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6회

어느덧 인영은 사랑받고자 다가가는 고양이가 되었다. 사실, 너무도 인영답지 않게, 그것은 의외였다. 남자는 인영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부드러움으로 가득 찼다. 인영은 그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불같은 연정이 끓어 오른다. 마치 자석처럼 끌린다. 오랫동안 잠들었던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원초적인 생명력이 기지개를 펴고 활개를 치는 듯…….

다시 한 번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서 집요한 소유감이 꿈틀거린다. 그의 존재, 그 모든 것들을 만지고 알고 싶어졌다. 남자의 깊고도 고요한 눈동자는 아늑한 호숫가로 이끌었다. 그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화장실에 가는 듯하였다.

정의식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떨렸다. 방황의 날들이 지나고 자학하듯 탐닉하여 몸을 버렸던 그에게, 이제 자신감이 생기며 그 여자를 만난 행복감에 젖었다. 인영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도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얼굴에 홍조가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영 자신을 생각할 것이라 여겼다. 잠시 후에 그가 다시 흔쾌한 미소로 돌아왔다. 그는 어디에 앉을까 하며 인영의 옆자리인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오! 미인의 옆에 앉고 싶어서 그렇지!”

기획실장이라는 남자의 모습이 어디서 낯이 익어 보인다. 비틀거리며 규희와 함께하다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린 그 남자였다. 규희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하였던 그 남자……. 그렇다면 규희는 그 남자의 정부란 말인가!

‘아! 왜 이럴까, 정말 부끄럽다!’

인영은 부끄러움과 함께 흥분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아냐,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어. 저 눈동자는 바로 그걸 말해주고 있어!’

남자는 호기롭게 인영에게 포도주를 권하였다.

“자, 오늘 처음 만난 기념으로 한잔 받으시죠!”

인영은 가볍게 목례하듯, 흥분된 감정을 감춰 태연한 척 대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아들었다. 목이 타는 듯하였다. 달콤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가끔씩 남자가 자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듯하다. 다정함이 느껴진다. 알 수 없는 행복의 감정이 물밀 듯 밀려온다. 겉으론 애써 냉담한 척 하였다.

“왜 아까부터 인영이만 그렇게 자꾸 쳐다보세요? 저쪽은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친구죠, 호호호…….”

규희는 인영과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웃었다. 그렇다. 인영은 평소에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삶이 바쁘기 때문에 남자를 그리워할 틈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새 출발하라는 친구들의 성화에 시달려 왔었다.

쌍둥이를 남편 없이 생과부로 혼자서 키우는 것은 친구들이 볼 때, 그야말로 맹추였다. 그때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아버지로서 사랑해 줄 마음씨 좋은 남자를 은연중에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온전한 가정의 울타리를 지어줄,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좋은 남자. 아! 그것은 꿈같은 것이리라.

‘근사한 남자다! 결혼은 하였을까?’

남자는 맞은편의 긴 머리와 수염 차림의 도사처럼 인상을 풍기는 남자와 계속 얘기를 하다가 인영을 가끔씩 오랫동안 쳐다본다. 마주치는 시선 속에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하다. 그는 계속 남자와 연극 사업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설명하였다. 상대방의 남자는 성행하는 파티문화를 저속하고 사치스럽다면서 하나의 여가선용의 건전한 문화로 발전시킬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그는 현대인의 최대 여가활용의 새로운 이슈가 될, 이 사업의 전망을 대단히 낙관적으로 여겼다. 그는 열변을 토하면서 남자에게 사업에 동업할 것을 설득시키는 듯하였다.

정의식은 눈을 감고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하게 움직일 뿐이다. 그의 모습이 모두 신비스럽게만 여겨졌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녀에게 자주 던지는 깊고도 정겨운 시선, 어딘지 모르게 속되지 않은, 그런 분위기였다. 시계가 벌써 아홉 시를 가리켰다. 문득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두 사람이 대화에 빠진 틈을 타 잠시 목례를 하고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그럼 먼저…….”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벌써!”

아쉬움에 들떠 인영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는 홀 밖으로 향하는 회랑으로 바싹 곁에 다가섰다.

“댁이 여기서 멉니까?”

“아뇨. 바로 요 근처입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눈동자 속에 서로의 깊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잠겨 있다.

“그럼…….”

곧 마음을 수습하고 내닫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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