은 기업이 되려면 기업이나 경영자의 도덕성이 반드시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 대기업의 많은 창업주나 최고 경영자들이 그들이 성취한 놀라운 발전과 누리고 있는 명성이 경영자의 도의심과 기업의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귀사의 불명예지수 수준은 어떻습니까/ⓒPixabay

기업의 가치 있는 비전이나 고도의 윤리성, 환영 받는 기업 이미지, 만족한 고객 서비스, 투명한 경영과 기업 평화의 존중 등이 과거와 달리 좋은 기업으로 발전하고 평가하는데 주요 요건으로 부각된 것이다.

따라서,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 여겼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밖에서 기업을 훌륭한 기업이라 평가하지 않으면 좋은 기업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한 기업이 경제 사회적으로 비중이 크고 설사 경영상태가 양호해도 경영자가 정경유착이나 일삼아 부도덕하다거나 그 기업이 사회적 기여에 등한할 만큼 윤리성이 낮거나 하면 당장 지탄 받고 외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를 속이거나 우롱하고서는 정부 감독기구의 제재뿐만 아니라 민간 소비자보호단체들의 거센 저항 때문에 견딜 수 없으며 언론의 감시와 고발 역할이 너무나 일상화되어서 과거처럼 ‘부富의 우산’ 속으로 숨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변화된 경향 때문에 기업 평가의 잣대로 <기업불명예지수>의 측정과 평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지수란 기업으로서 이행해야 마땅한 사회적 책임의 해태懈怠나, 공익을 해치는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부정하고 불투명한 경영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민주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정의롭지 못한 분배와 무성의한 노사관계, 경제를 위기에 빠트리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방만한 경영, 기업 장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세습혈족경영 등 부정적 경영양상을 기준으로 불명예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이다.

기업이 적자 때문에 제일가는 사회적 책임인 납세를 이행하지 못하고 고용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면 그건 심각한 불명예로 여길 일이다. 이권을 얻기 위해 부정하게 챙긴 비자금이나 회사 돈으로 정치인과 관료와 거래 상대자에게 뇌물 먹여 그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경영행위는 불명예지수를 높이는 함수다.

노사분규가 잦은 기업은 그 정당성이 사용자와 노동자 어느 쪽에 있는가에 상관없이 기업의 불명예지수를 높일 뿐이다. 방만한 경영의 산물인 적자의 규모와 부채비율은 불명예지수의 증가와 정비례한다.

특히 부실경영과 상관없이 기업주가 치부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그러한 모든 불명예지수가 높고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주가 여전히 소유경영을 계속하면서 경영을 독단하고 있다면 그 기업의 불명예지수는 심각한 수준에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로 꼽힌 일본 혼다회사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회장이 예순 여섯이라는 한창 활동할 나이에 깨끗하고 당당한 은퇴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던 일 조차를 부끄럽다 후회했던 것은 기업가의 명예가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아름다운 일화다.

그러한 기업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본식 경영철학이 ‘사회에 폐를 끼치는 형태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명예심 때문이다.

우리네 기업들의 불명예지수가 유독 높은 것은 ‘명예란 게 밥 먹여 줄 건가’ 같은 명예존중심의 결여 때문이다. 도시 외환위기가 닥쳐 세상을 경악시킨 방만한 경영이 숨겼던 부실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도 명예를 더럽혔음을 사죄하고 백의종군 하겠다 나선 기업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만한 경영으로 기업을 부실화 시키고도 기업이나 기업가로서의 명예를 잃었음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수치심의 결여는 해당 기업의 명예는 물론 기업에 대한 불신까지 낳게 함으로 좋은 기업 만드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정부는 고육지계로 <워크아웃 캠프>를 차리고 부실기업들을 수용해서 공적 자금으로 회생을 시도한 적이 있다. 부실기업 사주들이 사재를 출연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가능한 한 해고를 최소화 하려고 애쓰기는 고사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워크아웃에 끼어들고는, 협조융자다 구제금융이다 공적자금 수혈이다 정부더러 살려내라 죽은 소귀신처럼 턱받이를 하질 않나, 심지어 어떤 철면피한 기업주는 회생자금으로 받은 공적 자금까지 떼먹었다가 철창신세가 된 한심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이미 진창에 떨어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자신의 명예에다 계속 오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과연 그런 처지에서 기업이 회생한다는 것이 도덕성과 명예의 회복 없이 가능한 가는 자못 의문스럽다. 경영부실이 단순히 경기 침체로 인한 영업의 저조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적자의 누증과 부채의 과중에 기인한다고만 여길 뿐 도덕적 해이에 그 재앙의 뿌리가 깊었던 탓임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기업인의 불행이고 기업의 비극이다.

부실화된 기업일수록 재무구조의 개선 못지않게 신뢰 회복을 통한 기업의 윤리도덕 재건에 진력해야 한다. 이제 기업의 명예는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기업 자산이고 값비싼 상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기업들마다 적지 않은 투자와 노력을 들여 상품 이미지(BI)와 기업 이미지(CI)를 높이려 애쓰고 있다. 과거처럼 제품 이미지만 높여서는 시장의 주인인 고객들의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는 불가결의 가치가 되었다. 과거와 판이한 ‘가치 변화 value shift’ 현상이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고객으로부터 불신을 받고서는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로열티를 쌓을 수 없으며 그런 불신의 벽이 높아지면 좋은 기업되기는 불가능하다.

명예지수 높이기는 소걸음인데 불명예지수 올라가는 것은 순식간이므로 기업이 불명예 짓거리를 일삼고서는 좋은 기업 이미지를 쌓는 다는 것은 요원하다. 그러므로 명예지수를 올리려 하기 전에 먼저 불명예 거리를 과감히 털어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불명예지수를 높이고 있는가는 그것을 만들고 숨긴 사람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수치심을 느끼고 참회하여 명예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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