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7회

정의식은 인영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홀 안으로 천천히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규희가 슬며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숙맥끼리 잘 통하네!”

“숙맥?”

“맞아, 숙맥들!”

“세상을 거꾸로 사는 고달픈 존재, 부자연스런 미운오리 새끼들이지!”

“그러나 끝까지 가봐야지. 미운오리 새끼는 결말에는 행복했잖아!”

그들은 잔을 부딪치며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고개를 젖혔다.

집에 돌아오면서 인영의 머릿속에 정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쉬움과 함께 자신을 따라 나섰던 남자의 얼굴! 늘 황막한 안개가 낀 짙은 어둠의 광장은 사라져 버리고 그 남자의 모습이 초원의 빛처럼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녀의 하늘에, 그녀의 땅 밑에, 그녀의 가슴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갑자기 외로움이 사라졌다. 가슴의 고드름을 녹여주는 그 남자!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그녀의 마음에서 계속 교차하는 사이에 어느덧 집에 도착하였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하였다. 흩어진 장난감을 치우고 아이들을 침대 위에 눕히면서 머릿속엔 정의식이 떠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빠진 공백, 하나가 빠진 공백, 이 공백을 채워줄 남자는 정의식이라고 여긴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남을 의지하는 자신이 초라해진다. 누가 알면 ‘미친 여자’라 할 것이다. 외간 남자를 처음보고 자신의 남자인양, 꿈꾸는 것은 스스로도 무모한 짓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성으로 마음을 조이면서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빠가 있는 아이들’을 또다시 그리면서 설레었다.

“요즘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 것 청승맞다. 자기 자식, 남편도 버리고 사랑을 찾아가는 여자도 있는데 넌 남편도 죽었는데 뭘 망설여! 아이들 보육원에 맡기고 충분히 재가할 수 있어. 빨리 재혼해서 새 출발해라!”

규희는 젊은 과부의 수절은 더 더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규희의 그 말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요새 여자들은 남자 없이도 강하게 잘산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든든한 성벽과 같은 아빠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새긴다.

인영은 그 후 장애아 보조원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도, 온통 정의식으로 가득 찼다. 자신은 왜 그 남자와 결혼까지 바라보고 있는지 중심을 냉철히 살펴본다. 그것은 단순한 젊은 여자의 정욕보다 온전한 가정의 성벽을 아이들에게 지어주고 싶은 책임감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빠진 숫자의 공백은 더욱 커지고 깊어만 갈 것이다.

요즘 여자들 과부도 많고 재혼도 많이 하고 이혼도 많이 한다. 그런데도 그 구멍에 대해서 심각성은 의식하지 않는 듯 모두들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듯 하다. 남들에게 쉬운 일이 왜 자신에겐 힘이 드는 것일까!

인영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싱크대 앞으로 다가갔다. 이틀 동안 쌓아 둔 설거지를 하려고 에이프런을 입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콸콸 시원스럽게 쏟아져 나왔다. 물이 싱크대에 그릇이 잠길 만큼 차자 세재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잠시 후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 서인영 씨입니까?”

“그런데요, 누구시죠?”

“네, 저 그때 파티 홀에서 잠깐 뵈었던 정의식입니다.”

가슴이 떨렸다. 바로 그 남자라니!

“그, 그런데 무슨 일이죠?”

너무도 놀랍기도 하고 반가워서 말문이 막힐 것 같다.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없을까요? 만나서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하고 공손하였다.

“무슨 의논이십니까?”

인영은 자신에게 ‘의논’이라는 말에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다. 따뜻한 친밀감이 밀려왔다.

“바쁘신 줄 알고 있지만 금요일 오후 여덟 시에 시간을 좀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덮쳐왔다.

“장소가 어디시죠?”

그저 담담한 듯 물었다.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그가 보고 싶었던가. 심상치 않은 인연의 어떤 끈의 연결을 예감한다.

“홍대 근처의 리허 카페입니다. 금요일 여덟 시에 기다리겠습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그것을 감추려고 다소 냉담하고 침착하게 응하려 하였다.

‘혹시 남편 없는 여자라고 희롱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을 배웅하러 잠시 허둥대며 따라왔던 그의 모습에서 애정의 끈을 확신하였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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