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5회

이튿날 규희의 성화에 못이겨 자가용에 몸을 실었다. 차는 조용한 대학가 쪽으로 지나 영화관을 지나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섰다. 남녀가 쌍쌍이 어울려 춤을 추었고 모두 화려한 파티 복을 입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규희는 탈의실에 자신의 큰 백을 들고 가더니 분홍빛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분위기에 맞춰 입은 파티복인 것이다. 잠시 후에 규희는 다시 나타났다.

“이리로 올라와!”

손짓을 하여 다가가자 규희는 인영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아래층보다는 한결 조용하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면서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 두 명은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규희는 이 파티장의 기획실장이라는 남자와 마주앉은 사십대 남자에게 인영을 소개하였다.

“이쪽은 제 동창 서인영입니다. 어때요? 미인이지요?”

“정의식입니다.”

남자는 인영에게 목례하듯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던진다. 점잖은 분위기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남자의 눈빛은 인영에게 쏠리고 있다. 마치 아버지와 오빠와 같은 아늑한 분위기다. 인영의 아름다운 미소에 흠뻑 빠진 듯,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인영의 미소는 언제나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인영은 남자의 시선과 분위기가 어색하여서 얼굴을 붉히고 잠시 화장실로 향하였다. 세면대 위에 비친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방금 소개받은 그의 시선이 아른거린다. 유쾌하게 가슴이 설레었다. 놀라운 일이다.

다정다감하게 바라보던 그의 모습 속에서 인영은 남자를 느꼈다. 생과부라서 억눌리고 잠들었던 무의식의 발로인 듯하여 부끄러웠다.

핸드백을 열어 콤팩트와 립스틱을 꺼냈다. 상기된 얼굴을 감추려는 듯 꼭꼭 눌러 발랐다. 그리고 창백해진 입술에 포도주 빛깔의 립스틱을 덧칠하였다. 오랜만의 화장이었다. 반짝이는 입술이 사랑받고자 하는 고양이처럼 요염하게 빛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왔을 때 파티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인영의 눈엔 그 남자만으로 채워진 듯하였다.

“어때? 요즘 파티 사업은 할 만한가?”

“연극인으로 살다가는 입에 풀칠도 못해서 그냥 때려치울까 했는데, 친구가 자꾸 권해서 시작했는데 괜찮아!”

기획실장은 담배를 빨며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네는 요즘 무슨 연극을 준비하고 있나?”

이때 규희가 손짓으로 인영을 불렀다.

“저쪽으로 앉아!”

정의식의 맞은편이었다.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인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약간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에 앉았다. 파티실장이 인영에게 시선을 잠깐 두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조용하시고 동양적인 분위기라 자네가 찾던 여인상 같은데!”

규희는 곁의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맞아요. 딱이네요!”

“점잖은 분이시라 인영이 같은 여자가 맞을 것 같아요. 관심 있으세요?”

규희가 남자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것은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 남자에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남자는 그저 말없이 웃으면서 여전히 인영을 바라보았다.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정겹고 친밀한 분위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생활해온 남자. 자기가 넘어졌을 때, 손을 잡고 일으켜주며 묻은 흙을 탁탁 털어주는 다정한 남자의 향기라고나 할까. 한편으론 어떤 한 여학생이 그리워서 멀찍이 하교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곤 하는 어느 순수파 남학생!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해. 그러나 일회용의 유혹거리일지 모른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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