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削髮)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에 청니(靑泥) 김병래 선생이 계십니다. 그 김병래 선생이 삭발(削髮)에 대해 물어 오셨습니다.「요즘 머리 깎고 있는 정치꾼들과 코피가 터지도록 싸움질 하는 위정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삭발이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인 줄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시면 삭발의 의미와 왜 스님은 삭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정치꾼들이 머리를 깎고 투쟁을 하고 있는지, 삭발의 참 뜻에 대해서 궁금증을 풀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저 역시 몇 년 전에 큰 스승님의 권유에 따라 삭발을 했습니다. 삭발을 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이 풍진세상을 홀로 뛰어넘은 듯한 기분입니다. 그럼 출가 수도 인들이 삭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머리카락이 번뇌(煩惱)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속(世俗)의 인연도 함께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요.

이와 같이 삭발은 의례적인 관습이 아니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과 교만의 싹을 자르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결연함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출가 인들이 삭발을 하는 기원(起源)은 그 옛날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한 뒤 “치렁치렁한 머리칼은 사문(沙門) 생활에 들어가려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데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처님 제자가 모두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을 보면 부처님 출가 당시부터 삭발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명초(無明草)’라고 불리는 머리카락은 번뇌와 망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삭발은 머리카락과 함께 잡념도 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출가할 때 스님들은 머리를 깎아 버림으로써 세속의 인연과 번뇌도 함께 지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삭발은 출가정신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의 삭발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무슨 망발(妄發)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성스러운 출가 수도 인의 아름다운 단절을 욕보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속의 시커먼 욕망을 가슴에 품고 하는 삭발은 오히려 국민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

어느 국회의원의 ‘삭발식’을 두고 한 원로 의원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다.” 이어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말이 우스개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어쨌든 ‘조국대전’을 빌미로 삭발하는 의원들을 보면 참으로 보기가 딱합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삭발은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들이 민주화운동을 할 때 봤다. 정치인도 같이 했는데, 나름대로 대의명분이 있었다.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민주화된 이후에 정치권에서 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구석기시대다운 구태다운 모습이다. 더 나아가서 단체로 삭발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빛바랜 옛날 사진이다.” 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평론가는 “삭발은 빛 좋은 개살구다. 주목은 끌지만 실속이 없다. 이슈가 살아있을 때는 잠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그렇지만 이슈가 사라지면 지역 활동하기도 어렵다. 주민들이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의 삭발 릴레이 투쟁을 향해 “한국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삭발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세간에 도는 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성스러운 삭발을 희화(戲畫)시키는 일은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연이은 국회의원들의 삭발은 차기 총선의 공천을 따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풍문이 억울하다면 국회의원들은 즉각 국회로 돌아와 국정을 돌봐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9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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